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경기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북한 확성기./뉴스1


심리전은 상대가 예상치 못한 수단이나 수법을 썼을 때 효과가 커지는 경우가 많다. 군사력과 경제력 규모가 열세인 국가일수록 상대의 예상을 벗어나는 심리전을 펼치는 경향이 있다. 허세에 가까운 무력시위나 거친 말폭탄으로 상대의 불안심리를 자극하기도 한다. 가짜 무기를 진짜인 것처럼 꾸며 상대 감시정보 자원을 허비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다. 걸프전 당시 이라크가 합판으로 스커드 미사일 발사대 모형(mock-up)을 만들어 연합군 공습을 유도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북한은 10월 중순 황해북도 개풍군 해안가 포병 진지에 122mm 자주포를 여러 문 배치했다. 경기 김포 애기봉 전망대에서 약 1.5km 거리다. 김여정 노동당 총무부장이 10월 19일 대남 확성기 방송 재개와 전술 타격수단 전방 증강 배치를 검토하겠다는 담화를 밝힌 직후다. 122mm 자주포는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북한이 배치한 구형 포병체계다.



북한은 왜 하필 구형 포를 최전방에 배치했을까. 군당국은 심리전 일환으로 평가한다. 구형 포가 배치된 곳은 비무장지대(DMZ)가 아니다. 한강중립수역 근처 북한 지역이다. 애기봉 전망대를 방문하는 남측 민간인들이 훤히 볼 수 있는 지역이다. 정작 포를 가져다 놓았을 뿐 별다른 훈련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포진지에 있는 북한군 병사들도 두세 명씩 모여 담배를 피우거나 잡담하는 장면이 목격되고 있다. 군 관계자는 "긴장 조성 목적이 있지만, 우리 측에 보여주기식 의도가 더 큰 것 같다"고 말했다. 한꺼번에 여러 대를 배치한 것이 아니라 시간차를 두고 차례로 이동했고, 이후 뚜렷한 훈련 움직임이 관측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보여주기식의 심리전 성격이 짙다는 것이다.

구형 포 사진이 한국 언론에 보도된 이후 외신들의 현장 취재 문의도 급증했다고 한다. 낡은 자주포 몇 대로 남측 불안심리를 자극하는 한편 외신의 관심까지 끌어낸 셈이다. 북한이 의도한 심리전 효과가 군사적 긴장 조성에 그치지 않고 국제사회의 관심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북한 심리전에 과민하게 반응하지 말고 일관성 있는 대북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런 맥락에서다.

북한이 대남 확성기를 틀겠다고 위협하는 것 역시 남한 사회의 불안과 갈등을 자극하려는 심리전 일환이다. 과거 확성기 방송에서 밤낮으로 쇠를 긁는 듯한 소리나 귀신 울음소리 같은 기괴한 음향이 송출되자, 이를 견디기 어려워한 접경지역 주민들이 대책 마련을 호소한 적이 있다. 북한이 이런 경험을 역으로 활용해 남측이 확성기 방송을 쉽게 재개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도 있다.



확성기 방송은 냉전의 유산이다. 북한은 1963년 확성기를 먼저 틀었다. 휴전선 근처의 한국군 장병들에게 북한 체제를 선전하고, 남한 체제에 부정적인 인식을 심으려는 의도였다. 귀순을 유도하는 것도 당시 주요 목적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확성기는 북한에 '비수'가 됐다.

'비가 오니 빨래를 걷어라'는 등의 날씨 정보가 실제 상황과 들어맞자 북한군이 확성기 방송에 귀를 기울였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2004년 4월 평북 용천군 용천역에서 대규모 열차 폭발 사고가 났을 때 남측은 확성기 방송으로 이 소식을 전했고, 북한군 병사들이 가족 안부를 묻거나 관련 소식을 편지에 담았다. 대대적인 검열이 이뤄지는 등 북한군 내부에 큰 소동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확성기 방송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주장도 많다. 북한 주민들도 외부 정보를 어느 정도 접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확성기 방송만으로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시각이다.

남북관계를 '적대적 국가관계'로 규정한 북한이 확성기 방송을 계기로 대화에 나설 가능성도 크지 않다. 정부와 군이 확성기를 검토하면서도 쉽게 결단하지 못하는 배경에는 이런 고민이 있다. 남북이 상호 불안을 자극하는 확성기 경쟁을 끝내고, 철거를 통해 긴장을 낮출 출구를 모색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