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존자 A씨, "샤워를 하다 성에 낀 창문을 쳐다보는 게 무서워요. 가라앉는 세월호 안에서 물이 차오르는 걸 객실 창문으로 봤던 장면이 겹쳐 보여요."
#2. 유가족 B씨, "긴 터널 끝에 출구가 안 보이면 바닷속에 잠긴 것처럼 가슴이 짓눌려요. '우리 아이가 이렇게 힘들었겠구나. 숨도 못 쉴 정도로 아팠겠구나' 하는 생각에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아요."
# 유가족 C씨, "남편은 샤워기를 틀고 물을 맞으면 숨이 막히고 어지럽다고 해요. 나는 눈을 감고 세수하는 것도 겁나서 클렌징 티슈로만 화장을 지워요. 나중에야 알았어요. 이게 트라우마라는 것을…."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2년이 흘렀다. 하지만 생존자와 유가족의 고통은 현재 진행형이다. 더욱이 그들은 지난달 어느 때보다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한 달 사이 장례식만 세 번 치렀다. 희생자의 어머니와 또 다른 희생자의 아버지가 각각 암으로 돌아가셨다. 생존자 한 명도 삶의 끈을 놓았다. 세월호 참사의 생존 학생이 사망한 건 처음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 소식에 지난달 24일 "정부 영역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강구하겠다"며 "참사 생존자와 유가족의 목소리를 더욱 세심히 듣고, 충분하지 못했던 국가의 책임을 반드시 다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에만 세 명을 떠나보낸 세월호 참사 생존자와 유가족들은 무엇을 간절히 원할까. '동행미디어 시대'가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시혜 베풀듯 찔끔찔끔 연장되는 피해자 의료지원
세월호 참사 이후 지난 12년간 세월호 유가족 중 20여 명이 각종 암과 당뇨 합병증 등으로 세상을 떠났다. 정신적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세상을 등진 이들도 5명에 이른다. 현재 경기 안산마음건강센터와 연계해 심리 치료를 받는 생존자와 유가족은 모두 1023명에 달한다.이들은 주변 유가족이 세상을 떠날 때마다 극심한 심리적 고통을 호소한다. 생존자들은 취업이나 결혼, 육아 등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할 때마다 다시 트라우마가 증폭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때문에 참사 생존자와 유가족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 전(全) 생애에 걸친 의료지원'이다.
지금까지 의료지원은 시한이 정해져 있었다. 세월호 참사 이듬해 처음 시작된 의료지원은 그 기한이 고작 1년에 그쳤다. 그러다가 2017년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요청으로 7년으로 늘어났다. 2024년 의료지원이 중단되자 국회는 5년 더 의료지원을 연장했다. 마치 시혜를 베풀듯 반복되는 기한 도래와 연장 속에서 세월호 생존자와 유가족들은 정부를 설득하고, 국회의 찬반 논의를 지켜보면서 또 한 번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겪어야 했다.
현행법상 이들에 대한 의료지원의 최종 종료 시점은 2029년 4월 15일이다. 이에 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안산을)은 올해 4월 의료지원의 기한을 없애는 내용의 세월호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사실상 영구적 의료지원은 선진국에선 상식으로 통한다. 미국은 9·11 테러 참사 생존자와 유가족들을 대상으로 2090년까지 전 생애에 걸쳐 의료지원을 제공한다.
장기 조사 통해 참사가 신체 질환 높인다는 점 입증
'동행미디어 시대'가 단독 입수한 국립중앙의료원의 '세월호 관련 정신건강 장기 추적 조사 및 정책 활용 전략 개발 최종결과 보고서'를 보면, 전 생애에 걸친 의료지원이 왜 필요한지 그 이유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이 보고서는 사회적 참사 피해자 집단을 대상으로 9년간 건강 상태를 추적한 국내 최초의 보고서다. 보고서에선 참사로 인한 정신건강 악화가 신체 질환 위험을 높인다는 점을 수치로 입증했다. 이 조사에는 세월호 참사 생존자와 유가족 249명이 참여했다.보고서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 유가족의 건강 상태를 일반 국민과 비교 분석한 결과 말초혈관 질환은 3배, 소화성 궤양은 1.4배 높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같은 정신적 고통뿐 아니라 신체 질환에 걸릴 위험도 통계적으로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들이 정신 질환을 앓을 위험은 유가족의 경우 일반 국민의 2배, 생존자의 경우 3.8배 높았다.
당시 청소년이던 생존 학생들은 대조군과 비교해 소화성 궤양 1.8배, 당뇨병 3.6배 등 취약한 건강 상태를 보였다. PTSD 발생 빈도도 일반인보다 높아 지속적인 의료 지원이 시급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생존자와 유가족들은 세월호 참사로 인한 신체 질환이라는 사실을 인정받는 것부터 어려움으로 겪는다. 고 곽수인 학생의 어머니인 김명임 씨는 '동행미디어 시대'에 "세월호 참사 발생한 날부터 화장실을 제때 가지 못해 방광염에 걸렸고, 무릎 관절이 모두 상했다"며 "2015년부터 다리와 척추 진료를 지원받았는데, 지난해 하반기부터 갑자기 척추 진료는 지원할 수 없다고 해 진료비를 개인적으로 감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월호 생존자와 유가족들이 이사를 하게 돼 다른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경우 의료지원이 연계되지 않는 점도 문제로 꼽는다. 고 지상준 학생의 어머니인 강지은씨는 "본인이 원할 경우 병원 의료 시스템상에 세월호 유가족으로 등록한 뒤 치료나 지원을 연계해 달라고 수년간 보건복지부에 요청하고 있지만, '안 된다'는 답변뿐"이라고 말했다.
신체 질환 지원으로 피해자 의료지원 확대 절실
이처럼 세월호 생존자와 유가족들은 ▲전 생애에 걸친 의료지원 ▲정신건강뿐 아니라 신체 질환으로의 지원 확대 ▲병원 간 치료 및 지원 연계 ▲희생자 형제·자매를 포함한 장기 추적 연구 등을 요청하고 있지만, 국회 논의는 세월호특별법 개정안 발의 이후 석 달간 겉돌고 있다.'세월호 관련 장기 추적 조사 보고서의 책임연구원인 이소희 국립중앙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관련 연구는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의 기여로 정신 건강은 물론이고 신체 건강까지 재난 참사가 영향 줄 수 있다는 것을 건강보험공단 데이터 분석을 통해 밝혀낸 것"이라며 "(이 연구를 바탕으로) 의료지원 범위를 일부 신체 질환으로 확대하고, 생존자 학생을 대상으로 한 장기 모니터링 체계를 갖춰 구체적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월호 참사는 '피해자의 권리'라는 새로운 관점을 만들어냈다. 이전 참사에선 피해자에 대한 일회성 보상이 전부였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참사 피해자에 대한 정부 책임이 강화됐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에 대한 지원은 향후 사회적 참사에 대한 정부의 책임 범위를 규정하는 하나의 기준으로 자리잡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