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생성한 그래픽. /사진=챗gpt


# 한 중견 상장사 이사회 사무국은 내년 정기 주주총회 준비에 벌써부터 골머리를 앓고 있다. 임기가 끝나는 사외이사의 후임을 찾고 있지만 재무·회계 전문성과 독립성, 참석 가능성 등을 따졌을 때 마땅한 후보가 없다. 법무팀의 고민도 깊다. 오는 9월10일 전 임시주총을 열어 감사위원 구성을 미리 정리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새 제도를 피하려는 움직임으로 비칠 수 있다는 부담에 결국 접었다.

이사회를 둘러싼 규칙은 두 차례에 걸쳐 바뀐다. 지난 7월23일부터 상장회사의 사외이사 명칭이 '독립이사'로 변경됐고 이사 총수의 3분의 1 이상을 독립이사로 선임하도록 의무화됐다. 오는 9월10일부터는 2차 개정 상법이 시행된다.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회사는 집중투표제를 의무적으로 도입해야 하며 감사위원 분리선출 대상도 기존 1명에서 2명 이상으로 확대된다.



주주총회 관련 조항은 시행 이후 처음 열리는 주총부터 적용된다. 대부분 기업의 첫 시험대는 내년 정기주총이다. 지금부터 남은 기간 새 제도에 맞춰 이사회 구성과 주총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집중투표제는 여러 명의 이사를 선임할 때 주주가 선임할 이사 수만큼의 의결권을 받아 이를 특정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는 제도다. 1998년 도입됐지만 정관으로 배제할 수 있어 대다수 기업이 채택하지 않았다. 이번 상법 개정은 대규모 상장회사의 집중투표제 배제를 금지했다. 이에 일정 지분을 확보한 소액주주도 지지하는 후보를 이사회에 진입시킬 가능성이 커졌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는 '3%룰'과 맞물린다. 분리 선출되는 감사위원을 뽑을 때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은 합산 3%로 제한된다. 이번 개정으로 분리선출 대상이 2명 이상으로 확대되면서 대주주의 의사와 무관하게 선임될 수 있는 이사회 구성원이 늘어나게 됐다. 감사위원회가 이사회 내 독립 기구로 자리 잡는 실질적인 계기가 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그래픽=신재민 위원


기업들은 지난 3월부터 새 제도에 대비해 움직이고 있다. 리더스인덱스가 50대 그룹 상장사 중 269곳을 분석한 결과 올해 정기주총 이후 전체 이사 수는 1733명으로 전년(1780명)보다 47명(2.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내이사는 843명에서 807명으로 4.3% 줄었고 독립이사는 937명에서 926명으로 1.2% 감소했다.



카카오페이는 이사 수 상한을 7명으로 제한하는 정관 변경안을 통과시켰고 롯데케미칼은 이사 정원 상한을 11명에서 9명으로 줄였다. 효성중공업도 이사 정원 상한을 16명에서 9명으로 축소하는 정관 변경안을 상정했지만 국민연금의 반대로 최종 부결됐다. 선임할 이사 수가 줄어들면 집중투표제의 표 몰아주기 효과도 약해질 수 있어 이 같은 정원 조정이 2차 개정 상법 시행을 염두에 둔 행보라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지금부터라도 내년 정기주총을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독립이사 후보군을 확보하고 자격과 이해관계를 검증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데다 임기 만료가 특정 시기에 몰리지 않도록 이사 임기를 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분리선출 감사위원 구성안 설계부터 주주 추천 후보의 이사회 진입에 대비한 운영 방식, 이사회 지원 조직 정비까지 사전에 챙겨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재계의 우려도 만만치 않다. 요건을 갖춘 독립이사 적임자가 수요만큼 늘지 않아 인재 확보 경쟁이 심화하고 이사회 운영 부담과 비용도 커질 수 있다. 소수주주가 추천한 이사의 이사회 진입이 늘면서 내부 갈등이 커지고 경영권 방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동한 가천대 교수(법무법인 지평 고문)는 "이사회를 경영진이 설계하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이 시장의 평가"라며 "기업의 경쟁력은 준비된 독립이사를 얼마나 확보하느냐에서 갈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독립이사 후보 검증은 채용이 아니라 지배구조 설계의 문제"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