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제도가 위기다. 전세계 어디에도 없는 한국 고유의 전세제도는 서민 주거안정에 기여해 왔다. 높은 집값을 감당하기 힘들고 부동산경기 하락에 대비해 내집 마련을 미룬 실수요자, 금리인상에 따른 노후대비 재테크로 부동산에 투자한 집주인 모두 전세의 수혜자다.

문제는 이른바 ‘깡통전세’로 불리는 전셋값 하락 리스크다. 전세계약이 끝나고 집주인이 집을 팔거나 대출을 받아도 전세금을 다 돌려줄 수 없는 깡통전세가 무서운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정부는 ‘전세 반환보증’ 가입을 독려한다.


하지만 보증료 부담을 세입자에게 전가시킨다는 반발에 부딪힌다. 세입자가 가장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법적 소송제도 등은 개선하지 않고 소비자가 스스로 비용을 들여 재산권을 지켜야 한다는 비판에 힘이 실린다.
돈 내고 돈 받아라?… '전세 반환보증'의 득과 실

◆전세 반환보증시장 급증
전세 반환보증상품을 운영하는 보증기관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SGI서울보증이다. 각각 준시장형 공기업이며 예금보험공사가 대주주다. 세입자가 전세계약 종료 후에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한 경우 보증기관이 대신 갚아준다. 안전한 전세거래를 보장하지만 문제는 보증료다.

HUG 보증료율은 아파트와 일반주택 각각 연 0.128%, 0.154%다. SGI는 각각 0.064%포인트 높은 연 0.192%, 0.218%를 보증료로 받는다. 서울의 전세 6억원짜리 아파트를 산다고 가정할 때 HUG 기준 한달 약 6만4000원을 낸다. 전세금이 더 비싸거나 아파트가 아닐 경우 보증료가 늘어난다.

더구나 최근 SGI는 늘어나는 전세매물과 전세금 미반환 사고에 따라 가입요건을 강화했다. 보험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다. 주택종류별 시세인정 기준 하향조정과 동일한 집주인에 대한 보증서 발급 수를 제한하는 것이 골자다. 즉 전세금을 안전하게 돌려받기 위한 보험상품의 가입마저 모든 세입자가 공평하게 선택할 수 없다는 얘기다. HUG의 경우 계약기간 중 절반 이상이 남았을 때 집주인 동의없이 가입이 가능하지만 보장한도는 전세금 기준 수도권 7억원, 지방 5억원이다.


이런 이유로 보증 가입률은 저조하다. 키움증권이 지난해 한국은행 자료를 분석한 결과 국내 전세금 규모는 512조원 규모로 추산되는데 HUG와 SGI의 전세 반환보증 잔액은 각각 28조7291억원, 7조1000억원이다. 두 기관을 합해도 전체 전세금의 10%에 못미친다.

그럼에도 최근 몇년 사이 가입건수는 급증했다. HUG 가입건수는 2016년 620.65%, 2017년 179.55%, 지난해 184.48% 성장해 지금까지 총 15만9225건, 33조7912억원의 수탁고를 올렸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장병완 민주평화당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HUG·SGI 가입기준 전세금 미반환 사고는 372건을 기록해 1년 새 11배 이상 급증했다. 두 기관이 집주인 대신 세입자에게 돌려준 전세금은 1607억원으로 전년대비 4배 늘어났다.

전세 반환보증 가입이나 미반환 사고가 늘어난 배경은 전셋값 하락이다. 집주인 대부분이 전세시장 위축에 따라 기존 세입자로부터 받았던 전세금을 내줄만한 현금이 없기 때문에 세입자는 보험상품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지난해 11월 말부터 3개월 반 연속 하락해 가장 많이 내린 송파와 강동 등은 2년 새 1억원 이상 떨어진 곳도 생겨났다. 서울 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잠실엘스 전용면적 85.8㎡는 전세 실거래가가 2017년 1월 8억5000만원에서 이달 초 7억원까지 떨어졌다.

HUG 관계자는 “전세 반환보증의 실적증가는 깡통주택 우려에 따른 측면도 있지만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 다양한 공급채널 확대와 홍보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돈 내고 돈 받아라?… '전세 반환보증'의 득과 실

◆보증 가입 의무화, 왜 소비자에게?
전셋값이 떨어지면 세입자뿐 아니라 은행도 전세자금대출을 상환받지 못할 위험이 커진다. 지난해 말 전세자금대출 잔액은 약 92조3000억원이다.

은행 부실화 위험이 커지자 한국금융연구원은 정부에 전세 반환보증의 의무가입을 건의, 논란을 낳았다. 금융감독원은 이미 시중은행에 전세 반환보증 가입을 적극 권유하라는 지침을 내린 상태다.

서병호 한국금융연구원 가계부채연구센터장은 “일부 갭투자자가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해 분쟁으로 비화하는 사례가 발견됐다”면서 “집값 대비 전셋값 비율이 일정 수준 이상이거나 주택담보대출을 낀 상태로 받은 전세자금대출 등은 보증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세입자나 집주인에게 보증의무를 강요했을 때의 반발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보험료 부담이 결국 전셋값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집주인에게 전세금 일부를 빌려주는 역전세대출 출시, 깡통전세의 경매유예 기간연장, 하우스푸어가 은행에 집을 매각 후 재임대하는 ‘세일앤드리스백’ 등의 대안이 검토된다. 역전세대출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도입된 바 있다.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세입자는 계약종료 전 한달에서 3개월 사이 집주인에게 재계약 의사가 없음을 밝히고 계약기간이 지나도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한 경우 전세금 반환소송을 할 수 있다.

법원에 지급명령을 신청해 2주 안에 상대방의 이의제기가 없을 때는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 만약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한 상황에서 이사해야 하는 경우 법원에 ‘임차권 등기명령’을 신청, 등기부등본상 전세금 미반환 사실을 적시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법적절차를 진행하는 데 6개월 안팎이 소요돼 대부분의 세입자가 금전적 피해를 입는 문제가 수십년간 반복됐다.

부동산학계 관계자는 “전세 반환보증 가입을 의무화하는 것이 대안일 수 있지만 확정일자에 대한 법적권리를 강화하는 게 적은 비용을 들이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선순위 채권자일 경우 굳이 보험가입이 필요없지만 일반 세입자들 입장에선 후순위채권 등에 대해 보호받을 방법이 없는데 보증료가 높은 문제도 있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또 “경매기간 동안 세입자가 이자 등을 부담해 금전적 피해를 입는 구조도 잘못”이라면서 “전담법원을 만들어 경매에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시키는 방법도 고민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전세 반환보증 가입의 선택은 소비자에게 달렸지만 법적 보호장치가 약해 보험료를 강제부담하는 것은 최고의 대안이 아니라는 의미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80호(2019년 2월19~2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