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하루에 수십통씩 불특정 다수의 사무실에 팩스를 보내 해당회사의 정상적인 팩스 사용을 어렵게 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팩스를 보낸 발신처가 대부분 제1금융권 명의로 돼 있다는 점이다.
과거 저축은행과 캐피탈, 카드사 등의 명의로 신용대출을 받으라고 안내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최근 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인터넷진흥원이 팩스스팸을 없애기 위해 제2금융권에 대해 '팩스 스팸감축 방안'을 시행하면서 현재는 모두 금지됐다. 대출모집인들은 이 때문에 시중은행을 사칭해 팩스스팸 영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광고 문건을 보면 당장 급전이 필요한 사람에게 혹할 만한 달콤한 내용도 많다.
주요 내용을 보면 ▲취급수수료 및 부대비용 전액 면제 ▲최저금리 연 3% 우대금리 적용 가능 ▲대출한도 최대 1억원 ▲개인 60개월까지 대출연장 설정 가능 ▲신분증 및 등본으로 대출진행 가능 등 저금리에 쉽고 빠른 대출이 가능할 것처럼 안내돼 있다. 또 제2금융권 및 카드현금서비스 등 고금리 대출을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저금리로 갈아탈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그런데 직접 문의하면 광고내용과 다르다. 이들은 제1금융권에서 대출이 힘들 경우 제2금융권에서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안내한다. 고금리 대출상환을 도와준다고 적혀 있지만 사실은 고금리 대출을 받도록 유도하고 있는 셈이다.
등본 및 신분증으로 대출받는 것도 불가능하기는 마찬가지다. 기본적인 신용등급 확인은 물론 급여명세서, 원천징수영수증, 재직증명서 등 은행이 제시한 다양한 서류가 있어야만 그나마 대출한도를 조회할 수 있다.
일반 직장인이 연 3%의 대출금리를 적용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팩스스팸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어본 결과 한 여성직원은 "연 3%의 금리를 받으려면 대기업 고위 사장이나 임원, 고위 공직자로 신용등급 1등급에 해당하는 사람들만 가능하다"면서 "이는 어느 은행이나 마찬가지"라고 시큰둥한 말투로 설명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또 다른 대출모집인은 주민등록번호와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를 물어보고 대출이 어렵다고 끊기도 했다. 사실상 개인정보만 수집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금융권 측은 자칫 고금리 대출을 받게 되거나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대출문의가 오면 대부분 급전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대출모집인도 인식하고 있을 것"이라며 "개인정보를 구하게 되면 무차별 스팸문자를 보내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들이 최근 휴대폰 대신 직장인이 많이 근무하는 회사를 대상으로 무차별 팩스발송을 하고 있다"면서 "이는 대부분 대출모집인들이 개별적으로 영업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 관계자는 또 "현재 팩스로 보내진 대출안내문은 저축은행이나 캐피탈 등 제2금융권에서 보내는 경우도 많다"면서 "대출이 필요하면 은행 영업점을 직접 방문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조언했다.
◆잇단 팩스스팸 발송 왜?
스팸광고 문건을 자세히 살펴보면 일반 시중은행이 발송했다고 보기엔 미심쩍은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발신은 OO은행 개인여신 1본부라는 그럴듯한 부서이지만, 발신처는 직장인 및 사업자, 대표 및 임직원 등 불명확한 이름으로 적혀 있다. 실제 해당은행에 확인한 결과 영업점에서 개인여신 1본부가 대출안내 팩스를 보낸 일은 없다고 전했다. 또 일부은행은 그런 부서가 아예 없다고 전하기도 했다.
상담전화 번호 역시 의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제1금융권에 전화하면 콜센터로 연결돼 OO은행이라며 은행명을 밝히는 ARS 음성이 나오지만, 팩스스팸 광고에 나온 전화번호로 전화하면 안내음성이 소속을 밝히지 않는다. 또 영업업무가 끝난 시간에 전화를 할 경우 "현재 통화량이 많아 상담이 지연되고 있으니 수신자의 전화번호를 눌러 상담을 예약하라"는 식으로 개인정보를 요구한다.
이처럼 스팸팩스가 시중은행을 사칭해 기승을 부리는 것은 '팩스스팸 감축방안' 때문이다. 방통위와 한국인터넷진흥원은 지난해 12월3일부터 여신금융협회와 협력해 제2금융권에 대해 '대출 팩스스팸 감축방안'을 시행했다.
여신금융협회는 이를 통해 대출모집인 또는 대출모집상담사가 불법으로 대출 팩스 광고를 전송할 경우 상담사의 협회 등록을 해지하는 예방책도 시행중이다.
이처럼 제2금융권의 이름으로 대출모집을 하지 못하게 되자 이들은 시중은행을 사칭해 영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아직까지 시중은행에 대해서는 별다른 제재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곳은 사업자와 직원들이다. 중소기업 한 경리과 직원은 "하루에 많게는 10통이 넘는 스팸팩스가 온다"면서 "이 때문에 팩스종이를 버리는 것이 일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종이와 잉크값을 회사에서 지불하는 만큼 손해도 많이 본다"고 토로했다.
은행 본사도 골머리를 앓는 것은 마찬가지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대출모집인들이 제1금융권 상호로 불법대출을 모집하면서 은행 이미지도 안 좋아지고 있다"면서 "금융당국이 나서서 직접적인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석 금융감독원 서민금융지원국 사기대응팀 팀장은 "일반사무실뿐만 아니라 금융감독원에도 대출안내 팩스가 들어온다"면서 "소비자에게 피해가 생길 수 있는 만큼 은행감독국과 협의해 대응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6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