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서민들의 시름이 날로 깊어지고 있다. 사진은 1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고객들이 장을 보고 있는 모습. /사진=한영선 기자

"필요한 것만 담아도 10만원이 훌쩍 넘네요. 들었다 놨다를 반복합니다."

생활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서민들의 시름이 날로 깊어지고 있다. 지난 1일 오후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만난 아들 둘을 키우고 있다는 주부는 "한창 자랄 때라 같은 음식을 또 먹는 걸 싫어한다"며 "성장기인 아이들을 위해 다른 건 몰라도 고기, 과일, 우유는 좋은 제품을 먹이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한국무역통계진흥원에 따르면 4월 수입 축산물 수입가격지수는 154.5(2015=100)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39.0% 상승했다. 품목별로 보면 수입 냉동 소고기가 1년 전보다 55.6% 올랐다. 이어 ▲냉장 소고기(42.5%) ▲닭고기(37.2%) ▲돼지고기(13.9%) 순으로 상승했다.

냉동고기를 사서 소분해둔다는 소비자도 있었다. 40대로 추정되는 한 주부는 "요즘 들어 고기는 미국산이나 호주산을 사서 소분해 냉동실에 보관해서 먹는다"며 "뉴스에서는 올랐다는 물가랑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물가가 다르다. 꼭 필요한 것만 담아도 10만원이 훌쩍 넘어 몇번을 들었다 놨다 한다"고 말했다.
5월 소비자물가가 5%를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많다. 사진은 1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고객들이 장을 보고 있는 모습. /사진=한영선 기자

5월 소비자물가가 5%를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많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인상한다는 의지를 드러냈고 기획재정부도 최근 긴급 물가안정 대책을 발표했다. 다만 추가경정예산 집행 등 물가 상승 효과가 겹쳐 앞으로 수개월간 높은 물가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자녀가 없는 신혼부부에게도 물가 상승은 부담으로 다가온다. 30대 중반의 한 부부는 "친정에서 고추장 같은 장류는 보내줘 그나마 다행이지만 나머지 품목의 가격이 오르고 있어 식재료가 떨어졌을 때만 나와서 장을 본다"며 "2인 가구도 부담을 느끼는데 자녀가 있는 분들은 오죽할까 하는 심정이 든다"고 말했다.


매대 앞에서 한참을 서서 가격표를 유심히 보는 소비자들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할인 행사를 하지 않는 수입 과일코너보다 1만원 내외로 과일을 구매할 수 있는 이벤트성 매대에 사람들이 몰렸다. 전체적으로 전단행사를 진행하는 곳에는 사람들이 붐볐지만 이외의 코너들은 한산한 편이었다.

50대의 한 소비자는 "3인 가구 기준으로 마트에서 10만원 넘게 장을 보더라도 하루 이틀 지나면 메인 음식인 육류는 금방 먹게 된다"며 " 과일값이 부담돼 동네 과일가게에 가봤지만 가격은 같은데 갯수는 줄어있었다"고 말했다.
1일 서울 한 대형마트에서 고객들이 수박을 고르고 있다. /사진=한영선 기자

식재료비 이외에 외식비도 만만치 않다고 하소연하는 소비자도 있었다. 한 주부는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공원에 다녀왔는데 주유비, 입장료, 식사비, 카페비를 내고 나니 30만원이 넘게 나왔다"며 "식비라도 줄여보고자 오랜만에 장을 보러 나왔지만 생각보다 많이 올라있어 동네에 있는 식자재마트에도 둘러봐야겠다"고 말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4월 외식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6.6% 올랐다. 1998년 4월(7.0%) 이후 24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품목별로 보면 갈비탕이 12.1% 올라 상승률이 가장 높았다. 이어 ▲생선회(10.9%) ▲김밥(9.7%) ▲자장면(9.1%) ▲라면(9.1%) ▲피자(9.1%) ▲치킨(9.0%) ▲소고기(8.4%) ▲떡볶이(8.3%) ▲막걸리(8.3%) ▲냉면(8.2%) ▲짬뽕(8.0%) 순으로 상승폭이 컸다.

자영업자들 역시 가격 인상 압박을 견디고 있다. 재료값이 오른 상황이지만 아직까지 소비자 가격에 반영되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 서울에서 작은 피자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한 사장은 "식재료비가 오른 부담을 온전히 자영업자가 떠안고 있다"며 "피자 토핑인 불고기, 비프스테이크, 페페로니, 깐쇼새우 등의 가격이 올랐지만 주변 가게들도 눈치 보고 있는 상황이라 인상분을 바로 소비자 가격에 적용시킬 수 없어 최대한 버티는 중"이라고 했다.

김인중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은 지난달 3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2022년 제1차 농식품 수급상황 점검회의'에서 "축산물 물가는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에 따른 수요 증가, 사료비 증가 등으로 강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어 "가공식품과 외식 물가도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인건비 상승 등에 따라 오름세를 보이는 상황"이라면서 "농축산물 생산과 국제 원자재 수급 동향을 상시 점검해 수급안정 대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치솟는 밀 가격… 내년까지 지속될 듯

1일 오전 서울 한 대형마트에서 고객들이 가공식품 코너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한영선 기자

한국소비자원 참가격에 따르면 전국 대형마트에서 판매되는 중력다목적용 곰표 밀가루(1㎏)의 지난 달 20일 기준 평균가격은 1610원으로 1년 전 평균가격(1357원)과 비교해 18.6% 상승했다.

유럽 최대 밀 수출국으로 불리는 프랑스의 올해 작황도 최악일거란 전망이 나온다. 건조한 기후가 계속되면서 가뭄 위기가 커지고 있어서다. 미국도 심각한 가뭄을 겪고 있다. 김지연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 해외농업관측팀 전문연구원은 "세계 밀 생산량 2위 국가인 인도의 밀 수출 금지 소식도 악영향을 미쳐 밀 가격이 최고점을 찍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최지현 GS&J 시니어이코노미스트(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원장)는 "올해 수확될 수 있는 밀의 양이 평년 대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며 "밀 가격 폭등 여파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며 내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한국의 곡물자급률은 20%대 수준으로 매우 낮다. 사진은 1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고객들이 장을 보고 있는 모습. /사진=한영선 기자

일각에서는 정부가 식량안보의 심각성을 제대로 알고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국은 밀 수입을 미국·캐나다·호주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물가안정과 더불어 식량안보의 중요성이 거론되고 있다. 식량자급률은 50%에 육박하나 밀 등의 곡물자급률은 20%대 수준이어서다.

이철호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명예이사장(고려대학교 명예교수)은 "국제 정세가 불안할 때 식량을 스스로 보유하지 않은 나라는 위험하다"며 "선진국 대부분이 식량을 갖고 있는데 반해 한국의 곡물 자급율은 20%대에 그친다"며 "정부가 민간 곡물 비축량을 늘려야 하고 농업 예산을 확보해 국민들에게 식량안보의 중요성을 일깨워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