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대미 전략투자금 가운데 약 540억달러(약 73조원)를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에 배정하는 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는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알래스카 LNG는 상업적 위험이 큰 데다 1단계 주요 일감도 이미 해외 업체가 상당 부분 선점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참여가 불가피하다면 단계적 투자와 국내 기업 수주 연계, 철수 조건 등 안전장치를 확보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29일(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30일 오후 3시30분(한국시간 10월1일 오전 4시30분) 백악관 집무실(오벌오피스)에서 약 2000억달러 규모인 한국의 대미투자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그 핵심은 알래스카 LNG 사업에 대한 540억달러 투자라고 외신은 보도했다.
"알래스카 LNG 540억달러 투자"… 정부 "확정 아냐"

정부는 알래스카 LNG 사업은 확정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산업통상부 관계자는 [시대]에 "미국 측 내부 절차가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고 미국 측과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며 "알래스카 프로젝트는 관련 법률에 따라 상업적 합리성을 검토해 참여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지,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540억달러가 한국의 전략투자 몫으로 확정되면 전략투자 총액 2000억달러의 약 27%에 이른다. 정부가 '하이 리스크'라고 평가한 사업에 전략투자의 4분의 1 이상이 몰리는 셈이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지난해 11월6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알래스카 LNG 사업은 저희 기준에 하이 리스크 사업이라 투자 대상에 들어가기 쉽지 않다"고 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와 실제 한·미 합의는 나눠 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고 현안을 자기 중심적으로 해석해 발표하는 경우가 많다"며 "발표 내용과 양국 정부가 실제 합의한 내용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알래스카가 서두르는 이유

알래스카 LNG 사업은 여러 불확실성이 겹친 고위험 사업으로 평가돼 왔다. 사업비부터 크고 계속 불어나고 있는데, 개발사 글렌파른은 지난 6월 전체 건설비를 445억~545억달러로 추산했다. 2023년 제시된 약 440억달러보다 상단이 100억달러 이상 높다. 현지 상황도 불투명하다. 글렌파른은 가스관 재산세를 대폭 낮추는 세제 개편 없이는 자금 조달이 어렵다고 주장해 왔는데, 알래스카 주의회는 올여름 세차례 특별회기에서도 관련 법안을 처리하지 않았다.
개발사 역량을 둘러싼 의문도 있다. 엑손모빌 등 메이저 업체들은 사업성을 이유로 2016년 이 사업에서 손을 뗐다. 글렌파른은 2025년 3월 알래스카 주정부 산하 알래스카가스라인개발공사(AGDC)로부터 사업 지분 75%를 넘겨받아 주 개발사가 됐다. 글렌파른은 북미·남미에서 60여개 에너지 자산을 운영한다고 하지만 대부분 발전·재생에너지 설비다. 회사 자료에는 완공했거나 운영 중인 LNG 시설이 없다.
다만 알래스카주가 사업을 밀어붙일 이유는 분명하다는 분석도 있다. 주내 가스 공급이 줄어드는 만큼 내수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서라도 공급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국 본토에서 LNG를 선박으로 들여오는 것도 쉽지 않다. 미국 내 연안 운송에는 미국에서 건조한 선박을 사용하도록 한 존스법이 적용되지만, LNG운반선은 사실상 한국과 중국 조선소가 주로 건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태식 에너지경제연구원 박사는 "알래스카 안에서 쓸 가스가 고갈돼 가고 있어 어떻게든 주정부가 개발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은 일감은 2단계… 사업 성사도 변수

한국이 알래스카 LNG 사업에서 기대해 온 주요 일감 상당수는 이미 해외 업체가 선점했다. 노스슬로프의 가스를 알래스카 내수시장에 공급하는 약 1190㎞ 길이의 가스관을 건설하는 1단계 사업에서 한국 기업의 참여 기대가 컸던 강관은 약 70만t이 필요하다. 글렌파른이 지난 1월 공개한 계약 현황에 따르면 이 가운데 약 3분의 2는 그리스 코린트파이프웍스와 독일 유로파이프가 예비계약으로 확보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지난해 12월 글렌파른과 강관 제조용 철강재 일부를 공급하기로 합의하는 데 그쳤다. .
한국 기업이 추가로 노릴 만한 일감은 2단계에 남아 있다. 2단계는 가스관을 남부 니키스키까지 연장하고(전체 약 1300㎞), 연 2000만t 규모의 액화·수출시설을 짓는 사업이다. 2단계에서도 핵심 기자재는 공급사가 정해졌다. 미국 베이커휴즈가 액화시설의 주 냉매압축기와 노스슬로프 가스처리시설의 발전설비를 공급하기로 했다. 수출용 LNG운반선은 그리스 해운사 다나오스가 '우선 선박 공급자'로 선정돼 최소 6척의 건조·운영을 맡는다. 다만 건조할 조선소와 액화플랜트 시공사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투자 나누고, 일감 묶고, 철수 조건 확보해야

전문가들이 제언하는 참여 안전장치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사업 진척에 맞춘 단계적 투자다. 알래스카 LNG 사업은 1단계와 2단계가 재무적으로 분리돼 있다. 전체 투자액을 한꺼번에 확정하기보다 각 단계의 경제성 검증과 구매계약 확보, 세제·인허가 등 핵심 조건의 충족 여부에 따라 자금을 나눠 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알래스카 LNG 사업에 불가피하게 참여해야 한다면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타당성과 경제성을 충분히 검증할 시간을 확보해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둘째는 투자와 국내 기업의 일감, LNG 도입 조건을 패키지로 협상하는 방안이다. 한국이 대규모 자금을 투입한다면 국내 조선·건설·철강·기자재 기업의 공급계약으로 이어질 수 있는 조건을 함께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에 들여올 LNG의 가격과 물량도 함께 따져볼 필요가 있다. 김혁중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북미유럽팀 부연구위원은 "철강·기자재 공급과 LNG 구입을 연계하면 우리 기업이 얻는 추가적인 혜택도 고려할 수 있다"며 "사업비를 낮추기 위해 미국이 부품·기자재 관세를 조정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셋째는 장기 사업의 정책 변화와 중단 위험에 대비한 계약상 안전장치다. 사업 기간 중 미국 행정부가 바뀌거나 인허가·세제 등 사업 조건이 달라질 가능성에 대비해, 현재 확보한 인허가의 효력을 최대한 유지하고 사업이 중단되거나 투자 전제가 크게 달라질 때 손실을 제한할 수 있는 조항도 협상 대상이 될 수 있다. 김 부연구위원은 "이미 허가받은 내용이 크게 바뀌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현재의 인허가를 바탕으로 사업을 계속 추진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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