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첫 9000선을 뚫어내며 기대를 모았던 국내 증시가 극심한 변동성 장세 속에 숨을 헐떡이고 있다. 짧은 기간 지수가 가파르게 치솟은 뒤 급속도로 무너져 내리면서다.
급등락을 반복하는 변동성 장세는 코스피·코스닥에서 모두 나타난다. 코스피 대장주인 삼성전자·SK하이닉스도 요동치고 코스닥 동전주는 부실기업 낙인에 퇴출을 걱정하는 처지다.
국제 정세는 불안하고 모두가 치켜세우던 AI(인공지능) 관련주는 끊임없이 거품론에 시달린다. 불확실성이 겹친 코스피·코스닥을 바라보는 전망도 엇갈린다.
'1만피' 노리던 코스피, '천스닥' 이상 넘보던 코스닥
"이재명 대통령 임기 끝날 때는 결과적으로 코스피 5000 달성 공약 지켜지겠네요."최근 만난 증권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급등락을 반복하는 증시 변동성에 대해 더 이상 오르기 힘들 수도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로 해석된다.
이 관계자의 얘기처럼 최근 국내 증시 변동성은 극심하다. 1년 전인 7월31일 코스피 지수 종가는 3245.44, 코스닥은 805.24였다. 이후 코스피 지수는 올 들어 가파르게 치솟아 6월18일 사상 첫 종가 9000포인트(9063.84)를 찍은 뒤 같은 달 22일 9114.55로 마쳤다. 이날까지 코스피 지수는 6월22일 달성한 9114.55가 정점이었다.
이후 코스피지수는 등락을 거듭하다 급격하게 내리막을 걷더니 지난 28일에는 장중 한때 6000(5992.91)을 내줬고 29일에는 장중 최저 5262.77까지 밀려 5000선마저 위협받았다.
코스피 지수는 가파르게 올랐다 떨어졌어도 수치상으론 아직 1년 전보다 1.8배가량 뛰었지만, 코스닥지수는 더 떨어졌다. 4월27일 종가 기준 1226.18을 찍어 '천스닥' 그 이상을 바라봤는데 이후 급격하게 밀리더니 700선 밑으로 떨어져 오히려 1년 전 수치보다 후퇴했다. 지난 30일 종가는 644.78이었다.
정부가 단행한 세 차례 상법 개정과 각 기업의 주주가치 제고 전략,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슈퍼사이클(초호황)까지 삼박자가 맞물리며 올 들어 코스피·코스닥에 모두 훈풍으로 작용했지만 결과적으로 양대 시장이 반년 동안 겪은 건 급등락을 반복한 '롤러코스터'였다.
코스피·코스닥지수의 급격한 변동성은 한국거래소의 시장 대응에서도 확인된다. 한국거래소는 코스피·코스닥지수가 일정 수치 이상 급격하게 오르거나 내리면 5분 동안 매수·매도를 막는 '사이드카'(프로그램 호가 일시효력정지), 20분 동안 매매를 멈추는 '서킷 브레이커'를 상황에 따라 발동시킨다.
'사이드카'와 '서킷 브레이커'는 코스피·코스닥지수의 급격한 변동성에서 기인하는 만큼 발동되지 않아야 시장의 안정적인 흐름을 가늠할 수 있지만 올해는 달랐다.
올해 코스피 시장에는 이날까지 총 43번의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매도 사이드카는 23회, 매수 사이드카 20회다. 1996년 11월25일 코스피 시장에 사이드카 제도가 도입된 이후 역대 발동된 103번 가운데 올해 비율만 41.8%다. 증시 변동성이 심했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의 26회를 이미 훌쩍 넘어섰다.
코스닥시장의 상황도 비슷하다. 코스닥시장엔 2001년 3월5일 사이드카가 도입됐고 역대 111번 발동됐는데 올 들어서만 24.3%인 27번(매도 13회, 매수 14회)이 걸려 2008년(19회) 기록을 역시 앞질렀다.
사이드카 다음 단계인 '서킷 브레이커' 발동도 올해 두드러졌다. 코스피 시장에 2000년 4월17일 첫 발동 이후 역대 15번 걸린 '서킷 브레이커'는 올해만 9번, 2006년 1월23일 처음 발동된 코스닥 '서킷 브레이커'는 역대 14번 가운데 올해만 4번째다. 코스닥시장에 한 해 '서킷 브레이커'가 4번 걸린 건 올해가 처음이다.
외신도 극찬한 한국증시…들쑥날쑥 변동성, 언제까지 지속될까
정부는 코스피·코스닥의 반등을 위해 해외 주식에 투자한 이른바 '서학개미'의 국내 증시 복귀도 유도했다. 서학개미가 해외 주식을 팔아 국내 주식에 장기 투자하면 한시적으로 양도소득세를 감면해 주는 내용을 담은 세제 패키지를 마련해 2025년 12월24일 발표했다. 국내로 돌아오는 투자자들에게 세제지원 혜택을 주기 위한 '국내시장 복귀계좌'(RIA)도 도입했다.정부의 이 같은 '절세 혜택' 시그널은 이재명 대통령의 "국장 복귀는 지능 순" 발언과 함께 투자자의 코스피·코스닥 유입을 자극했지만 역대급 변동성 앞에 흔들렸다.
코스피 대장주인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치열한 시가총액 선두 경쟁이 뉴욕증시 등락에도 영향을 끼칠 만큼 영향력이 커졌다는 일부 외신의 보도는 불과 한 달여 전 얘기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벌어진 뒤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글로벌 증시가 요동친 상황에서도 코스피·코스닥지수는 소폭 조정기를 겪으며 우상향을 그렸다. 하지만 지난 5월 출시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상장지수펀드)가 증시 자금을 급속도로 빨아들여 지수 변동성을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부랴부랴 보완책을 마련하고 추가 대책을 수시로 논의 중이지만 국내 증시는 이미 큰 타격을 입었다.
'1만피'를 바라보고 '천스닥' 이상을 노리던 국내 증시가 극심한 변동성 틀에 갇힌 상황이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대체로 '조정 국면 탈출'을 내다본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코스피가 6월22일 고점(종가 9114.55) 이후 지수가 3000포인트가량 급락했고 이 중 지수 상승을 이끈 반도체 업종 하락 비율이 전체 낙폭의 80%를 차지한다"며 "다만 이 같은 구조가 저변동성 팩터로의 본격적인 자금 이동으로 단정하기는 이르기 때문에 로테이션인지, 반도체 효과인지, 저변동성 업종의 상대성과가 유지되는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신중한 입장을 나타냈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과거 사례를 볼 때 최근의 증시 하락 폭은 과도하다고 판단한다. 박 연구원은 "과거 조정 국면에서는 수출 증가율이 큰 폭으로 감소했지만 최근의 경우는 조정에도 반도체 수출 등 수출 경기의 둔화 시그널이 없다는 점에서 현 하락 폭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짚었다.
이어 "하이퍼스케일러의 잉여현금흐름(FCF)은 자본지출 확대로 고갈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영업활동현금흐름(OCF)은 확대되고 있어 신용위험을 크게 우려할 단계는 아니다"라며 "펀더멘털보다 수급과 각종 불확실성 리스크로 주가 조정폭이 크다는 점에서 추가 조정 폭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낙관론을 내놨다.
김석환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현재 국내 증시는 하락세 이후를 준비해야 할 시간이라고 주장했다. 김 연구원은 "최근이 증시 급락은 새로운 경기침체 신호라기보다 반도체에 집중됐던 포지션과 레버리지 자금이 빠르게 축소되는 과정에 가깝다"고 진단했다.
이어 "현재는 급락에 대응해 방향을 단정하기보단 반등 이후의 수급을 확인할 구간"이라며 "레버리지는 축소하고 현금은 서두르지 않으며, 이익 전망이 유지되는 자산을 중심으로 단계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양일우 삼성증권 글로벌투자전략팀 팀장은 현재 조정 국면에 대해 반도체 업종으로의 이익 및 시가총액 쏠림을 해소하는 과정이라고 분석했다. 양 팀장은 "시간이 걸릴 수는 있겠지만 결국 국내 증시는 반등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이익 규모나 밸류에이션에 둔감하기는 해도 이익 규모가 주가에 반영되지 않기에는 지나치게 덩치가 크다"고 판단했다.
이어 "반도체 기업의 장기 계약 비중 증가를 시장에서 하이퍼스케일러(데이터센터·클라우드 인프라 직접 운영하는 빅테크기업)의 현금흐름 가시성 확대 의미로 해석한다면 글로벌 증시의 상승세도 재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