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16일 한국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 제정에 대한 경제계 공동 기자회견'에서 김용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 사진=한국경영자총협회
정부가 기업규제 입법 드라이브에 가속페달을 밟으면서 재계의 시름이 깊어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위기상황에서 잇단 규제입법으로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어서다.
재계가 반발했던 공정경제 3법이 이미 국회의 문턱을 넘은 가운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집단소송제·징벌적손해배상제 등의 도입에도 파란불이 켜져 재계의 우려를 키운다. 이대로는 내년 경영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란 위기감이 팽배하지만 정부가 재계의 입장을 수용해 규제입법의 속도조절에 나설지는 미지수다.

재계 반대에도 공정 3법 통과

최근 국회의 문턱을 넘은 공정경제 3법은 ▲상법 개정안 ▲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복합기업집단감독법 제정안 등을 지칭한다. 상법 개정안은 상장회사의 주주총회에서 이사 선임 시 일반 이사와 감사위원회 위원(이사)을 분리 선임하도록 하고 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등의 주식 의결권을 개별로 3%씩 제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일감 몰아주기 등 총수일가의 사익 편취 규제 대상을 현행 총수일가 지분 상장 30%·비상장 20% 이상에서 상장·비상장 모두 20%로 일원화하고 이들 기업이 지분 50%를 넘게 보유한 자회사도 포함하는 등 규제범위를 대폭 강화했다.

금융그룹감독법원은 ▲소속 금융회사들이 둘 이상의 금융업을 영위하고 ▲소속 금융회사의 자산총액이 5조원 이상인 기업집단은 금융복합기업집단으로 지정해 감독을 받도록 했다. 이에 대해 재계는 기업의 경영권에 침해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표하며 수정이나 보완장치 마련을 요구했지만 국회는 별다른 수정 없이 법안을 통과시켰다.

대한상공회의소를 비롯한 주요 경제단체가 지금이라도 보완입법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하고 있지만 정부는 “공정경제 3법은 우리 경제 각 분야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고 ‘공정하고 혁신적인 시장경제 시스템’을 구현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이라며 “기업 경영의 투명성·책임성과 우리 경제의 건전성이 제고될 것”이라고 긍정적인 면만을 강조하고 있다.


▲실업자와 해고자 노조 가입 허용 ▲노조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 규정 삭제 등을 담은 노조법도 국회를 통과했다. 국내 노·사관계가 대립·투쟁적인 상황에서 사용자 측에는 별도의 대항권을 마련해주지 않은 채 사실상 노조의 단결권만 대거 강화된 것으로 노조로의 힘 쏠림 현상이 더욱 심해지고 파업이 잦아질 것이란 우려가 커진다.

문제는 앞으로다. 정부와 국회가 추가적인 규제입법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 대표적인 법안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다. 해당 법안은 산업안전 의무를 소홀히 해 사업장 내 노동자를 중대재해에 이르게 한 기업의 경영자를 처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사업장 내에서 발생하는 인명사고의 책임을 전적으로 사업자에게 물리는 강력한 처벌조항을 마련함으로써 적극적인 안전대책 마련을 유도하려는 취지다.

/표=김영찬 기자

추가 규제입법 줄줄이 대기 중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정의당에서 가장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으며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도 입법을 서두르고 있다. 여야가 모두 입법에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만큼 사실상 해당 법안 통과는 시간문제라는 지적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임시국회 내에서 해당 법안을 통과시킬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재계는 이 법안이 모든 인명사고에 대해 인과관계 증명도 없이 필연적으로 경영책임자와 원청에게 책임과 중벌을 부과하는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재계 단체 관계자는 “기업은 이미 선제적으로 강화된 안전대책을 시행하고 사업장 내 환경안전에 역량을 쏟는 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이미 강화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개정안이 시행 중인 상황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까지 도입해 모든 책임을 사업주에게 지우겠다는 것은 지나친 과잉처벌”이라고 토로했다.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 도입도 재계의 우려를 키우는 법안이다. 법무부는 지난 9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확대 도입하는 집단소송법 제정안과 상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아직 발의는 되지 않았지만 내년 3월 첫 임시국회에서 법안이 처리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해당 법안이 시행되면 집단소송제도를 피해자가 50인 이상인 모든 분야로 넓히고 위법행위를 한 기업은 실제 손해보다 최대 5배까지 배상 책임을 지게 된다. 정부는 피해규모가 큰 사건의 효율적인 구제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하지만 재계는 기업의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반발한다. 특히 입법예고안에서 변호사가 제한 없이 집단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허용해 전문 브로커가 소송을 부추기거나 기획소송을 통해 소송이 남발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되면 기업은 막대한 소송비용은 물론 기존 행정제재와 형사처벌에 더해 민사적 처벌까지 ‘3중 처벌’에 시달릴 것”이라며 “무엇보다 소송 대응 여력이 없는 중소·중견 기업이 입을 피해가 막대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도 “기업 규제 중심의 정책과 입법은 기업 활력을 위축시킬 뿐 아니라 우리 경제 회복과 미래 성장 동력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