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뉴스1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던 가상자산 소득 과세가 사실상 네 번째 유예 수순에 들어갔다. 여당 대표가 직접 "과세를 미뤄달라"고 정부에 공식 제안하면서 정부도 예정대로 과세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기 어려워졌다. 전문가들은 시행에 앞서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하면서도 이번만큼은 유예 기한과 조건을 분명히 못 박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은 가상자산 소득 과세 유예를 정부에 공식적으로 제안한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를 중심으로 당정 협의와 가상자산 사업자 간담회를 거치며 숙고했다"고 설명했다. 재경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전날 공청회를 거친 뒤 2년 유예안을 당 지도부에 건의한 바 있다.

현행 소득세법과 하위 시행령에 따르면 내년 1월1일부터 가상자산을 양도·대여해 얻은 연간 소득에서 기본공제 250만원을 뺀 금액에 22% 세율이 적용될 예정이었다. 그간 정부는 '소득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원칙에 따라 예정대로 과세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지난 5월 국회 토론회에서 문경호 재정경제부 소득세제과장은 "예정대로 내년 1월부터 가상자산 양도와 대여를 통해 발생한 소득에 과세를 시행할 것"이라고 했다. 8월 올해 세법개정안을 발표할 때도 별다른 유예 논의는 없었다.

그러나 이후 정치권에서 과세를 미루자는 목소리가 연달아 나오면서 정부의 기류도 달라졌다. 조승래 재경위원장은 지난달 28일 당정협의회에서 과세 여부를 결론 내기 전까지 국세청 고시부터 미루자고 정부에 요구했다. 이에 이형일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정부는 국민이 납득하고 현장에서 안정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에 대해 숙고하고 있다"고 답변하며 한발 물러선 입장을 내비쳤다. 국세청이 지난달 30일 확정하려던 과세 고시안도 자연스럽게 연기 수순을 밟았다.

민주당은 과세를 위한 제도적 기반이 아직 덜 갖춰졌다는 점을 유예 이유로 들었다. 김 대표는 "과세 원칙, 국내 산업 여건, 이용자 간 형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끝에 우선 디지털자산 기본법을 제정해서 전체적인 틀을 세우고 기업과 투자자들의 적응 기간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뜻을 모았다"고 했다. 해외 거래소 이용자와의 형평성도 걸림돌로 꼽힌다. 해외 거래는 국가 간 정보교환 체계가 자리 잡기 전까지 과세 자료를 확보하기 어렵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은 2029년부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암호화자산 자동정보교환체계(CARF)에 참여할 예정이다. 정치권에서는 시행을 2029년까지 2년 늦추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우선 제도를 정비한 뒤 과세를 시작해야 한다는 시각은 전문가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동행미디어 시대와의 통화에서 "해외 거래소 부분은 제대로 과세를 못 하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법 통과 후) 6년 동안 가상자산의 거래 현실이 많이 바뀌었다"며 "과거에 만든 법이 현실과 안 맞는 부분이 발생해 버린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조세정책의 원칙이 흔들린다는 우려는 남는다. 이번에 미뤄지면 네 번째 연기다. 가상자산에 대한 과세는 지난 2020년 12월 소득세법 개정으로 도입됐다. 당초 2022년 시행이 목표였지만 2023년, 2025년, 2027년으로 세 차례 밀렸다. 그때도 과세 인프라 미비 등이 이유였다. 법을 마련한 지 약 6년이 지나도록 제도 기반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논리가 반복돼 왔다. 민주당 안에서도 이번만큼은 과세를 미룰 수 없다는 의견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오기형 재경위 민주당 간사는 지난달 28일 당정협의회 직후 "세 차례 유예했기에 과세하자는 의견도 있고, 몇 가지를 좀 더 보완하자는 의견도 있다"고 당내 분위기를 전했다.

전문가들은 다섯 번째 유예는 없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박 교수는 "무조건적인 유예는 과세를 안 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한다"며 "'언제까지, 무슨 근거로 유예할 것인가'를 확실히 못 박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도 지난 2일 국회 토론회에서 "이번은 (제도를) 고치기 위한 유예여야 하고, 그 약속을 법률에 적어야 한다"고 했다.

김 대표도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번에는 유예 기간을 분명하게 정하고 해외 거래 정보 활용과 전산 검증, 납세 안내 방식 등 선행 과제 준비를 철저히 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