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 /사진=머니S DB
청계광장. /사진=머니S DB


대화가 탁탁 막히는 사람이 있다. 얼마 전까지 코칭했던 물류회사 회계팀 이철우 팀장이 그런 경우다. 그와 몇차례 대화를 나눴지만 정보 교류에 그쳤다. 대화는 정보가 아닌 감정을 나누는 행위다. 정보 이면의 감정에 공감하기 위해서는 경청 능력이 필요하다.


경청 능력이 좋은 사람은 상대의 정보 너머의 마음을 듣는다. 정보를 듣는 것은 수사관처럼 사실 관계를 따지고 논리적 모순을 찾아내고 추론한다. 한마디로 ‘말하기 위해’ 듣는 것이다. 상대를 해결해야 할 문제, 파헤쳐야 할 이슈, 고쳐야 할 오류로 치부한다. 이때 상대방은 내 주장을 펼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상대방의 마음을 듣는다는 것은 상대의 말이 아닌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듣는 것이다. 상대가 전하는 이야기 속에서 그의 기쁨, 슬픔, 희망과 절망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상대의 경험이 나와 다르고 관점이 낯설고 사안을 해석하는 방식이 달라도 괜찮다.

이처럼 잘 들으려는 마음이 좋은 경청의 전제라면 나쁜 경청의 주원인은 존중의 결여다. 상대를 존중한다면 대부분의 나쁜 경청의 폐해는 눈 녹듯이 사라진다. 문제는 나쁜 경청을 하면서 자신이 경청을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다. 대표적인 나쁜 경청은 다음과 같다.


‘전환하기’. “그 말을 들으니까 생각났는데…”라며 말한 사람의 마음을 공감해주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주제나 이야기로 바로 넘어간다. 기어이 자기 관심사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과장하기’. “그 정도 가지고 뭘 그래? 나는 지난주에 더한 일도 있었어!”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이유가 더 강도 높은 이야기로 상대를 능가하기 위해서다.

‘교정하기’. “그건 이렇게 하면 안되지.” 이 경우는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제를 진단해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한다.


‘판단하기’. “글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요.” 이들은 상대의 말에 99% 동의하더라도 동의하지 않는 1%를 따지고 든다. 화자에게 중요한 부분은 무시된다.

이런 나쁜 경청의 주범은 오히려 자신의 의도가 긍정적이라고 항변한다. 상대의 길게 늘어지는 말을 꾹 참고 들은 후 자신이 한 발언이 제대로 경청한 결과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당신의 말은 상대에게 당신 자신에 대한 이야기로만 들릴 뿐이다.

좋은 경청을 하려면 기술을 익히기 것으로는 부족하다. 경청의 장애물인 ‘전환’, ‘과장’, ‘교정’, ‘판단’ 등 나쁜 경청의 주범을 차단하라. 경청의 관건은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03호(2019년 7월30일~8월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