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해자 A씨가 경찰서 조사실에서 피해 사실을 설명했다. 사건이 공소청으로 넘어간 뒤 경찰에선 차마 말하지 못한 새로운 피해를 검사에게 털어놨다. 그러자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며 사건이 다시 경찰로 돌아갔다. 피해자는 또다시 경찰서 조사실에 앉아 그날의 일을 처음부터 설명해야 했다. 수사와 기소를 완전히 분리한 새 형사사법 체계에서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장면이다.
지난 14일 열린 김지용 중대범죄수사청장 인사청문회에서도 이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증인으로 출석한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는 공소청의 사실관계 확인 과정에서 새롭게 나온 진술이 재판 증거로 쓰이지 못해 사건을 수사기관으로 재이관할 때 발생하는 '반복 진술'의 부담을 지적했다. 특히 아동과 장애인 등 의사소통이 어려운 피해자가 겪을 사법적 고통을 우려했다.
피해 진술은 사법 서류의 빈칸을 채우는 재료가 아니다. 가슴속에 묻어둔 상처를 다시 꺼내는 고통이고, 나의 억울함을 풀어줄 거란 믿음 속에 힘겹게 내어놓는 용기다.
반복 진술이 고통의 반복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질문 방식에 따라 기억과 표현이 왜곡될 위험이 도사린다. 아동 등 사회적 약자에게 답을 암시하는 질문을 되풀이하면 질문에 담긴 정보가 기억과 뒤섞여 진술이 오염될 수 있다. 앞선 진술과 달라진 경우 재판에선 오히려 "피해자 말을 신뢰하기 어렵다"며 피고인의 공격 무기가 되기도 한다. 억울함을 풀려다 자칫 의심받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물론 실체적 진실을 확인하고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해 다시 물어야 할 순간이 있다. 그러나 기관 사이의 기계적 업무 분담이나 사건 이송 문제 때문에 같은 질문과 답변을 되풀이하는 건 '피해자 중심주의'와 거리가 멀다.
김 청장은 사건 수사부터 기소, 유죄판결까지 책임지는 '책임수사'를 약속했다. 그 책임의 무게에는 범죄의 적절한 대가를 치르도록 하는 것뿐 아니라 피해자 부담을 덜어주는 일도 포함돼야 한다. 사법 개혁의 성과는 권한을 어떻게 나누었느냐로 평가할 수 없다. 피해자 고통을 얼마나 줄여주고, 반복하지 않도록 했는지가 가장 중요한 평가 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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