서영아 동서대 객원교수, 전 언론인


어제까지 고령화율이 40%를 훌쩍 넘은 일본의 지방 몇군데를 돌아보고 왔다. '지방소멸'이라는 단어를 만든 그들답게, 극복을 위한 노력이 눈물겨울 정도다. 이중 일본 총무성이 2010년 시작한 '지역살리기 협력대'는 어언 17년 역사를 자랑한다. 과소지역 지방자치단체가 특정 미션을 내걸고 도시부 출신 청년 지원자들을 모집 선발하면 정부까지 나서 이들이 지역에서 역할을 다하도록 충분히 지원해주는 제도다. 빈집을 활용한 주거지원 외에 급여로 매년 300만 엔(약 2660만원) 내외를 최장 3년간 지원한다. 대체로 20세 이상 50세 미만 지원자를 대상으로 하지만 지역에 따라서는 60대도 환영한다.

■ 정착 외지인 도움으로 마을 홍보, 아사히마치



야마카타 현의 아사히마치(朝日町)는 인구 5700여 명(2025년 기준)에 48%가 고령자인 작은 마을이다. 사과농사와 온천으로 유명한데, 노천온천에 사과를 둥둥 띄운 독특한 풍경이 자랑이다. 이곳에서 만난 사토 고헤이 씨는 2010년 협력대 1기로 이 마을에 와서 어느덧 예쁜 딸을 키우는 42세 가장이 됐다. 미대 디자인과 출신으로 '모모이로 우사히(복숭아빛 토끼)'라 불리는 마을 마스코트를 만들고 일본 전역에 마을 소식을 발신한다.

그런데 이 토끼 캐릭터가 좀 특이하다. 색깔은 예쁜 분홍색인데 '무개성, 무궤도, 무표정'이 컨셉이라고 한다. 공공기관 마스코트라면 웬만하면 웃는 표정일 텐데, 퀭한 눈빛과 심드렁한 표정으로 여기저기 등장하니 묘하게 더 웃긴다. 공식 X계정 팔로워가 3만 명이 넘는데, 마을 인구를 훌쩍 넘어서는 추종자 숫자다. 그가 실제로 매일 토끼 의상을 입고 마을 이곳저곳에서 촬영을 한 뒤 주민들에게 힘을 주는 코멘트를 띄운다.

야마카타 현의 아사히마치 마을을 상징하는 토끼 마스코트. 일본 곳곳에 마을 소식을 전하며 소멸위기 마을에 활력을 불어 넣은 주인공이다.


놀랍게도 그는 정부지원금이 끊긴 뒤 오히려 수입이 늘었다고 한다. 현재 직업은 크게 3가지. 홍보회사를 차려 마을 홍보와 기업에 대한 컨설팅을 해주는 한편으로 빈집을 개조한 마을회관을 관리한다. 회관은 낮에는 무료개방하고 밤에는 숙박시설로 활용하는데, 숙박객이 많지는 않다. 세 번째 직업은 다큐멘터리 제작. 민화(民話)를 소재로 한 영화를 4편 만들었고 관련 저서도 냈다. 마침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다고 자랑한다.



그에 따르면 과소지역에 온 청년 대부분은 여러 개의 직업을 갖는다. 과수원을 물려받아 사과농사를 하면서 닭도 키우고 고령자들을 실어 나르는 역할도 하는 식이다. 전문화 분업화를 통해 효율을 추구하는 요즘 세태와는 정반대인 모습이다.
그런데 이런저런 생계대책보다 귀가 번쩍 뜨이는 답변은 다른 데 있었다. 그는 '청년들이 꼭 얼마 이상 벌어야 가정을 꾸릴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시골에서는 생활비용이 적고, 경쟁이나 화려한 성취보다 자신만의 가치를 찾는 데서 보람과 위안을 느끼는 청년들이 적지 않다는 것. 2010년 도입 이후 사토 씨처럼 소멸위기 지방에 파견된 '지역살리기 협력대'는 이미 7000여 명이 넘는다. 이중 70%가 임기 종료 후 현지에 정착했다고 한다.

■ 첨단 바이오산업 단지 육성하는 인구 11만 도시

면적은 서울의 두 배지만 인구 11만에 불과한 야마가타현 쓰루오카(鶴岡)시에는 2001년 게이오대 첨단생명과학연구소가 들어섰다. 1990년대 말 지역의 미래 먹거리를 고민하던 당시 시장이 대학을 유치하려 동분서주하다가 첨단 바이오연구용 캠퍼스를 찾던 게이오대와 만나 프로젝트는 시작됐다. 논밭 한가운데 6만여 평 부지에 게이오대 연구소뿐 아니라 쓰루오카시 첨단연구산업지원센터, 바이오벤처 기업들이 연달아 입주해 사이언스 파크를 만들어냈다. 지금은 상주 인력이 500여 명, 이 중 200여 명이 현지인이다.

이제 쓰루오카는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첨단바이오연구단지가 됐지만 아직 투자금이 회수되는 상황은 아니다. 그럼에도 단지를 구상할 당시 시장의 비전인 '30년이 걸리건, 50년이 걸리건, 쓰루오카의 미래 먹거리를 키워둬야 한다'는 생각을 현재 시장이나 시의회도 계승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 지방소멸을 경고한 마스다보고서가 2014년 나온 게 2014년, 그 10년 뒤 2차 보고서가 나왔다. 지역의 미래를 위한 끈질긴 노력을 보고 있노라면 안쓰럽기도, 회의가 몰려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같은 노력조차 없다면 지속가능한 사회는 어떻게 가능할까. 아사히마치도 쓰루오카시도, 앞으로도 인구감소와 고령화가 진행될 것이라는 현실은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그 속에서도 가능한 일,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는 길을 찾아 차세대에게 물려주려 애쓰고 있다. 후임자들이 자신의 노력을 이어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사이언스 파크를 유치한 시장이 있었고, 후임 시장들도 같은 노력을 쌓아가는, 계승과 축적을 통해 미래를 밝혀가는 것이다.

지방 인구감소와 청년세대 유출은 한국도 당면한 과제다.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도 적지 않다. 요즘 지역마다 열풍을 일으키는 메가시티 구상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아쉬운 점은 이런 노력이 오랜 세월에 걸쳐, 미래를 내다보며 성실하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정치적 슬로건처럼 이용되다가 사그라든다는 느낌이다. 우리 정부가 2022년부터 지방소멸대응 기금을 도입했지만 현장에서는 '예쁜 보고서 만들기 경쟁'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 들려온다. 지역의 인구감소 현상을 보다 긴 안목에서,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그려보며 고민했으면 한다.

서영아 동서대 일본연구센터 객원교수는 동아일보 도쿄지국장과 논설위원, 콘텐츠기획본부장을 지낸 언론인 출신이다. 한일관계와 고령 사회 문제 등에 천착해 왔다. 정년퇴직 직전 5년간 동아일보에 '서영아의 100세 카페'를 연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