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 전경. / 사진=SK그룹


SK그룹의 리밸런싱이 축소 단계를 넘어 미래 성장에 필요한 사업 재편으로 나아가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부진한 배터리 소재 자회사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를 흡수하기로 한 데 이어 SK가스도 수년째 적자인 SK어드밴스드를 흡수합병하기로 했다. 2023년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서든데스' 경고 이후 통폐합과 자산 매각으로 몸집을 줄여온 SK가 사업별 경쟁력을 따져 통합·매각·유지를 선별하는 작업에 돌입했다는 분석이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5일 이사회를 열고 분리막 사업 자회사 SKIET의 흡수합병 안건을 의결했다. 2019년 분리막 사업을 물적분할해 SKIET를 설립한 지 7년 만이다. SK이노베이션이 존속하고 SKIET는 소멸하는 방식으로 내년 1월 1일 합병을 마무리한다.



SKIET는 전기차 캐즘 장기화와 중국 업체와의 경쟁 심화로 실적 부진을 겪어왔다. 2023년 501억원이던 영업이익은 이듬해 2900억원 손실로 돌아섰고 지난해 2460억원, 올해 상반기 1360억원 적자를 냈다. 2분기에는 중국 법인 매각 손실과 폴란드 공장 손상차손을 한꺼번에 반영해 1조3278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고부가 배터리 사업의 성장성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관측이다. 이번 합병은 SK이노베이션이 직접 분리막 사업을 챙겨 자금조달력과 시너지를 확보하려는 선택으로 풀이된다. 회사 측은 조직 통폐합과 금융비용 절감으로 연 600억원의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개선을 예상하며 2년 내 흑자 전환을 목표로 제시했다.

이튿날인 26일에는 SK가스도 SK어드밴스드 흡수합병을 의결했다. 중국발 프로필렌 공급과잉으로 SK어드밴스드는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영업손실을 냈다. 부채비율은 2022년 말 97.6%에서 올해 3월 말 406.5%로 치솟았고 총차입금 5337억원의 89%가 1년 내 갚아야 하는 단기성 자금이다. 올해 1분기 흑자 전환했지만 미국·이란 전쟁에 따른 공급 부족과 판매가 상승의 영향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한국신용평가도 지난 6월 지정학적 위험이 완화되면 수익성이 다시 낮아질 것으로 봤다.



SK가스는 프로판 조달부터 프로필렌 생산·판매까지 이어지는 밸류체인을 하나의 경영체계로 통합해 사업·재무 효율성을 높인다는 구상이다. 지분 100% 자회사여서 신주를 발행하지 않아 기존 주주 지분율에는 변동이 없다. 지난 6월 울산GPS 자산 유동화에 이은 포트폴리오 최적화의 연장선이라는 설명이다.

이 같은 재편은 SK의 리밸런싱 흐름과 맞닿아 있다. 2023년 말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선임 이후 포트폴리오 재조정과 계열사 구조 단순화, 재무건전성 개선에 힘을 실으면서 2024년 5월 219개였던 계열사는 올해 5월 151개까지 줄었다. 초기 키워드가 비핵심 자산 매각을 통한 '몸집 줄이기'였다면 최근 흐름은 선택적 재편에 가깝다. 핵심 사업은 핵심 회사 안에 넣어 자본과 경영 역량을 집중하는 방식이다.

방향은 반도체와 AI 인프라다. HBM 등 AI 메모리를 생산하는 SK하이닉스에 관계사들의 AI 데이터센터와 에너지 인프라, AI 서비스 역량을 연결하는 그림이다. 연관성이 낮거나 자본 효율성이 떨어지는 사업은 덜어내고 성장축에 자본을 집중하겠다는 것으로 이번 두 건도 무엇을 남길지 가리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명분과 시장의 평가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자생력이 떨어진 자회사의 재무 부담과 사업 리스크를 모회사가 떠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SK이노베이션 주가는 26일 11.04% 급락했다. 합병신주 448만1300주 발행에 따른 지분 희석 우려가 겹쳤다. 회사 측은 발행주식총수의 2.6% 수준이어서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SKIET는 유동성 리스크 해소 기대에 가격제한폭까지 올랐다. SK가스는 관련 공시 직후 넥스트레이드(NXT) 애프터마켓에서 3.60% 하락했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이번 합병이 그룹 전체 포트폴리오 관점의 의사결정이었는지에 대한 시장 판단이 향후 밸류에이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확보한 자본과 경영 역량을 실제 성장사업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재배분하고 남긴 사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지가 리밸런싱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