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회의원(김태규) 제명 촉구 결의안이 상정되고 있는 가운데 국민의힘 의원들의 자리가 비어있다./뉴시스


더불어민주당의 조작기소 특별검사법(특검법) 강행 처리 시도에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로 맞대응했다. 여야 대치 속에 민생법안들은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대결 정치가 이어지면서 오롯이 국민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 조작기소 특검법이 상정되자 필리버스터에 돌입했다. 앞서 상정된 김태규 국민의힘 의원 제명 촉구 결의안과 지방주도성장을 위한 초광역권전략산업특구 특별위원회 구성 결의안은 민주당 주도로 통과됐다. 제명 촉구 결의안은 김 의원이 9월30일 유튜브 방송에서 전두환·윤석열 전 대통령의 행위가 내란이 아니라는 취지로 발언하자 민주당이 이튿날 제출한 것이다.

필리버스터 첫 주자로 나선 박형수 국민의힘 의원은 "이 법안은 명백한 이해충돌 법안"이라며 "대통령 관련 사건을 수사할 특별검사를 대통령이 선정하게 돼 있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의 필리버스터가 시작되자 민주당 의원들은 대부분 본회의장을 떠났다.

특검법은 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민주당 주도로 의결됐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시절 검찰·국가정보원·감사원 등 국가기관의 조작 수사·기소 의혹을 규명하려면 특검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수사 과정에서 진술 회유 등 위법 행위가 있었는지 밝혀야 한다는 취지다.

국민의힘은 이번 특검이 조작이라는 결론을 미리 정해 놓고 이재명 대통령의 형사책임을 없애려는 시도라고 의심한다. 수사 대상 상당수가 이 대통령과 관련된 사건이라는 이유에서다. 수사 대상에는 이 대통령이 기소된 대장동·위례신도시 개발 비리 사건과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등이 포함됐다. 특검에 공소취소 권한을 줄 수 있다는 논란을 낳은 조항은 법사위 심사 과정에서 삭제됐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법무부나 공소청이 특검 수사 결과를 명분 삼아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의 공소취소를 시도할 것으로 본다.

과반 의석을 쥔 민주당을 표결로 막을 수 없는 국민의힘이 꺼내 든 카드가 필리버스터다. 필리버스터는 소수당이 다수당의 법안 처리를 늦추기 위해 쓰는 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 수단이다. 국회법에 따라 재적의원 3분의1(100명) 이상이 요구하면 본회의에 부의된 안건에 대해 시간 제한 없이 토론할 수 있다. 안건 표결은 토론이 끝난 뒤 이뤄진다.

필리버스터는 제22대 국회 들어 부쩍 늘었다. 임기가 시작된 2024년 5월30일 이후 이날까지 필리버스터는 모두 35건 진행됐다. 2년6개월이 채 안 돼 제21대 국회 전체(5건)의 7배에 이르렀다. 제19대(1건)·제20대(2건) 국회와 비교하면 격차는 더 크다. 이날 이전에 필리버스터 대상이 된 법안 34건은 모두 토론이 끝난 뒤 본회의를 통과했다. 필리버스터가 법안을 막지 못한 채 처리 시점만 늦춘 셈이다.

필리버스터가 시작되면 본회의는 사실상 하루 동안 멈춘다. 다수당이 필리버스터를 강제로 끝내려면 재적의원 3분의1 이상이 서명한 토론 종결동의를 제출해야 한다. 이후 24시간이 지나 무기명투표에서 재적의원 5분의3(180명) 이상이 찬성하면 토론이 종결된다.

민주당이 처리 의지를 보인 도시정비법과 도시재정비촉진법 개정안 등은 이날 본회의에 오르지도 못했다. 두 법안은 정부가 지난해 9월7일 발표한 주택 공급대책을 뒷받침하는 내용으로 정비사업 용적률 규제 완화 등의 내용을 담았다. 한병도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정책조정회의에서 두 법안을 거론하며 "국민의힘의 비협조 속에 벌써 1년 넘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라고 말했다.

여야가 앞서 합의한 법안들의 처리도 늦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정책위원회는 9월15일 민생정책 연석회의에서 법안 32건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이 가운데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 대상 기준을 총사업비 5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높이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아직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중소기업의 가업승계 범위를 넓히는 중소기업승계특별법, 의무공개매수제 도입을 골자로 한 자본시장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공개된 합의 법안 가운데 본회의를 통과한 것은 지난달 1일 처리된 응급의료법 개정안과 국민연금법 개정안 정도다. 응급의료법 개정안은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를 막기 위한 법이다. 중증 응급환자의 이송 병원이 신속히 정해지지 않으면 중앙응급의료상황실과 119구급상황관리센터가 중증응급의료센터 등을 수용병원으로 지정하도록 했다.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2027년 제대자부터 군 복무 기간 전체를 국민연금 가입기간으로 인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박창환 정치평론가는 "여야 갈등이 심화하면서 고민해야 할 의제들이 쟁점에 묻히는 상황"이라며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여야가 강성 지지층을 겨냥해 정치적 선명성을 강조하다 보니 극단적인 대결 구도가 생겼다. 합리적인 주장을 하는 집단들이 끌려다니는 구도를 벗어나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