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비유처럼 동굴에 갇히면 벽에 비친 그림자를 현실로 착각한다. 정치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강성 지지층의 공간에 오래 머물다 보면 그들의 목소리가 마치 다수 민심처럼 들리기 시작한다. 문제는 그 순간 정치의 기준 자체가 흔들린다는 점이다. 정치가 '의식의 동굴'에 갇히는 것이다.
"계엄도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발언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국민의힘 장동혁 의원이 당 대표에까지 오르는 과정을 보며 한때 '브라질의 트럼프'로 불렸던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이 떠올랐다. 보우소나루 정치의 핵심 기반은 복음주의 교회였다. 브라질 인구의 약 30%를 차지하는 이 네트워크는 강력한 정치 조직으로 성장했다. 이 세력에 올라탄 그는 반좌파 노선에 종교적 보수 가치를 결합해 강력한 정치 동원력을 만들어냈다.
지지층의 에너지는 폭발적이었다. 그러나 그 정치의 기반은 넓은 민심이 아니라 협소한 열광층이었다. 도덕의 이름으로 상대를 악마화하는 종교적 '선악' 구도와 갈라치기의 정치적 폐해는 심대했다. 2022년 대선에서 룰라 현 대통령에게 패한 보우소나루가 지금은 선거 출마 금지와 쿠데타 의혹 수사에 묶여 정치적 수세에 몰린 건 우연이 아니다. 극단 정치가 결국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힐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윤 어게인' 세력 가운데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거론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 듯하다. 트럼프 정치의 핵심은 반이민과 국경 봉쇄, 낙태 인종 이슈 등 문화전쟁이었다. 백인 복음주의도 결합했다. 윤 어게인 세력 역시 그런 트럼프 지지층과 문화적·심리적 연대를 공유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아메리카 퍼스트'로 수렴되는 트럼프 정책은 기본적으로 동맹국의 이익까지 훼손하는 국가주의적 포퓰리즘 성격이 강하다.
한국의 정치 구조는 미국이나 브라질과 다르다. 자유무역을 근간으로 하는 우리 경제에선 이념에 따른 정책 차별성이 크지 않다. 종교 정치의 동원력도 제한적이다. 그래서 '윤 어게인' 세력의 등에 올라탄 장 대표의 정치 노선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도통 가늠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계엄 사태는 보수 대 진보의 경쟁을 넘어 '민주 대 반민주'라는 원초적 기준을 많은 국민에게 각인시켰다. 정치 노선 이전에 상식과 법치의 문제로 받아들여졌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체제 전쟁" "제2의 건국전쟁" 같은 낡은 구호에 매달렸으니 동굴에서 바깥 세상을 재단한 꼴이다.
존립 위기에 놓인 국민의힘이 참고할 만한 사례는 독일 보수 정치다. 독일 역시 극우의 부상이라는 시험대 위에 올라 있다. 반이민을 앞세운 극우 정당 AfD가 지지율 20% 안팎을 기록하며 존재감을 키웠지만 독일 보수의 중심인 기독민주당(CDU)은 극우와 선을 긋는 '방화벽' 원칙을 허물지 않았다. 극단의 언어로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유혹이 결국 보수 정치의 토대를 무너뜨린다는 역사적 교훈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나치 집권의 경험이다. 물론 보수 가치와 중도의 실용주의를 아우르는 '넓은 정치적 우산'이었던 기독민주당이 메르켈 퇴임 이후 극우 득세 속에 지지 기반이 다소 흔들리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극우와 경쟁하되 극우로 이동하지 않았다. 이것이 독일 보수의 생존 전략이다.
국민의힘이 어정쩡하게 '윤 어게인' 세력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당장 눈앞의 지방선거가 급했을 것이다. 이제 국민의힘은 다시 40% 정당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있을까.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선언이 아니라 실질이다. 국민의힘이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 다시 서려면 '절윤' 선언을 넘어 '상식과 법치'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정당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성장과 미래의 담론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게 '동굴 정치'에서 벗어나 중도 보수와 합리적 보수의 지지를 회복하는 길이다. 동굴 밖에는 체제 전쟁이니 제2의 건국전쟁이니 하는 소리에 공감할 이들이 없다.
장동혁의 국민의힘이 단호하게 그 길을 가지 못한다면…. 차라리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확대해 전국 정당의 외피를 벗고 일정 지지층을 대표하는 몇십 석 규모의 '중형 정당'으로 가는 것이 현실적 생존 전략일지도 모른다. 그런 일은 없기를 바란다. 보수와 진보의 팽팽한 긴장 관계야말로 중도를 확장하고 민주주의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힘이라 믿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의 균형추는 이미 한쪽으로 크게 기울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