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편영화 한 편을 선보이기도 전에 기업가치가 10억달러(약 1조3000억원)로 평가된 제작사가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둔 글로벌 영화·TV 제작사 유토파이 스튜디오다. 회사를 이끄는 세실리아 셴 대표(26)는 인공지능(AI) 기술로 할리우드의 콘텐츠 제작 방식을 혁신하고 '차세대 픽사'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지난 19일 동행미디어 시대와 화상으로 만난 그는 약 2시간 동안 눈빛을 반짝이며 자신의 구상을 풀어냈다.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질문 목록을 보고는 '세상에, 정말 길다'고 생각했다"며 웃음을 터뜨렸지만 막상 인터뷰가 시작되자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관객의 취향에 따라 결말이 달라지는 영화부터 팬과 아이돌이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K팝까지 AI가 열어갈 콘텐츠의 가능성을 거침없이 설명했다.
셴 대표는 "미국과 중국이 AI 기초모델 개발에서 경쟁하고 있지만 한국은 기술을 문화와 창의성, 콘텐츠에 접목하는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할 기회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유토파이가 한국에 대한 투자를 두 배, 세 배로 확대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한국 정부도 콘텐츠 산업에 대한 투자를 두 배, 세 배로 늘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21일 시대포럼에 연사로 참석하는 셴 대표와의 일문일답이다.
-유토파이를 소개해 달라.
▷AI 기술로 차세대 콘텐츠 제작 방식을 혁신하는 글로벌 스튜디오로 미국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두고 있다. 영화·드라마에 투자하고 직접 제작·배급하며 콘텐츠 제작용 AI도 개발한다. 2027년 공개를 목표로 극장 영화 3편과 TV 시리즈 2편을 준비하고 있다.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던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출연하는 역사극 '코르테스', 한국인 양효주 감독의 실사영화 '하프 문' 등이다. 최근에는 글을 입력하면 영상을 만드는 자체 모델 '유토파이 X'(Utopai X)도 발표했다. 조만간 이미지를 영상으로 바꾸는 기능도 공개할 예정이다.
-기술 분야 출신이다. 영화 스튜디오를 창업한 계기는.
▷구글의 신기술 연구조직인 구글X에서 일하며 생성형 AI의 가능성을 일찍 봤다. 창업 초기에는 3차원 영상 생성 기술을 시각효과(VFX)·게임 업체 등에 공급했다. 그러다 기술만 팔아서는 작품의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지식재산권(IP) 개발부터 제작·배급까지 맡는 스튜디오로 전환했다. 우리는 기술 회사가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회사다. 픽사 같은 회사를 지향한다.
-기존 제작사와 무엇이 다른가.
▷자체 개발한 '제작 보조 지능'(PAI·Production Assistive Intelligence)을 활용한다. 유토파이 X가 영상 생성 모델이라면 PAI는 대본 분석부터 스토리보드 구성, 장면 생성과 편집까지 제작 전 과정을 지원하는 지능형 시스템이다. 다만 AI가 감독을 대신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 연출하고 AI가 돕는 것이다.
-AI로 제작비를 얼마나 줄일 수 있나.
▷정확한 수치를 말하기는 어렵다. 실사와 AI를 결합할지, 대부분을 AI로 만들지 등 제작 방식에 따라 비용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앞으로 5~10년간 AI가 콘텐츠 산업을 어떻게 바꿀까.
▷이전에 없던 장르와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가 탄생할 것이다. 뮤지컬과 애니메이션,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결합할 수 있다. 지금은 AI가 볼 작품을 추천하지만 앞으로는 작품 자체를 개인화할 것이다. 같은 드라마라도 시청자의 취향에 따라 줄거리와 대사, 결말이 달라질 수 있다. 10시간짜리 시리즈를 볼 시간이 2시간뿐이라면 감정선과 핵심 이야기를 보존한 압축판을 만들 수도 있다.
-감독의 창작 의도는 어떻게 보존하나.
▷AI 모델이 충분히 발전하면 감독이 미리 정한 이야기의 조건과 창작 의도를 유지하면서 개인화된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 AI와 콘텐츠의 미래를 논의하는 게 중요한 이유는.
▷한국에는 콘텐츠를 세계적인 문화 현상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다. 할리우드는 AI 활용에 대한 반발이 크지만 한국은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빠르게 움직이면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선점할 수 있다. 또 한국 창작자들은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플랫폼의 투자로 성공작을 만들고도 경제적 이익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 경우가 많다. AI는 제작비를 낮춰 창작자들이 IP를 직접 보유하고 제작부터 배급까지 주도할 기회를 준다. 그렇기에 한국은 가장 기대하는 시장이다. 2028년 세계에 선보일 한국 관련 애니메이션도 준비하고 있다. 한국의 유명 감독과 가수, 대형 IP를 보유한 엔터테인먼트 기업들과의 협력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AI와 K팝을 결합하면 어떤 콘텐츠가 가능한가.
▷K팝은 음악뿐 아니라 공연과 패션, 아티스트와 팬의 관계 등을 아우른다. AI와 결합하면 한 K팝 그룹의 세계관이 영화·드라마·애니메이션·상호작용형 콘텐츠로 확장될 수 있다. 팬들이 콘텐츠를 보면서 좋아하는 아이돌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경험도 가능해질 것이다. K팝과 영화, SNS의 경계가 사라지면서 완전히 새로운 엔터테인먼트가 탄생할 것으로 기대한다.
-내년 주요 작품들이 관객을 만난다. 어떤 평가를 기대하나.
▷2027년에는 박스오피스에서 1억달러 이상의 흥행 수익을 올리는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한다. 독립 영화 제작사 에이24(A24)가 그런 성과를 내기까지 10년 넘게 걸렸지만 우리는 몇 년 만에 가능하다고 본다. 뛰어난 예술가가 AI를 제대로 활용하면 최고의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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