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문, 원심판결 중 유죄 부분을 파기한다. 피고인들은 각 무죄."
23일 오후 2시 17분쯤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 404호 법정. 서울고법 형사7부(재판장 구회근)가 무죄를 선고하는 순간, 피고인석에서 내내 꼿꼿이 서 있던 오세훈 서울시장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이날 흰색 스트라이프가 들어간 붉은색 넥타이 차림의 오 시장은 선고 내내 굳은 표정으로 서서 재판부의 판단을 경청했다. 그러다 항소심 재판부가 1심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하자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선고 직후 법정 문을 나서는 오 시장의 눈가는 붉어져 있었다. 법정 앞 복도에는 서울시 관계자들과 지지자들이 길게 도열해 오 시장을 맞았다. 법정 구역인 탓에 환호성은 터져 나오지 않았지만, 이들은 오 시장의 손을 맞잡으며 "정말 고생 많으셨다"고 낮게 읊조렸고 오 시장 역시 이들의 손을 꽉 쥐며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연신 고개를 숙였다. 오 시장은 법정 앞 복도에서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을 발견하자 깊은 포옹을 나누기도 했다.
오 시장이 법원 밖으로 걸어 나오자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대기하던 지지자들과 국민의힘 관계자들은 손을 번쩍 치켜들며 "오세훈! 오세훈!"을 연호했다. 지지자들 일부는 눈물을 흘렸다. 반면 한쪽에서는 무죄 판결에 반발하며 고성을 지르고 거세게 항의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취재진의 마이크 앞에 선 오 시장의 목소리에는 떨림이 묻어났다. 오 시장은 "먼저 국민 여러분께 정말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는 "보다 완벽하고 조심스럽게 공직 생활을 해야 하는데, 검찰과 법원에 출석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게 돼서 정말 송구스럽고 죄송했다"며 "앞으로는 좀 더 완벽하게 처신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서울시민을 향해 감사를 전할 때에는 눈물이 고여 잠시 숨을 고르기도 했다. 오 시장은 "한창 재판 중에 선거를 치렀는데도 결백을 믿어주시고 오세훈이 다시 서울시장으로 일할 수 있도록 투표 해주신 서울시민 여러분께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시민 여러분의 믿음과 혜안에 어긋나지 않게 더욱더 열심히 일해서 반드시 보답하겠다"고 했다.
아울러 "재판 기간 의심받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끝까지 신뢰를 철회하지 않으시고 용기와 희망을 북돋워 주신 많은 국민 여러분이 계셨다"며 "그분들 덕분에 버티면서, 일하면서 재판받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앞서 이날 오후 1시 40분쯤 오 시장이 법원에 들어설 때만 해도 법원 안팎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서울고법 청사 앞에는 윤상현·권영진·조정훈 등 국민의힘 의원들과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 등 범야권 의원들이 집결해 오 시장을 격려했다. 오 시장은 법정 출석 당시 취재진에게 "1심에서 제출되지 않았던 유리하고 결정적인 증거가 제출되지 않았나. 재판 결과를 지켜보자"며 담담하게 출석했다.
오 시장의 무죄 선고 직후 윤상현 의원은 동행미디어 시대에 "딱 한 마디로 표현하면 사필귀정"이라며 "사법부의 올바른 판단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날 재판부는 오 시장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한 1심을 뒤집었다. 판단이 갈린 핵심은 명태균씨 진술의 신빙성이었다. 1심도 명씨의 설명이 일관되지 않고 사실관계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재구성할 가능성을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카카오톡 대화와 캠프 관계자들의 만남 등을 종합해 여론조사 10건 중 5건, 비용 2100만원을 대납하게 한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항소심은 명씨 진술의 일부를 믿을 근거와 이를 뒷받침할 다른 증거가 모두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명씨가 직접 경험한 사실과 추측·과장을 구분하기 어렵고, 불리한 사정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거나 기존 진술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다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아울러 "최초 김영선 등에 관한 정치자금법 위반 수사 중에는 (명씨가) 오 시장에 대해 진술하지 않았는데, 오 시장이 고소하겠다고 발표한 후 본격적으로 오 시장의 정치자금 관련 혐의에 대해 진술했다"며 "그 무렵 공개적으로 '오세훈을 어떻게 엮는지 보라'는 취지로 위협적인 말까지 했다"고 짚었다.
명씨가 서울시장뿐 아니라 부산시장 보궐선거 여론조사를 실시해 다른 정치인들에게 결과를 전달한 것에 대해서도 오 시장의 의뢰가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넓히려는 활동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선고 말미에 "검사의 입증이 확신을 갖게 할 정도로 충분하지 않을 경우, 비록 피고인의 주장이나 변명이 일부 석연치 않아 유죄 의심이 든다고 해도 결국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이는 수사와 기소를 통해 억울하게 처벌받는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한 오래된 형사법의 대원칙"이라고 했다. 오 시장이 명씨에게 구체적인 여론조사를 의뢰하고 그 대가를 지급하려 했다는 공소사실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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