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가 대한민국을 뒤흔든 2009년 서울. 재개발 철거에 저항하던 홍대 칼국숫집 ‘두리반’의 주인 안종녀씨는 소설가인 남편 유채림씨에게 말했다. “나는 죽더라도 두리반에서 죽을게. 당신은 아이들을 잘 거둬.” 두리반은 2009년 12월24일 성탄 전야에 철거됐지만 안씨 부부는 이웃들과 함께한 1년6개월의 연대농성 끝에 보상금 2억5000만원을 받는 데 성공했다.

<파티51>은 두리반을 배경으로 한 안씨 부부와 인디밴드 청년들의 성장영화다. 공연장을 빌릴 돈조차 없던 비주류 음악청년들이 두리반에 모여 노래하며 좌충우돌하는 얘기를 풀어낸다. 제14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장편 경쟁부문, 제6회 상상마당 음악영화제 등에 초청됐고 일본 10여개 도시로 수출됐다. 영화 제작자인 정용택 감독은 극장과 인터넷 다운로드, IPTV를 합한 관람객이 1만명쯤 될 것으로 추산했다. 두리반과 홍대 인디밴드, 정 감독 세 당사자의 공감대는 다름 아닌 ‘공간의 부재’였다. 장사할 곳이, 노래할 곳이, 상영할 영화관이 없는 마이너들의 외침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젠트리피케이션 피해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준다.


/사진제공=정용택 감독
/사진제공=정용택 감독

◆삶의 터전 무너뜨린 젠트리피케이션
- 두리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 대구에서 상경해 터전을 잡은 곳은 홍대였다. 2000년대 초반 홍대에 예술인과 외국인, 상업자본이 흘러들어 차츰 관광지화되고 임대료가 올랐다. 처음 살던 집은 보증금 1500만원에 월세 20만원짜리 옥탑방이었는데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며 홍대를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동네가 연남동이었고 당시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이주한 예술인이 많았다. 이후 연남동마저 개발한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다시 불안에 떨어야하는 삶이 계속됐다. 두살 터울 아들딸이 젖먹이였고 일도 해야 하니 주거환경이 열악하더라도 멀리 떠날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 두리반 철거에 대항하는 현수막을 우연히 발견했는데 이곳에서 인디밴드들이 공연한다는 소식에 촬영하러 갔다. 촬영 첫날 인디뮤지션 ‘한받’이 “홍대에서 밀려난 철거민과 음악인들의 처지가 같다”라고 한 말을 듣고 영감을 받았다.

- 두리반은 정당한 보상을 받았지만 대다수의 힘이 없는 세입자들은 힘든 싸움일 것이다.
☞ 두리반이 있던 건물은 연트럴파크(경의선숲길)로 개발된 홍대입구역 맞은편이었다. 지금은 대기업 본사와 프랜차이즈 매장 사이 공터로 남아있다. 당초 재개발을 추진하던 건설사는 보상금 300만원을 제시했다. 안씨가 투자한 권리금만 1억5000만원이었으므로 터무니없는 액수였다. 안씨도 투쟁을 시작하면서는 좋은 결과를 예상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두리반 투쟁은 사그라지기는커녕 함께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51개가 넘는 인디밴드가 투쟁기간 동안 두리반에서 공연했다. 일반인들은 철거현장을 두려워한다. 그 안으로 들어가면 같이 힘든 싸움을 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크다. 하지만 두리반은 문화운동이었다.

- 두리반 철거 이후 10년이 지났다. 법적 권리금이 생기고 문재인정부 들어 상가세입자 보호정책이 진일보했는데. 
☞ 일본 교토에 갔는데 한자리에서 500년 장사한 직물가게가 있더라. 14대가 가업을 이어온 것이다. 일본은 건물주가 세입자를 내보내려면 법적으로 많은 보상금을 내도록 정한다. 새 가게가 들어올 때는 상인연합회가 골목 특성 등을 고민하고 상의해 결정하므로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기 힘든 구조다. 그런데 한국은 이제야 세입자의 10년 재계약 권리가 인정됐다. 이것조차 진전이라고 보기엔 선진국에 비하면 너무 짧다. 나머지는 나아진 것이 없다. 지금도 여러 판례에서 영업권리금이 인정되지 않는 데다 불법적인 강제집행, 환산보증금 문제 등 바뀌어야 할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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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길 먼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선
- 서촌 본가궁중족발 사태가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데 큰 영향을 줬다.
☞ 궁중족발 문제는 법적 허점이 드러난 대표적인 사건이다. 건물주가 300여만원이었던 월세를 1200만원으로 한번에 4배가량 올렸는데 이는 노골적으로 세입자를 내쫓는 수법일뿐더러 권리금을 받을 수 있는 새 세입자를 구하기도 어렵다. 현행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에 따라 기존 세입자와 새 세입자간 권리금계약을 맺은 경우 건물주가 인정해야 하는데 월세를 4배 올리면 당연히 새 세입자가 못들어오기 때문이다. 세입자 김씨는 강제철거 과정에서 손가락이 부분절단됐고 한개는 영구적으로 감각을 상실한 상태다. 이런 큰 희생을 통해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사회적으로 알릴 수 있었다. 세입자 보호도 중요하고 건물투기를 막는 것도 중요하다. 임대료 상승이 종합부동산세와 소득세 증가로 이어져 건물주가 큰 이득을 볼 수 없게 하면 좋은 대안이 될 것이다.

- 정부와 지자체가 예술인과 청년창업 등을 지원하기 위해 도심재생을 통한 임대사업을 확대하는데.
☞ 장기적으로 연속적인 지원이 이뤄진다면 도움은 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해결방안은 아니다. 저렴한 값에 창작활동이나 사업을 위한 공간을 임대해도 지원기간이 끝나면 대부분 다시 갈 곳을 찾아야 한다. 예술인과 젊은이를 끌어들여 도심이 살아나면 임대료가 오르고 이들은 다시 열악한 곳으로 쫓겨나는 과정이 반복된다. 대표적인 곳이 대구 ‘김광석 거리’와 ‘방천시장’이다. 독일에서는 지자체가 뜨는 동네의 건물을 먼저 매수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 임대료 폭등과 젠트리피케이션을 막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한국에 필요한 제도다. 거대자본 앞에 힘없는 개인이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절대 이길 수 없을 것 같던 싸움에서 얻은 교훈은 우리가 처한 현실을 지속적으로 알리고 연대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75호(2019년 1월15~2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