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오른쪽)와 정점식 국민의힘 원내대표(왼쪽)가 지난 6월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국민의힘에서 벌어진 멱살잡이는 표면적으로 해프닝에 불과하지만 그 이면엔 의원들을 하나로 묶을 구심점과 공동의 비전, 통합·결속 능력의 부재가 자리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러다 보니 집값 상승과 개별주식 레버리지 ETF 도입에 따른 롤러코스피(주가 급등락) 등 정부의 실책에도 불구하고 당이 결속하지 못하고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인다는 지적이다.

정희용 국민의힘 사무총장은 24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멱살잡이 사태를 공개 거론하며 "이런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당의 명예와 품위를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하고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권영진 의원은 전날 정점식 원내대표에게 행정안전위원회 간사 배정을 항의하며 "정점식 이리 와" 등 큰소리를 질렀다. 권 의원은 이 과정에서 충돌을 말리던 송언석 전 원내대표의 멱살을 잡았다. 잡음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재정경제기획위원회에 배치된 강민국 의원도 의원총회에서 김승수 원내운영수석부대표에게 항의했다.

멱살잡이는 당의 구심점 부재가 응축된 장면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재명 정부의 각종 악재에도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반등하지 못하는 배경으로 ▲이기는 능력 ▲국정 운영 능력 ▲공적 의식 ▲통합·결속 능력의 4가지 부재를 꼽는다. 선거에서 승리해 국정을 운영할 공동의 비전이 없다 보니 내부 갈등이 불거지고 국회의원들 사이에도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이기주의까지 번진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정당 지지율 흐름. / 그래픽=신재민 편집위원

국민의힘이 내부 다툼에 발이 묶인 사이 여권엔 악재가 쌓였다. 이재명 정부는 증시가 급등락을 반복하는 '롤러코스피'와 집값 상승 등 부동산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에선 다음달 17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권 경쟁이 과열되는 양상이다. 제1야당이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국면인 셈이다.


여권의 위기는 지표로도 확인된다. 이날 발표된 한국갤럽 조사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직무수행 긍정평가는 취임 후 가장 낮은 51%로 직전 조사보다 6%포인트(P) 내렸다. 부정평가는 6%P 오른 41%로 첫 40%대다. 부정평가 이유로는 '경제·민생·고환율'이 15%로 가장 높았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반사이익을 얻지 못하고 있다. 한국갤럽 정당 지지도 조사를 보면 6·3 지방선거 약 1주일 뒤인 지난달 9~11일 조사에서 민주당 41%, 국민의힘 29%로 격차를 12%P로 좁혔다. 직전 조사에서 양당 격차는 23%P였다. 그러나 국민의힘 지지도는 내림세를 거듭해 이날 기준 23%로 지방선거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같은 조사에서 민주당은 44%를 기록해 양당 격차는 21%P로 다시 벌어졌다.

권영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7월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당내 의원모임 '대안과미래' 조찬모임에 참석하고 있다. / 사진=뉴스1

당내에선 이번 멱살잡이가 지도부의 권위 하락과 무관치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 원내대표는 원내 사령탑을 맡은 뒤 갈라진 당을 추스르려 노력했지만 당대표 리더십을 둘러싼 갈등이 이어지며 원내대표의 권위도 함께 흔들렸다. 국민의힘의 한 재선 의원은 '동행미디어 시대'(이하 시대)와의 통화에서 "멱살잡이 해프닝은 원내대표와 당대표 등 국민의힘 지도부의 권위 하락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이기는 능력과 국정 운영 능력을 함께 잃었다는 진단도 나온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이날 시대와의 통화에서 과거엔 보수가 국방·외교·경제는 잘한다는 인식으로 이기는 능력을 보여줬지만 국가 운영의 비전을 잃으면서 두 능력을 모두 놓쳤다고 짚었다.

박 대표는 "국민의힘은 보수를 통합해 이기는 능력, 국가 전략 비전 제시를 통한 국정 운영 능력을 보여줘야 하는데, 현재 그럴 의지도 역량도 없다"며 "이걸 만들어낼 강력한 리더십이나 시스템도 완전히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권력의 공백 상태가 생기고 내부 싸움과 서로 뜯어먹는 구조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비전과 구심점의 부재는 공적 의식의 실종으로 이어진다는 분석도 있다. 당의 승리라는 공동 목표가 흐려지자 개별 의원의 이해가 앞서면서 상임위 자리를 둘러싼 충돌이 잇따른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선 변화를 최소화하며 정점식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결집하거나 아예 새로운 리더십을 세우는 형태의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010년 이후 전국단위 지방선거·총선·대선 결과. 재보궐선거 등은 제외. / 그래픽=신재민 편집위원


전문가들은 국민의힘이 나아갈 방향으로 과거의 중도 확장 전략을 꼽는다. 보수 진영은 2014년 6월 지방선거를 포함해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까지 전국단위 선거에서 5연패를 당했다. 위기에 몰린 국민의힘은 2020년 5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체제를 출범시키며 중도 확장에 나섰고 2021년 4·7 재보궐선거에서 서울·부산시장을 되찾으며 반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같은해 6월엔 이준석 대표를 앞세워 외연을 넓혔고 2022년 3월 대선과 6월 지방선거를 잇따라 승리했다. 전광훈 목사와 강성 유튜버 등 강경 지지층과 거리를 두고 중도 보수로 당을 재건한 전략이 주효했다는 것이다. 2004년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으로 폐당 위기에 직면했던 한나라당은 박근혜 당시 대표가 여의도 당사를 버리고 천막당사에서 대국민 반성과 쇄신을 호소하며 그해 총선에서 반전을 꾀했다.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국민의힘은 다음 총선을 제대로 치르지 못할 것 같으면 정당으로서 존재하기 굉장히 어려울 것"이라며 "리더라면 정당의 미래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전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은 2027년 프랑스 대선을 앞두고 30세인 조르당 바르델라 국민연합(RN) 대표가 확고한 비전을 제시하며 차기 대권 주자로 떠오른 점을 들어 보수층 내 젊은 세대의 분발을 주문했다.

한편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는 한국갤럽이 지난 21~23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결과다. 조사는 무작위 추출된 무선전화 가상번호에 전화 조사원 인터뷰 방식으로 진행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응답률은 10.7%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