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속도 붙은 EU 원전 드라이브… ‘K-택소노미’ 수정될까
(2) 커지는 전기요금 인상 압박… 해법은 원전?
(3) ‘EU 택소노미’에 원전업계 기회 될까… 눈여겨 볼 기업 어디?
(4) 탈원전 존속이냐 폐기냐… 공은 차기 정부로
유럽연합(EU)이 원자력 발전을 친환경 에너지로 분류하는 내용의 ‘그린 택소노미’ 확정안을 발의하면서 한국의 ‘K-택소노미’에도 변화가 생길지 주목된다. 경제계를 포함한 친원전 진영에서는 한국도 ‘K-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 시켜 국내 원전 기술력을 강화하고 글로벌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원전을 제외한 국내 녹색분류체계 규정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반대 진영의 주장도 만만치 않아 이를 둘러싼 논쟁이 한층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EU, 조건부로 원전 투자 친환경 분류
그린 택소노미는 특정 에너지원이 녹색(친환경) 사업인지 아닌지를 분류하는 기준이며 ‘EU 택소노미’는 유럽의 녹색 분류체계다. 이 기준에 따라 친환경 에너지로 인정받으면 녹색채권·녹색기금 등 각종 금융 혜택을 받을 수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2일 원전과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을 택소노미에 포함하는 규정안을 확정해 발의했다.확정안은 원전 투자가 친환경으로 인정받기 위해선 일정 조건을 충족해야 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신규 원전은 2045년 이전에 건설 허가를 받아야 하고 ▲건축을 실행하기 위한 자금과 부지 계획 제출 ▲2050년까지 방사성 폐기물 처분 자금과 부지 등이 조건이다. 기존 원전도 2025년부터 더 안전하다고 평가받는 사고 저항성 핵연료를 사용하는 것을 조건으로 2040년까지 승인을 받으면 친환경 투자로 분류한다.
EU 택소노미 최종안은 향후 4개월간 EU 회원국과 유럽의회의 논의를 거칠 예정이다. 27개 EU 회원국 중 20개국 이상이 반대하거나 EU 의회 과반이 거부하지 않으면 내년 1월부터 시행한다.
경제계는 비록 조건부이지만 EU 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한 것은 유럽 내 국가의 원전 회귀를 의미한다고 풀이한다.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은 “EU 집행위원회의 최종안은 탄소감축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원전 활용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인정한 것”이라며 “지난해 재생에너지와 천연가스 공급 불안정으로 에너지 대란을 겪은 EU가 경제적이면서도 안정적으로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원전의 중요성을 체감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유럽은 안전성을 이유로 탈원전을 추진했지만 최근 몇 년 새 원전에 전향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 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지난해 10월 “우리에겐 안정적인 에너지원인 원자력이 필요하다”며 원전의 가치를 인정했고 프랑스와 영국, 네덜란드, 핀란드 등은 원전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한국은 아직 원전을 친환경 에너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30일 발표한 ‘K-택소노미’ 가이드라인에서 LNG와 수소를 친환경 에너지로 분류했지만 원전은 최종 제외한 바 있다.
K-택소노미에 원전 포함될까
경제계는 한국도 ‘K-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환익 본부장은 “K-택소노미에 원전을 제외하면서 신규 원전 건설, 차세대 원전 기술 투자의 동력이 상실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며 “EU도 원전을 탄소중립의 핵심 수단으로 삼는데 반해 우리만 거꾸로 가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녹색분류체계 가이드라인을 재검토해 원전을 녹색기술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EU 택소노미는 오히려 원전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 것이라며 원전 확대에 부정적인 주장도 나온다. 시민단체 에너지전환포럼은 “EU 최종안은 강화된 원전 안전성 개선 및 핵폐기물 처분 책임 방침이 반영돼 있어 그대로 확정하더라도 국내 원자력계가 결코 충족시킬 수 없는 고강도 방침”이라고 지적했다. 2050년까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방폐장) 확보 및 운영 세부계획 제출과 심의조건, 사고저항성 핵연료 사용 조건은 국내외 원자력계가 사실상 실현하기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에너지전환포럼은 “세계적 난제인 고준위 방폐장은 지리적으로 유리한 핀란드와 스웨덴만 확보했고 이들조차 반세기의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며 “사고 저항성 핵연료도 국제적으로 반세기 동안 사용돼 온 핵연료 설계와 원자로 설계코드까지 변경해 인허가과정을 거쳐야 하는 큰 변화로 개발시간과 비용은 물론 상용화 여부조차 불확실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내 원자력계는 전후맥락과 내용을 무시한 채 ‘EU 그린 택소노미 원전포함’이라는 헤드라인만 떼어 ‘EU가 원전으로 회귀했다’는 식으로 여론을 호도하는 행위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정부는 K-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할 지 여부를 들여다보겠다는 입장이다. 한정애 환경부 장관은 최근 “EU 내에서도 원전을 두고 회원국 간 갈등이 있다”며 “올해 상반기 중에 EU 최종안이 확정되면 그때 우리도 이를 토대로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금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소가 전혀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여서 어디까지가 사회적으로 합의 가능한 지점인지 논의가 충분해야 한다”며 “논의를 통해서 결정한다면 (원전을 포함하는 게) 가능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