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특허법인 사무실 두 곳에 잇따라 불을 지른 70대 남성이 4년 전에도 같은 사무실을 찾아가 휘발유를 뿌리며 협박해 실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허 등록 문제로 갈등을 빚던 업체들에 앙심을 품고 다시 방화를 저지른 것이다.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려는 목적의 방화가 무고한 시민의 피해로 이어지면서 보복성 범죄의 재범 위험성을 관리할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현존건조물방화치상 혐의로 체포된 이모씨(77)가 범행 사실을 대체로 시인했다고 21일 밝혔다. 이씨는 지난 16일 서울 강서구 주거지 인근에서 플라스틱 말통 2개와 라이터, 인화성 물질을 구입하는 등 범행을 미리 준비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전날 오전 11시54분 A특허법인 사무실에, 낮 12시1분 B특허법인 사무실에 각각 불을 질렀다. 이 화재로 30대 여성 한 명이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되는 등 19명이 다쳤다.
이씨는 체포된 뒤 수서경찰서로 압송되는 과정에서 범행 이유를 묻는 말에 "(특허법인들이) 사기를 쳐서"라고 답했다. 경찰 조사에서도 "특허법인 두 곳이 허위의 특허등록증을 발급하는 등 나를 속였다고 생각했다. 이들에게 겁을 주고 이 일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와 두 특허법인의 갈등은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행미디어 시대가 확보한 1심 판결문과 특허청 등록디자인 공보에 따르면 이씨는 자신이 개발한 균형 잡기 운동기구의 국내외 디자인 등록과 특허 출원을 두 업체에 맡겼다.
이씨는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종이 특허등록증을 발급하지 않는다는 특허법인 측의 설명을 듣고도 종이 등록증을 요구했다. 업체들이 추가 비용을 요구하자 사기를 당했다고 생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허청 공보에는 이씨가 개발한 운동기구 디자인 두 건이 2019년과 2020년에 각각 이씨 명의로 등록된 사실이 확인된다.
특허법인들이 사기를 쳤다고 믿은 이씨는 2022년 12월29일 A특허법인 회의실에서 상담 직원의 얼굴과 상체에 휘발유를 뿌린 뒤 라이터를 켜며 협박했다. 약 20분 뒤에는 B특허법인에서도 직원에게 휘발유를 뿌리고 가위로 찌를 듯이 위협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이듬해 4월 특수협박 혐의로 이씨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고, 대법원에서 이 판결이 확정됐다. 이씨는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뒤 같은 업체들을 찾아가 실제로 방화를 저질렀다.
방화는 살인·강도와 함께 강력범죄로 분류된다. 특히 분노에 따른 방화는 범행 대상이 특정돼 있더라도 이와 무관한 불특정 다수에게 큰 피해를 입히고 막대한 재산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일단 불길이 번지면 범행을 저지른 사람조차 피해 규모를 통제하기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방화 피의자 가운데는 과거 범죄 전력이 있는 사람이 상당수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25년 검거된 방화 피의자 891명 중 전과자는 564명(63.3%)이었다. 전과가 있는 방화범 중 과거에도 방화를 저지른 동종 전과자는 43명(7.6%)이었고, 다른 범죄 전력이 있는 전과자는 521명(92.4%)으로 집계됐다. 이씨 역시 특수협박으로 처벌받은 뒤 방화 범죄를 저질렀다.
분노에 따른 방화 범죄는 잊을 만하면 반복된다. 2022년 6월 대구에서는 민사소송에서 패소한 데 앙심을 품은 남성이 상대방 측 변호사 사무실에 불을 질러 피의자를 포함해 7명이 숨지고 50명이 다쳤다. 정작 범행 대상으로 삼은 변호사는 출장 중이어서 화를 면했지만, 사건과 무관한 변호사와 직원들이 희생됐다.
2018년 6월 전북 군산에서도 술값 문제로 유흥주점 업주와 다툰 남성이 주점 입구에 불을 질러 5명이 숨지고 28명이 다쳤다. 2024년 8월 충남 천안의 보호관찰소에서는 지도·감독에 불만을 품은 50대 남성이 불을 질러 18명이 다쳤다. 지난 7월23일 경북 경산의 한 아파트에서는 관리사무소와 갈등을 빚던 70대 남성이 불을 질러 직원과 피의자 등 5명이 숨졌다.
전문가들은 보복성 방화의 배경이 되는 피의자의 피해의식과 분노를 사전에 살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번 특허법인 방화범은 과거에도 피해망상적 행동을 보였던 만큼 교정시설에서 심리 상태를 집중적으로 관찰하고 상담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망상이 반드시 정신질환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왜 억울한지 상담하고 인식을 바꾸도록 돕는 것만으로도 완화될 수 있다"고 했다.
형기를 마친 뒤에도 재범 위험성이 높은 사람을 선별해 치료하고 관리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신질환이나 충동·분노조절 장애 등으로 자신이나 타인에게 해를 끼칠 가능성이 높은 경우 치료를 목적으로 강제 입원시키는 '사법입원' 제도가 대표적이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과거 보호감호제도는 기본권 침해와 이중처벌 소지가 있어 폐지됐지만, 형기를 마친 뒤에도 재범 위험성이 명백한 사람에게 별도 시설에서 상담과 치료를 제공하고 단계적으로 사회에 복귀시키는 방식의 프랑스식 보호수용제도 도입을 재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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