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숙 국무총리(왼쪽)와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국무총리공관에서 고위당정협의회에 참석하고 있다. 이날 김 대표는 정부를 상대로 1주택 비거주자의 부동산 과세 강화 방안을 담은 세제개편안에 대해 전면 재검토를 요구했다. /사진=뉴시스


# 올해 주재원으로 출국한 A씨는 경기 성남시 분당에 보유한 아파트를 월세 임대하면서 주택담보대출 이자를 상환하고 있다. 초등학생인 두 자녀는 5년 후 귀국하면 수험생이 된다. 아파트를 팔 경우 다시 주거지 마련이 어려울 수 있고 현재는 양도소득세도 부담더 커 매각 계획은 없다. A씨 아파트는 최근 실거래가가 21억원, 올해 공시가격은 12억원대다. 만약 올해 정부가 발표한 세제개편안대로 법이 시행되면 A씨가 내야 하는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는 기존 250만원대에서 앞으로 1000만원대로 늘어난다.

정부가 지난 3일 발표한 2026년 세제개편안에서 보유 주택에 거주하지 않는 1주택자를 대상으로 보유세와 양도세를 강화하는 방안이 거센 조세 저항에 부딪치자 여당이 정책 철회를 요구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국정 지지율 40%가 붕괴될 상황에 직면한 정부도 여론을 의식한듯 국민 의견을 경청하겠다는 태도로 한 발 물러섰다.



법제처 국민참여입법센터에는 지난 3일부터 20일까지 세제개편안 입법예고 기간 동안 총 1만3000여건의 국민 의견이 접수됐다. 이 중 종부세 의견은 약 7300여건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이번 입법 시도에 대해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거주·이주 기본권을 정면으로 침해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해외 선진국도 1주택자에 대한 징벌 과세는 없는 점이 강조됐다. 직장 이동과 지방·해외 발령, 자녀 진학, 질병 치료 등 여러 사정에 의해 집을 비워야 하는 사례들을 무시하고 조세 폭탄을 안기는 문제를 '주택 공급과 주거 안정' 명분으로 포장한 것은 지나친 탁상행정이라는 지적이다.

주거 사다리 복원과 조세 신뢰 회복 요구

정부 세제개편안은 1주택 거주자의 종부세 기본공제를 기존 12억원에서 14억원으로 상향조정하고, 반대로 비거주자는 9억원으로 낮춰 세금을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양도세 장기보유특별공제(보유 40% 거주 40%)는 보유기간을 제외한 거주기간 중심의 장기거주소득공제(거주 80%)로 전환해 비거주자의 세부담을 가중하도록 했다.

정재훈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는 "해외 선진국의 경우 실수요 보호 목적에서 1주택자에 대해 거주 여부와 무관하게 세제 혜택을 유지하는 것이 관례"라며 "비거주자 페널티가 갭투자(전세 세입자가 거주하는 주택을 매수)를 줄이는 효과는 있을 수 있지만 정부가 의도한 집값 안정을 확신할 수 없고 조세 정의의 실현보다 월세 상승이라는 세입자 불안을 야기하는 중차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서울의 1주택을 보유하면서 경기·인천이나 비수도권에 사는 이들이 보유 주택에 거주를 결정할 경우 이는 연쇄 이동과 임대차 불안으로 나타난다. 이미 현실이 된 상황"이라며 "집값 안정은 세금 정책보다 매매 호가 사이클과 대출 규제의 영향을 더 받고 있다"고 진단했다.

비판 여론이 고조됨에 따라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1주택자의 거주·비거주 구분 없는 기본공제 14억원을 정부에 요구했다. 세부담 상한 200% 인상안도 원점에서 재검토를 요구했다. 비거주 사유를 예외로 인정하는 대안에서 더 나아가 거주·비거주자의 동일한 보유세와 양도세를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 민주당의 기조다.

청와대도 여론의 엄중함을 인식하고 국민의 삶에 과도한 부담을 주는 정책은 보완이 마땅하다며 한 발 물러선 상태다. 김민석 민주당 대표의 취임 후 처음으로 개최된 지난 23일 고위당정협의회에서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은 "합리적인 의견을 정책에 반영하는 데 주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빠르면 이번 주 내로 수정된 세법개정안의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오는 9월3일 세법개정안의 국회 제출을 앞두고 정책 일관성을 잃었다는 시장의 불신을 해소하는 것은 정부의 무거운 과제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