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시중은행들이 이사회 내 소비자보호 전담 기구를 잇달아 신설하며 관련 의사결정 체계를 대폭 강화하고 있다. 금융소비자 보호를 단순 실무 영역이 아닌 이사회 차원의 핵심 경영 의제로 끌어올리며 금융당국이 제시한 '금융소비자보호 거버넌스 모범관행'이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금융그룹(하나금융지주)은 이날 정기 주주총회 의결을 거쳐 이사회 내 '소비자보호위원회'를 공식 출범했다. 하나금융은 앞서 지난해 10월 금융권 최초로 이사회 내 소비자보호위원회 신설 계획을 밝히며 관련 거버넌스 강화에 선제적으로 나선 바 있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소비자보호위원회 신설을 통해 금융산업 전반의 소비자보호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그룹 차원의 일관된 소비자보호 거버넌스 정책 추진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은행권 전반으로도 소비자보호 기능을 이사회 수준으로 격상하는 흐름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오는 25일 정기 주주총회를 거쳐 이사회 내 소위원회인 '소비자보호위원회'를 신설할 예정이다. 해당 위원회는 소비자보호 전문성을 갖춘 사외이사를 포함한 3인으로 구성되며, 반기 1회 정기 개최를 원칙으로 하되 필요시 수시로 열려 소비자보호 관련 경영 전략과 정책을 직접 심의·의결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게 된다.
앞서 우리은행도 이사회 내 전문 소위원회 형태의 '금융소비자보호위원회'를 신설했으며, 신한은행 역시 이사회 내 '소비자보호위원회'를 새로 꾸렸다. 특히 정상혁 신한은행장은 이찬진 금융감독원장 직속으로 출범한 '금융소비자보호 자문위원회'에 은행권 대표로 참여했다.
이 같은 변화는 금감원이 최근 제시한 '금융소비자보호 거버넌스 모범관행'에 따른 후속 조치로 풀이된다. 당국은 그간 소비자보호가 현업 부서 중심의 사후 대응에 머물러 있다는 문제의식을 제기하면서 이사회가 직접 소비자 관련 리스크를 점검하고, 사전에 차단하는 구조로의 전환을 요구해왔다.
앞서 금감원이 '2026년도 은행부문 금융감독 업무설명회'에서 올해 은행권 감독·검사 방향으로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 지배구조 개선, 포용금융 확대 등을 제시한 점도 은행권의 관련 움직임을 앞당긴 배경으로 꼽힌다. 금감원은 올해 금융상품의 설계·심사·판매 전 과정에 걸쳐 소비자보호 중심의 관리체계가 자리잡을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여기에 금융상품 불완전판매와 고위험 투자상품 손실 등 소비자 피해 이슈가 반복되면서 단순한 내부통제 강화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커졌다. 이에 따라 이사회 차원에서 소비자보호 정책을 사전에 검토하고 이를 주요 의사결정에 반영하는 구조를 구축해 사후 대응보다 사전 예방에 무게를 둔 체계로 전환하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조치가 지배구조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변화라는 평가가 나온다. 은행권 관계자는 "이번 조치는 소비자보호를 단순한 내부통제나 사후 대응 차원이 아니라 경영의 핵심 가치로 정착시키기 위한 것"이라며 "상품 기획부터 판매, 사후관리까지 전 과정에서 소비자 중심 원칙이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금융 문화를 만들어가겠다는 취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