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대 국회의원들이 사용하는 배지의 모습. 배지의 숫자는 많지만 청년 몫은 제한적이다./사진=뉴스1


도발적인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정치인, 특히 국회의원에도 '정년'을 두자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대부분 공무원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공직에서 물러난다. 그런데 이른바 '금배지'를 단 국회의원은 정년이 없다. 정년제를 도입하자고 하면 당장 난리가 날 듯하다. 국민에게 공직의 기회와 권리를 규정한 헌법 25조를 침해한다는 반발이 나올 수 있다. 18세 이상에게 국회의원 피선거권을 보장하는 공직선거법 16조에도 역행한다. 나아가 국정에 발휘할 경륜과 전문성을 나이로 재단하는 게 타당하냐는 반론도 가능하다.

그럼에도 정년제 얘기에 고개를 끄덕일 국민은 적지 않으리라 본다. 이른바 '국민 정서법'이 발동하면 더욱 그렇다. 선거 때마다 인적 쇄신을 외치지만 등장하는 얼굴은 늘 낯익다. 계파의 주도권 다툼과 소모적 정쟁도 달라지지 않는다. 답답할 따름이다. 그사이 갑자기 찾아온 인공지능(AI)은 일자리와 삶의 지형을 뒤흔든다. 정치가 새로운 세대의 감각과 목소리를 받아들이는 일도 더는 미룰 수 없다.



하지만 '정치의 문'은 과연 얼마나 열려 있을까. 동행미디어 시대가 최근 연속 보도한 '청년 정치 삼국지'는 실상을 숫자로 보여준다. 20~40대 국회의원 비율에서 한국은 16%로 대만(27%)과 일본(31%)을 못 따라간다. 비례대표 의석의 비율도 이와 비슷하다. 하지만 20~40대 유권자는 44%에 달한다. 강원택 서울대 명예교수는 국회 물갈이가 "2004년의 세대교체 이후 멈췄다"고 진단한다. 2028년 총선에서도 이런 구도가 바뀌지 않으면 세대 갈등이 격화될 것이란 경고가 나온다. 최근 프랑스에서 일어난 격렬 시위는 반면교사의 표본이다. 고령층의 노후 보장과 불안한 청년층 미래가 충돌했다. 미래 세대의 이해를 누가, 얼마나 정치에 품을 수 있느냐가 국가 존망을 좌우한다. 시대가 조사한 결과, 한국의 2040은 정치 참여를 통해 '주거, 부동산, 일자리'를 가장 바꾸고 싶어 한다. 바로 '삶'의 문제다. 하지만 이런 욕구를 정책에 반영할 청년 정치인 자리는 턱없이 좁다.

6월 지방선거 직후 올림픽공원에 모인 청년들은 정치권에도 파장을 일으켰다. 2030 민심 이반에 위기감을 느낀 민주당은 청년 최고위원제 부활을 추진했고, 국민의힘 지도부는 현장을 찾았다. 그러나 정치권의 요란한 관심이 무색하게 청년에게 실제로 권력을 나눠주는 일에는 인색했다. 지난 7월 민주당은 전당대회를 앞두고 청년 최고위원 1명을 의무 선출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결국 무산됐다. 친명계는 당 대표 선거에 유리한 선호 투표제를 얻는 대신 청년 선출안을 포기하고, 친청계는 청년 후보가 마땅치 않아 이에 동의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청년 최고위원 한 자리조차 계파의 이해관계를 넘지 못하는 게 현주소다. 국민의힘도 다르지 않다. 인요한 혁신위는 2024년 총선을 앞두고 비례대표 당선권에 '45세 미만의 50% 의무화'를 혁신안으로 의결했지만, 실제 공천은 7명(35%)에 그쳤다.

그동안 여의도에선 '14시 청년'과 '19시 청년'이라는 말이 통용돼 왔다. 전자는 평일 오후 2시에 열리는 정당 행사에도 얼마든지 시간을 내서 나올 수 있는 청년을 뜻한다. 말하자면 직업적 청년 정치인이다. 후자는 생업을 마치고 퇴근 뒤 정치에 참여 가능한 일반인을 말한다. 그동안 정치권이 14시 청년에 초점을 맞춰왔다며 19시 청년에도 기회를 넓히자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반향은 크지 않다. 말에 그칠 게 아니라, 실제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만들고 보여줘야 한다.



청년에게 자리를 내줘야 하는 곳은 여의도만이 아니다. 선거로 뽑지 않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행정부 인사는 오히려 세대교체의 여지가 더 크다. 그러나 한국의 50세 미만 장관은 19명 중 1명(5%)에 불과하다. 대만은 그 비율이 20%를 넘고, 일본도 10%를 넘는다. 사실 정치든 행정이든 문제의 본질은 같다. 새로운 세대에 얼마나 기회를 열어주고, 권한을 나눌 것인지 여부다. 물론 기존 국회의원이나 관료들의 경험과 성과를 부정할 이유는 없다. 다만 그들이 젊었을 때 누렸던 도전의 기회를 다음 세대에도 열어놓았는지는 물어야 한다. 세대 교체가 한 세대의 성공담으로 끝나서는 곤란하다.

해법도 청년 한두명을 발탁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조직과 자금이 부족한 정치 신인에게 길을 터줄 비례대표 확대부터 논의할 일이다. 나아가 정당 안에는 청년들이 경쟁하며 성장할 무대를 만들고, 그렇게 선출된 대표에게 연금개혁 같은 주요 의제의 결정권도 나눠줘야 한다. 행정부도 세대별 후보군을 구성해 선정 기준을 공개하고, 특정 세대가 배제되지 않았는지 검증받는 방안을 검토할 만하다.

세대교체는 단순히 나이 든 사람을 밀어내자는 게 아니다. 경험이 기득권이 되지 않고, 젊음이 불이익 사유가 되지 않도록 권력의 문을 여는 일이다. 서두에서 던진 질문, 국회의원에게도 정년제가 필요한지는 쉽게 답하기 어렵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물러날 때가 없고, 누군가에겐 들어설 자리조차 없는 정치라면 너무 불공평하지 않은가.
김준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