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경북 안동국제컨벤션센터에서 진행된 제2회 세계인문도시네트워크(WHCN) 총회에 각국 도시·기관 대표단이 참석했다./한국정신문화재단


전쟁과 갈등, AI(인공지능)의 급속한 발전, 인구 감소와 공동체 해체까지. 흔들리는 세계에서 인간이 끝까지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 묻기 위해 세계 각국의 석학과 전문가들이 경북 안동에 모였다. 복합 위기의 시대일수록 사람을 다시 연결하는 것은 거창한 제도가 아니라 서로를 향한 작은 관심과 일상의 다정함이라는 메시지가 포럼 곳곳에서 나왔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경북도, 안동시가 주최하고 한국정신문화재단이 주관한 '인문가치포럼'은 지난달 31일 경북 안동 하회마을 폐회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이번 포럼은 '흔들리는 세계, 변하지 않는 것들'을 주제로 열렸다. AI가 인간의 판단을 대신하고 인구 감소로 지역 공동체가 흔들리는 현실에서 인간의 역할은 무엇인지, 서로 다른 사회와 세대는 어떻게 공존할지 논의됐다.

개막 첫날 기조강연에 나선 이해인 수녀는 기술과 사회가 빠르게 변하는 가운데 일상에서 건네는 작은 관심과 사랑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수도자이자 시인으로 오랜 시간 위로를 건네온 이 수녀는 이병률 시인과의 특별대담을 통해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공감의 메시지를 전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연결하는 인문정신의 의미를 되새겼다.

이후 논의는 전쟁과 갈등 속 평화, 역사와 문화의 전승, AI 시대 인간의 판단과 역할 등으로 확장됐다. '인구 변화 시대의 사회적 포용' 세션에서는 저출산·고령화와 인구 감소를 단순히 숫자의 문제로 바라보는 데서 벗어나 일자리와 주거, 복지, 공동체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사람이 떠나는 도시를 '머물고 싶은 도시'로 바꾸고, 인구 규모를 유지하는 데 매달리기보다 시민 개개인의 삶을 지키는 '사람 중심 도시'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포럼 마지막 날에는 '답이 넘치는 시대, 우리는 무엇을 질문할 것인가'라는 화두가 던져졌다. 조승연 작가와 뇌과학자 장동선 박사는 AI 기술로 빠르게 답을 얻을 수 있는 시대일수록 무엇을 믿고 선택할지 스스로 판단하는 힘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더 많은 정답을 얻는 것보다 어떤 질문을 끝까지 붙들지 정하는 것이 인간의 몫이라는 취지다.

포럼 기간 행사장 곳곳에서는 인문가치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이 펼쳐졌다. 안동국제컨벤션센터 입구 광장과 로비에서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목록에 등재된 '한국의 편액' 실물 전시를 비롯해 체험형 프로그램 등이 운영됐다.

포럼과 함께 열린 제2회 세계인문도시네트워크(WHCN) 총회도 인문학을 도시의 현실과 잇는 자리가 됐다. WHCN은 2024년 안동시 주도로 창립된 국제 인문 협력체다. 올해 총회에는 19개국 35개 도시·기관이 참여해 기후위기와 인구 변화 등 각 도시가 직면한 문제와 대응 경험을 공유했다. 학술 논의를 넘어 도시 간 정책 교류로 협력 기반을 넓혔다는 점은 이번 행사의 성과로 꼽힌다.

사흘간 이어진 논의는 인간 존엄과 공동체 회복을 강조한 '안동선언문'으로 모였다. 폐회식에서 발표된 선언문에는 정책 교류 세션에서 나온 사례와 의견을 바탕으로 인문가치의 실천, 도시 간 연대·협력 의지가 담겼다. 이희범 한국정신문화재단 대표는 "AI 발전으로 인간의 본성이 도전받고 있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이라며 "대한민국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에서 퇴계 이황의 정신을 이어받아 인간의 가치를 지켜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2014년 출범한 인문가치포럼은 올해로 13회째를 맞았다. 국내외 석학과 전문가 등이 참여해 △기억과 기록 △도시와 공동체 △AI와 인간을 중심으로 인간다운 삶을 지탱하는 가치에 대해 논의했다.

지난달 29일 경북 안동국제컨벤션센터에서 '21세기 인문가치포럼' 개막식이 진행됐다./한국정신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