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6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노인종합복지관. 금융감독원 '찾아가는 금융교육'에 참석한 어르신들은 사기범의 실제 목소리를 듣고, 트로트를 개사한 노래로 보이스피싱 대처법을 익혔다. 교육이 끝나고 이어진 1대1 상담에선 사기범이 아닌 자식 이야기가 나왔다.
전문상담역 A씨는 "자녀가 부모님 명의로 카드를 발급받거나 휴대폰을 개통해 대출까지 받고, 그 빚 때문에 상담하시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졌다"고 했다. 이어 "가족이라 믿었는데 가족이라 남한테 말씀도 못 하신다. 빚 부담에 자식 간 불화까지 겹쳐 많이 힘들어하신다"고 전했다.
통계로도 확인된다. 보건복지부와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의 '2025 노인학대 현황보고서 가이드북'에 따르면 노인의 뜻에 반해 재산을 빼앗는 경제적 학대는 최근 5년간 1779건 발생했다. 2024년 보고서 기준 가해자는 아들이 39.9%로 가장 많았고, 학대가 5년 넘게 이어진 경우도 30.9%였다. 금감원 자료에서도 70대 이상 주요 피해 유형으로 보이스피싱 대신 '금융착취'와 '명의도용'을 확인할 수 있다.
드러나지 않은 피해는 더 많다. 지난해 노인학대 사례 중 피해 노인이 직접 신고한 비율은 2.8%에 그쳤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신체적 학대와 마찬가지로 부모들은 자녀를 처벌하기 어렵다며 신고를 잘 하지 않는다. 전문가 입장에서 보면 재정적 학대는 심각한 학대"라고 말했다. 그는 부모가 치매 등으로 판단력이 흐려지면 자녀가 인감을 이용해 부동산까지 처분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덧붙였다.
막을 길은 있다. 지난해 12월 31일 형법 개정으로 가족 간 재산범죄의 형을 면제하던 '친족상도례'가 폐지되면서, 이제 부모가 고소하면 자녀도 처벌받는다. '여신거래 안심차단'을 신청하면 본인 명의로 대출이 새로 실행되거나 카드가 발급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위임받은 가족이 대신 신청할 수도 있다. 허 교수는 "그동안 외부인의 금융사기 교육은 많이 했지만 가족 간 피해는 잘 다루지 않았다. 경로당 교육이나 공익광고로 어르신에게 알리고, 보호자와 자녀에게도 이것이 범죄라는 점을 주지시켜야 한다"고 했다.
상담석에 오른 고민은 가족 문제만이 아니었다. 몰라서 당하는 피해도 많았다. 대표적인 게 다단계다. 지인을 따라 '돈을 돌려준다'는 말에 카드로 물건을 산 경우다. A씨는 "처음엔 다단계라고 말씀을 안 하신다. '이 물건 사면 얼마 받기로 하셨느냐'고 여쭤보면 그제야 '얼마 받기로 했는데 한 번도 받은 적은 없다'고 하신다"고 설명했다. 본인이 직접 카드로 결제한 만큼 카드사도 강제로 취소하기 어렵다.
고령층 사기 피해는 이처럼 '돈을 불려준다'는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금감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60세 이상 사기 피해액 1726억원 가운데 1303억원(75.5%)이 투자사기였다. 보이스피싱은 건수가 줄었지만 건당 평균 피해액이 2022년 426만원에서 지난해 2257만원으로 5배 넘게 뛰었다. 한 번 속으면 노후 자금이 통째로 흔들리는 구조다.
가족 명의도용이든 다단계든 결국 알아야 막을 수 있다. 경리 책임자로 일했다는 한 어르신은 이날 교육을 듣고 "나는 그 일을 해서 알지만 모르는 사람은 정말 모른다. 당할 가능성이 100%"라고 했다. 금감원 교육은 외부인에 의한 사기만 다루지 않는다. 강의자료에는 자녀 등 가까운 사람이 저지르는 금융착취에 대한 대응법이 따로 기재돼 있다. 통장은 본인이 직접 관리하고, 가족에게 돈을 빌려줄 때도 차용증을 쓰고, 나도 모르는 금융거래가 걱정되면 안심차단 서비스에 가입하라는 내용이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재산을 모은 노인일수록 피해가 더 크다. 금융을 잘 모르는 상황에 디지털 기술 고도화가 겹치면서 피해자가 되기도 더 쉬워졌다. 노인에겐 교육이 더욱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교육을 넓혀갈 계획이다. 올해 대학생 봉사단을 140명으로 늘렸고, 내년엔 사랑방버스 차량을 새로 바꿔 운영을 늘린다. 금감원 관계자는 "수강생 의견을 받아 해마다 콘텐츠를 바꾸고 있다. 자녀 명의 문제처럼 직접 연세가 드셔야 느낄 수 있는 고충도 반영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홍보 채널을 다각화해 지방에서도 교육이 많이 열리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EC%9A%B0%EC%B8%A1%20%EC%B5%9C%ED%95%98%EB%8B%A8.jpg)
![[시대대담] "개헌 앞서 협치부터 복원해야" | 헌정회장-서울대 명예교수 대담②](https://i.ytimg.com/vi/4nmuJ9va1pM/maxresdefault.jpg?width=1920&quality=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