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위기에 빠질 때 등장하는 은행이 있다. ‘구조조정 해결사’ 산업은행이다. 최근 산업은행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사태로 자금난에 허덕이는 기업에 수조원의 정책금융 자금을 투입키로 했다.

먼저 두산중공업에 5000억원 긴급대출을 지원한다. 일종의 ‘마이너스 통장’ 개념인 한도 여신(크레디트 라인) 지원이다. 국내 원자력발전소에 주요 기기를 독점하는 두산중공업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대비 52.5% 줄어든 877억원, 당기순손실은 4952억원을 기록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차입금은 4조9000억원에 달한다. 자회사를 포함하면 빚은 5조9000억원으로 늘어난다. 이 가운데 올해 만기가 도래하거나 상환청구권 행사가 가능한 회사채 규모는 1조2000억원, 이번달에 갚아야 할 빚은 6000억원이다. 산업은행이 5000억원을 투입해도 두산중공업의 정상화를 기대하긴 어렵다는 얘기다.
코로나19 사태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항공업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산업은행은 제주항공과 진에어에 각각 400억원과 300억원의 긴급 운영자금을 무담보 조건으로 대출해준다. 셧다운 상태인 이스타항공은 산업은행이 제주항공의 인수금융 2000억원 중 1000억원을 신디케이트론(여러 금융기관이 공동대출)으로 지원한다.


채권시장도 산업은행에 미션을 줬다. 산업은행은 이달 만기가 도래하는 국내 회사채 6조5495억원 중에서 2조2000억원을 인수하고 1조9000억원을 차환발행한다. 회사채는 ‘회사가 발행하는 채권’으로 차환발행은 미래를 담보로 회사채를 또 찍어내는 ‘빚 돌려막기’ 방식으로 볼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국내 기업의 신용등급이 더 내려갈 경우 산업은행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하는 상황에 처한다

국책은행의 기업 구조조정 문제는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2018년 9월 취임한 후 STX조선, 금호타이어, 한국GM 등 골칫덩이 구조조정을 연달아 처리했다. 지난해 4월에는 구조조정 전담 자회사인 ‘KDB인베스트먼트’를 출범해 부실기업의 구조조정도 맡겼다.

하지만 KDB생명과 대우건설, 대우조선, 현대상선 등 산업은행이 처리해야 할 굵직한 구조조정들이 남아있다. 최근에는 유럽산 부품 공급 차질로 공장 라인별 순환휴업에 들어간 쌍용자동차에 유동성 문제가 불거지면서 산업은행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이동걸 회장은 올 초 신년사에서 산업은행의 혁신기업 지원 역할을 강조했다. “과거의 틀을 깨는 지혜로 변화와 혁신을 완성하자”며 ‘파옹구우’(破甕救友)라는 고사성어를 인용한 것이다. 옹기를 깨뜨려 친구를 구한다는 뜻으로 혁신에는 언제나 희생이 따른다는 의미다.

오는 9월 임기 만료를 앞둔 이 회장은 산적한 기업 구조조정을 마무리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타이밍을 놓치면 바이러스로 감염된 기업의 연쇄부실로 이어져 한국경제 위기가 현실화될 수 있다. 이 회장의 구조조정 방향에 관심이 쏠린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39호(2020년 4월7~13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