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30년 넘게 유지돼 온 개인신용정보 동의제도 개편에 착수한다. 인공지능(AI)과 데이터 활용이 금융권 경쟁력으로 떠오른 가운데 사전 동의 중심의 경직된 규제가 금융소비자 편익과 금융권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금융위원회는 16일 권대영 부위원장 주재로 '개인신용정보 동의제도 개편 법률자문단' 킥오프 회의를 열고 현행 신용정보법상 개인신용정보 활용 동의제도의 문제점과 개편 방향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자문단은 국내외 데이터 법제에 전문성을 갖춘 학계·법조계 전문가로 구성됐다. 이성엽 고려대 교수, 최난설헌 연세대 교수, 최경진 가천대 교수, 이동진 서울대 교수, 조수영 숙명여대 교수, 최장혁 전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부위원장, 이한진 변호사 등이 참여했다.
현행 개인신용정보 동의제도는 1995년 신용정보법 제정 당시 도입됐다. 이후 규제가 강화되면서 개인신용정보의 수집·이용·제공·조회 등 모든 처리 단계에서 원칙적으로 개별적·사전적 동의를 요구하는 구조가 됐다.
권 부위원장은 회의에서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위해 도입된 동의제도가 지나치게 엄격하고 경직적으로 운영되면서 오히려 금융소비자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호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30년 넘게 유지돼 온 낡은 규제의 틀을 근본적으로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현행 제도가 금융소비자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호하기보다 '동의 피로'를 키우고 있다고 보고 있다. 금융회사는 면책을 위해 과도한 동의서를 받게 되고 소비자는 많은 양의 동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같은 이용 목적이라도 정보 제공기관이나 항목이 바뀌면 다시 동의를 받아야 하는 사례가 많다. 신용정보회사가 금융이력이 부족한 씬파일러의 신용평가를 위해 통신·플랫폼 정보를 활용하려 해도 제공기관이나 정보항목이 추가될 때마다 재동의가 필요하다.
금융소비자에게 유리한 서비스도 지연될 수 있다. 취약계층을 위한 생계비계좌 상품을 출시할 때 중복 가입 방지를 위해 신용정보원 조회가 필요하지만 관련 동의 항목을 추가한 별도 동의서 제작 절차 등으로 출시가 늦어지는 식이다.
대환대출 중개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핀테크사가 기존 제휴 금융회사 외에 새로운 은행을 추가하면 이용 목적은 대출 조회로 같더라도 정보 제공기관이 추가됐다는 이유로 기존 고객에게 다시 동의를 받아야 한다.
AI 활용 서비스에도 제약이 크다는 지적이 나왔다. 은행이 AI 챗봇을 활용해 계열 증권·보험사의 금융자산까지 통합 분석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각 계열사 간 정보 제공 동의를 새로 받아야 한다. AI 에이전트가 금리인하요구권이나 저금리 대환대출을 대신 실행하는 서비스도 신용도나 금리 변화를 조회할 때마다 반복 동의가 필요해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
금융당국은 해외 주요국의 제도 변화도 참고하기로 했다. 유럽연합(EU)은 AI 개발에 개인정보를 활용하는 것을 정보처리자의 정당한 이익으로 인정하는 방향의 디지털 옴니버스 패키지를 발표했다. 일본도 AI 개발에 개인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특례를 담은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을 추진 중이다.
회의 참석자들은 현행 신용정보법상 동의 규제를 보다 유연하게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했다. 정보주체의 동의 외에 적법한 정보처리 근거를 활용하는 방안, 정보주체 권리보장 수단을 다양화하는 방안, 데이터 활용을 통해 포용금융과 생산적 금융을 강화하는 방안 등이 논의됐다.
금융위 관계자는 "법률자문단 논의를 바탕으로 신용정보법 동의제도 개편 방안을 구체화하고 금융소비자와 금융권, 관련 기관, 전문가 의견을 폭넓게 수렴할 것"이라며 "개인신용정보 보호와 활용 사이의 균형점을 담은 신용정보법 개정안 입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