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우유 가격이 세계 3위 수준으로 치솟았지만 생산 현장의 낙농가는 폐업과 부채 증가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낙농업계는 높은 소비자가격에도 경영난이 이어지는 배경으로 제조·유통 단계의 높은 마진 구조를 지목하며 정부를 향해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18일 글로벌 프로덕트 프라이스닷컴에 따르면 올 1월 기준 한국의 우유 1ℓ당 가격은 3.42달러로 조사 대상 78개국 중 3위를 기록했다. 미국(3.04달러)보다 비싸고 일본(1.82달러)의 두 배에 가깝다.
반면 생산 현장의 경영 여건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최근 5년간 전체 낙농가의 13.7%에 해당하는 834호가 폐업한 것으로 집계됐다. 낙농가 호당 평균 부채는 5억원을 넘어섰고 젖소 두당 차입자본액은 45.6%, 차입금 이자는 68.6% 증가했다.
낙농업계는 소비자가격 상승의 상당 부분이 제조·유통 단계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낙농육우협회가 지난 20년간(2004~2024년) 우유 가격 추이와 상장 유업체 공시자료 등을 분석한 결과 우유 소비자가격은 리터당 1706원 상승하는 동안 원유 가격은 567원 올랐다. 소비자가격 상승분의 약 70%가 제조·유통 단계에서 발생했다는 분석이다.
국내 우유 유통 마진율은 35.1%로 일본(16.8%)의 두 배, 미국(8.8%)의 약 4배 수준으로 조사됐다. 일본보다 음용유용 원유가격은 낮지만, 최종 소비자가격은 더 높게 형성되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협회 관계자는 "소비자가 마시는 우유 가격이 높은 이유는 낙농가가 받는 원유가격 때문이 아니라 유통과정에 과도한 거품이 끼어있기 때문"이라며 "기형적인 유통 마진 구조를 혁신하지 않고서는 소비자 부담 완화도, 도산 위기에 처한 낙농가 구제도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생산비가 원유 가격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이 경영 부담을 키우는 원인으로 꼽힌다. 2021년부터 2025년까지 농가 평균 생산비는 리터당 171원 상승했지만 원유가격 반영분은 88원에 그쳤다. 전체 농가의 41%를 차지하는 50두 미만 소규모 농가의 경우 생산비가 같은 기간 리터당 280원 급등했다. 올해 평균 생산비는 리터당 1252원으로 음용유용 원유가격(1249원)을 넘어섰다. 사실상 역마진 구조에 진입한 셈이다.
낙농업계는 용도별 차등가격제 시행 이후 유업체의 물량 감축까지 이어지면서 농가 부담은 더욱 커졌다고 보고 있다. 차등가격제 참여 유업체 소속 농가들의 지난해 음용유용 구간 생산량은 보유 쿼터 대비 81.2% 수준에 머물렀다. 정부가 제도 도입 당시 제시한 음용유 구간 비율(88.5%)보다 7.3%포인트 낮은 수치다.
이른바 '남는 원유' 논란 역시 낙농업계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이다. 소비 감소보다 수입량 확대와 유업체의 물량 감축이 국산 원유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는 것이다. 2010년 대비 지난해 국내 원유 생산량은 5.9% 감소한 반면 유제품 수입량은 114% 증가했다. 같은 기간 혼합분유 등을 포함한 분유 수입량은 원유 환산 기준 68만3000톤으로 국산 가공용 원유 사용량(34만3000톤)의 두 배에 달했다.
최근 제기되는 이른바 '밀크플레이션' 주장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가공식품에서 우유·유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1~7% 수준에 불과한 데다 상당수가 수입산 원료를 사용하고 있어 국내 원유가격 인상이 가공식품 물가 상승을 주도한다는 해석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협회는 정부에 ▲가공용 원유 20만톤 물량을 실질적으로 담보할 예산과 대책 마련 ▲경영 위기 낙농가를 위해 정책자금 및 상호금융자금 상환 기한을 3년 이상 일괄 연장(이자 감면)하고 고령·소규모 농가 대상 현실적인 폐업 보상 대책 마련 ▲비정상적인 유통 마진 실태 조사 및 유업체의 임의적인 물량 감축 행위(갑질)에 대한 엄정 대응 등을 요구했다.
이승호 한국낙농육우협회 회장은 "2022년 기준 유업체들이 직접 사용한 수입 유제품은 원유 환산 기준 50만5000톤으로 당시 국산 가공용 원유 사용량의 두 배를 넘었다"며 "국산 원유 자급률이 45.8%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농가에만 생산 감축을 요구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유 수급 문제를 소비 감소나 농가 생산량 탓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수입산 의존 확대와 비정상적인 유통 구조부터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