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이 매각 실패를 겪은 현대증권 대신 주요 계열사인 현대상선을 내놓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격랑을 헤치고 순조롭게 유동성을 확보해나가던 현대그룹이 다시 위기에 몰리는 스토리가 나올지, 이를 극복하는 역경 스토리가 전개될지 관심이 뜨겁다.
◆현대그룹 핵심자구안 ‘불발’
현대그룹의 유동성 확보방안에서 현대증권 매각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컸다. 현대그룹은 현대증권 매각을 통해 6500억원의 자금을 확보하는 계약을 진행 중이었다. LNG운송부문(9700억원)에 이어 두번째로 덩치가 큰 매각 건이었다. 그룹이 지난 2013년 12월 발표한 3조3000억원 마련 자구안에서 20%를 차지하는 규모다.
하지만 지난달 19일 현대증권 인수를 진행하던 오릭스프라이빗에쿼티가 매매계약 해제를 통보했다. 순항하던 그룹의 자구책에 달린 대형스크루 하나가 멈춰선 셈이다. 앞서 현대그룹은 지난 1월 오릭스를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고 같은 해 6월 현대상선이 보유한 현대증권 주식 5307만여주를 6475억원에 매각하는 본계약을 체결했다. 지난 8월 말쯤 대주주 변경도 승인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는 3차례에 걸쳐 연기됐고 넉달 동안 결론이 나지 않았다. 현대증권 지분 9.54%를 손에 쥔 또 다른 주주 자베즈파트너스의 투자자 구성 관련 문제로 서류제출이 늦어지면서 차질이 빚어진 것. 결국 오릭스는 현대그룹과 자베즈가 맺은 이면계약을 문제 삼으며 현대증권 인수를 포기했다. 이면계약에는 ‘투자자들에게 현대그룹 계열사로부터 연 7.5%의 수익을 100% 보장한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증권 매각 실패, 원인과 의혹
증권업계는 현대증권 매각을 놓고 뒷말이 무성했던 부분을 항해 중 멈추지 않는 폭풍을 만난 상황에 비유한다. 일각에서 현대그룹과 자베즈의 이면계약 외에 파킹딜(parking-deal) 의혹, 일본계 대부업체설, 야쿠자 자금 연관설 등이 잇따라 제기됐기 때문이다. 결국 오릭스코리아는 이런 리스크들을 안고 인수를 강행하기 힘들다는 일본 본사의 결정에 따른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 파킹딜 의혹과 관련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현대그룹은 현대증권을 오릭스에 매각한 뒤 3년 후 오릭스가 재매각할 경우 현대그룹이 우선협상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인수 후 4년이 지나면 한달간 미리 정한 가격에 지분을 매입할 수 있는 콜옵션도 마련했다. STX·동부·금호그룹 등도 자구책의 일환으로 계열사를 매각할 때 이 같은 방식을 썼으니 유독 현대그룹만 트집을 잡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논란이 불거진 것은 오릭스가 현대증권 인수를 위해 구성한 사모펀드 오릭스PE에 현대그룹 계열사들이 2008억원을 출자하면서다. 유동성 확보를 위해 계열사를 매각한다면서 오히려 2008억원을 투자한 것. 게다가 현대그룹이 투자한 곳은 공교롭게도 현대증권을 인수하려는 사모펀드다. 외부에 지분을 잠시 맡겼다가 나중에 다시 되찾겠다는 꼼수라는 지적이 일었다.
하지만 이 논란에는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 현대그룹이 오릭스로부터 현대증권을 되사온다고 가정했을 때 금산분리법에 의해 가로막힌다. 금산분리법에서는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으로 신규편입하려면 부채비율이 200% 이하여야 한다. 또 지분율도 10%를 넘어선 안된다. 부채비율이 870% 수준인 현대상선으로서는 현대증권을 되사올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외에도 일본계 자본에 대한 한국사회의 정서도 인수 부담을 키운 것으로 보인다. 오릭스가 국내 5위 증권사인 현대증권을 인수하겠다고 나서자 일각에서는 “오릭스가 일본계 대부업체다”, “야쿠자 자금과 연관돼 있다”는 얘기가 나돌아 현대증권 인수에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매각 불투명… 현대상선 매각설 등장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검찰이 윤경은 현대증권 사장에 대한 수사에 들어가면서 현대증권 매각이 장기표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현대증권은 이번 검찰 조사와 금감원 징계 검토 등으로 인해 확고한 경영권 행사가 불투명해진 입장이다.
앞서 현대증권 노조는 윤 사장이 계열사를 부당지원하는 과정에서 회사에 거액의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하며 지난 9월21일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이에 현대증권은 경영정상화에만 집중하겠다는 입장이다.
증권업계는 현대증권의 재매각 여부를 불투명하게 본다. 재매각이 이뤄지더라도 KDB산업은행의 대우증권 매각을 피해 내년 상반기 이후에나 추진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 와중에 최근에는 현대증권 대신 현대상선을 매각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산업은행은 현대그룹에 현대상선 유동성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자구안을 이달 중 제출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23일 만기가 돌아온 2000억원 상당의 현대상선 차입금 만기를 2개월 연장하는 조건으로 요청한 것이다.
사실상 그룹 구조조정계획을 전면 재검토하라는 요구로 풀이된다. 그러나 운임이 크게 오르지 않을 경우 현대상선은 내년 만기도래하는 부채를 자체상환할 여력이 충분치 않다. 이에 업계에서는 현대그룹이 현대증권과 현대아산을 남겨두고 현대상선을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현대그룹은 현대증권 매각 불발 이후 산업은행과 긴밀히 협의해 추가적인 자구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며 “현대상선 매각은 현재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현대그룹은 자구안 이행에 대해서도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현대증권 매각 외에 자구안에 포함된 다른 방안은 거의 다 이행 중”이라며 “현대증권 매각이 무산됐다고 해도 당장 어려운 상황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0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