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27일 오전 중구 서울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청년 인공지능(AI) 성장권 오픈 토크'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뉴스1


더불어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한 서울시의회를 향해 오세훈 서울시장이 공개적으로 날을 세웠다. 오 시장은 자신의 핵심 청년정책인 '청년 AI(인공지능) 성장권' 사업 예산이 전액 삭감된 데 대해 "질질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정치적 보폭을 넓히고 있는 오 시장이 내년도 예산안 심사를 앞두고 시의회를 향해 공개 압박에 나선 것이다.

오 시장은 27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열린 '청년 AI 성장권 지원 시범사업' 설명회에서 "서울시의회는 지금 저와 같은 당적의 시의원이 3분의 1이 되지 않는다"며 "시의회에서 뭔가 안 된다고 하면 못 하는 것이다. 다시 해달라고 요청해도 또 거절당하면 그다음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3분의 1만 (동의를) 해주시면 일하기가 그나마 괜찮은데 그게 안 되면 질질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일하는 데 정말 여러 가지 힘이 들고 뜻대로 되는 일이 거의 없다"고 토로했다. 내년도 예산 반영 문제까지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다음 달 시의회 예산안 심사를 앞두고 주도권 확보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설명회에는 대학생·취업준비생과 AI 전문가, 기업·대학 관계자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지난 6월 출범한 제12대 서울시의회는 전체 118석 가운데 민주당이 80석, 국민의힘이 38석을 차지하고 있다. 민주당이 전체 의석의 3분의 2를 웃도는 만큼 오 시장이 조례안 재의를 요구하더라도 민주당 단독으로 재의결할 수 있다. 오 시장이 언급한 '3분의 1'은 재의결을 저지할 수 있는 최소 의석 기준이다.

오 시장의 이날 발언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지 나흘 만에 나왔다. 서울고법 형사7부는 지난 23일 이른바 '명태균 여론조사비 대납 의혹'으로 기소된 오 시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시장직 상실형에 해당하는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1심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재판부는 핵심 증인인 정치브로커 명태균씨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사법리스크의 큰 고비를 넘기며 정치적 운신의 폭을 넓힌 오 시장은 시의회를 작심 비판했다. 그는 "6개월이면 엄청난 변화인데 시의회에서 6개월을 그냥 늦추는 바람에 참 안타깝다"며 "3개월이라도 절약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그것도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27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청년 인공지능(AI) 성장권 오픈 토크'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뉴스1


오 시장은 추경 삭감으로 AI 업체와의 가격 협상에도 차질이 생겼다고 했다. 그는 "1인당 2.5불이라는 파격적인 가격까지 낮춰놨는데 추경 예산이 통과되지 않는 바람에 (AI 업체와) 약속을 못 지키게 됐다"며 "그 후과로 내년 예산에 반영되더라도 '그 가격에는 못 주겠다'는 피드백이 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어쩌면 좀 더 비싸질 수도 있다"며 "내년에 시의회를 통과시켜 여러분이 쓸 수 있도록 해드리겠다는 자신감 넘치는 약속은 못 하겠다"고 했다. 시는 당초 협상 조건을 되살리기 위해 AI 업체들과 재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청년 AI 성장권은 오 시장이 지난 7월 2일 민선 9기 첫 청년정책으로 발표한 '청년 AI 사다리'의 핵심 사업이다. 서울에 사는 청년 50만명에게 1년간 고성능 AI 이용권을 제공하는 게 골자다. 시는 전체 사업비 225억원 가운데 올해 10~12월분 56억2500만원을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에 담았다. 그러나 시의회 도시계획균형위원회가 지난달 3일 예비심사에서 전액 삭감했고 같은 달 11일 본회의에서 삭감이 확정됐다.

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당시 사회보장제도 신설에 필요한 보건복지부 사전협의가 끝나지 않았고 지원 대상 50만명의 산정 근거도 불명확하다고 판단했다. 추경안 제출 뒤에야 수요조사가 이뤄진 점도 문제로 꼽았다. 시의회 민주당은 보편적인 AI 이용료 지원의 실효성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시는 사업 재추진을 뒷받침하기 위한 수요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지난 8~10월 두 차례 실시한 설문조사(1차 6466명·2차 7749명)에서 청년 응답자의 85.1%가 사업 참여 의향을 밝혔다. 2차 조사에서는 유료 AI를 구독하지 않는 청년의 75.4%가 구독료 부담을 이유로 꼽았다.

시는 이날 설명회에서 이용권 지원에 맞춤형 프로그램을 결합한 세부 실행계획도 내놨다. 참여자는 관심 분야와 수준에 맞춰 학습자료 정리와 자기소개서 개선, 업무 데이터 분석·자동화, 시제품 제작 등의 과제를 연간 1개 이상 수행한다. 'AI 첨삭 에이전트'를 통해 결과물을 보완하고 수준별 교육과 현직자·AI 전문가 멘토링도 받을 수 있다.

시는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장애청년, 자립준비청년, 고립·은둔청년 등 사회배려청년을 우선 선정하고 남는 이용권은 일반 청년에게 배정한다. 모든 참여자는 AI 서비스를 처음 이용하기 전 온라인 윤리교육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한다. 공급사와의 계약에는 이용자의 입력·출력 데이터를 상용 AI 모델 학습에 활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도 담을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