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복지센터에서 한 어르신이 일자리 안내문을 보는 모습. /뉴시스


"가족이라 믿었는데. 가족이기 때문에 남한테 말씀도 못 하세요."

최근 서울 영등포노인종합복지관에서 금융 전문상담역에게 어르신들이 '요즘 무엇을 가장 많이 질문하느냐' 묻자 돌아온 답이다. 금융감독원이 주관하는 '금융사랑방 버스' 교육이 끝나고 1대1 상담이 이어지던 자리였다. 솔직히 다른 대답을 예상했다. 은행 점포는 줄고 송금도 휴대폰 앱으로 하는 시대다. 어르신들의 금융 고민이라면 모바일뱅킹과 키오스크 앞에서의 막막함일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정작 나온 답은 '자식 얘기'였다.

자녀가 부모 명의로 카드를 만들고 휴대폰을 개통해 대출을 받는다. 그 빚을 떠안은 부모가 상담석을 찾는다. 지난해 말 '친족상도례'가 폐지돼 이젠 고소하면 자녀도 처벌받지만 고소장은 부모가 써야 한다. 상담역은 "부모로서 자식을 고소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우실 것"이라고 했다. 명의가 도용된 휴대폰을 해지하고, 노출된 개인정보를 바꾸는 일조차 어르신 혼자서는 버겁다.

보험 상담석에서도 사정이 비슷했다. 오래전 수술 이력이나 꾸준히 먹던 약을 기억하지 못해 가입 때 알리지 않았다가 보험금을 못 받는 어르신이 많다. 보험 상담역은 "설계사한텐 말했는데, 설계사가 보험사에 알리지 않은 경우도 있다"고 했다. 상법상 설계사에겐 가입자의 사정을 고지받을 권한이 없기 때문에 이런 피해자들이 구제받을 길도 없다.

앱을 못 쓰는 건 불편한 일일 뿐이다. 자식에게 빠져나간 돈과 받지 못한 보험금은 사정이 다르다. 되돌리기 어렵고 노후 생계를 위협한다. 어르신들이 상담석에서 털어놓은 건 '불편'이 아니라 '생계'였다. 디지털 교육이 쓸모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어르신 금융의 '빈칸'은 화면 밖에도 있다. 앱은 몇 번 배우면 손에 익는다. 하지만 자녀가 가져다 쓴 명의, 노인이 깜빡 잊어버린 병원기록의 피해는 배워서 익힐 수 없다.

가족문제라 남한테 말 못 하는 고민을 상의할 수 있는 자리가 많아져야 한다. 금융교육은 휴대폰 화면 밖에서 노후를 흔드는 위험도 짚어줘야 하고, 제도는 어르신이 쉽사리 놓치는 빈틈을 한 번 더 메워줘야 한다. 평생 모은 돈을 지킬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노후의 경제적 안전을 위한 최고의 교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