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2일 제주시 연동 한 길거리에서 40대 여성을 흉기로 살해한 60대가 긴급체포됐다. 사진은 범행 당시 CCTV 영상 갈무리./ 뉴시스


친구의 연애 고민을 듣다 보면 답답하다. 싸우다가 화가 난다며 물건을 집어던진 남자친구의 모습을 보고도 다시 만난다. 그 관계가 자신에게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좀처럼 끝내지 못한다. "그냥 헤어져!" 남의 관계에 말을 얹기는 쉽다. 정작 나도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연애가 두어 번 있다.

헤어질 결심만으로 끝낼 수 있다면 다행이다. 한때 사랑했던 사람이 이별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 분노를 폭력으로 표출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난달 12일 제주에서 40대 여성이 전 연인에게 살해됐다. 피해자는 그간 스토킹과 교제폭력 등으로 네 차례 경찰에 신고했지만, 정작 처벌은 원치 않았다. 왜 그랬을까.

일선 경찰서 여성청소년과 수사관들은 이런 여성들이 적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반의사불벌죄가 아닌 상해 혐의를 적용하려 해도 피해자가 진단서 제출을 거부해 애를 먹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떼어놓고 싶어도 그 위험성을 뒷받침할 증거를 피해자가 제공해주지 않으면 어렵다.

성평등가족부가 발표한 지난해 가정폭력 실태조사에선 헤어지지 못하는 피해자의 복잡한 속내를 엿볼 수 있다. 배우자나 파트너의 폭력에 대응하지 않은 주된 이유로 상당수 피해자가 '그 순간만 넘기면 될 것 같아서'(36.3%), '폭력이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해서'(34.0%), '창피하고 자존심 상해서'(31.4%, 중복 응답)를 꼽았다. 피해자들은 상대의 폭력을 어디까지 용서해야 할지 혼란스러워 한다. 신고가 불러올 후폭풍이 두려울 수도 있다. 사정은 제각각이지만, 폭력이 범죄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사생활에서 범죄의 영역으로 넘어온 사건을 피해자의 선택에만 맡길 순 없다.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가정폭력 등 관계성 범죄에 적용하는 반의사불벌죄 폐지와 관련해 "국가적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가해자의 합의 종용과 보복 우려 때문에 자신의 의사에 반해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진술한 여성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피해자의 복잡한 마음을 쉽게 단정할 순 없지만, 폭력 범죄를 막아야 할 책임은 분명 국가에 있다. 어떤 관계는 국가가 나서서 끊어줘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