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의 모습./사진=뉴스1


반도체 기업의 성과급이 직원들의 통장을 거쳐 자동차와 백화점, 가전 소비로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성과급을 지급한 뒤 이천·화성·청주 등 반도체 종사자가 많이 거주하는 지역의 소비는 다른 지역보다 최대 4%가량 늘었다. 현재 추세가 이어지면 지난해부터 올해 말까지 성과급으로 늘어난 소비는 누적 1조7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31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반도체 수혜지역의 소비는 어떻게 될까: 지역 미시데이터로 살펴본 파급효과'에 따르면 정희완·이재호 연구진은 시군구별 카드 결제액과 반도체 종사자의 거주지를 결합해 성과급의 소비 효과를 분석했다. 카드 결제액은 가맹점 소재지가 아닌 이용자의 청구지를 기준으로 집계했다. 지역 상권의 매출이 아니라 해당 지역 거주자의 소비를 추적했다.



성인 인구에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반도체 종사자가 차지하는 비중인 '반도체 노출도'는 이천이 6.8%로 가장 높았다. 화성이 4.6%, 청주 흥덕구가 3.6%로 뒤를 이었다. 공장 인근인 수원 영통구와 오산, 용인 수지구, 성남 분당구 등도 반도체 종사자의 거주 비중이 비교적 높았다.

이천·화성·청주 흥덕구 등 고노출 지역의 소비는 2025년 초 성과급 지급 이후 비노출 지역보다 뚜렷하게 늘었다. 세 지역의 월별 소비 증가폭은 지난해 최대 1.6%까지 확대됐다가 하반기 들어 다소 줄었다. 그러나 성과급 규모가 커진 올해 다시 반등해 지난 6월에는 3.7%에 달했다.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지난해 2월부터 올해 6월까지 누적 소비 증가액은 1조1000억원이다. 지난해와 같은 소비 흐름이 올해 하반기에도 이어진다고 가정하면 연말 누적 증가액은 1조7000억원으로 불어난다. 2025~2026년 연평균 증가액인 8000억원은 지난해 전체 민간소비 증가액 41조3000억원의 약 2%에 해당한다.
표=한은


현재까지 반도체 수혜지역의 소비 증가는 일상적인 소비 전반으로 퍼지기보다 자동차와 백화점, 가전·가구 등 고가 재량소비(필수소비가 아닌, 선택에 따른 소비)에 집중됐다. 대형마트·편의점 등 생활소비와 의료·교육 지출에서는 뚜렷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여가·문화 소비가 꾸준히 늘고 성과급 지급 직후 외식도 일시적으로 증가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소비의 무게중심이 자동차로 이동했다. 올해 들어서는 온라인 결제가 소비 증가를 주도했다. 연구진은 온라인으로만 판매되는 테슬라 차량의 인도량이 반도체 수혜지역에서 빠르게 증가한 점을 들어 온라인 소비 증가의 상당 부분이 자동차 구매와 관련됐을 것으로 분석했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반도체 수혜지역의 월평균 테슬라 인도량은 지난해 월평균보다 105.6% 급증했다. 같은 기간 전국 증가율인 77.2%를 크게 웃돌았다. 여기서 반도체 수혜지역은 이천과 화성, 청주 흥덕구, 용인 기흥구, 평택을 말한다.

등기 자료에서도 성과급 지급 이후 이천 거주자의 수도권 주택 매입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매입은 동탄과 용인·수원 등 경기 남부 반도체 벨트와 성남·하남 등에 집중됐으며, 특히 동탄 주택의 월평균 매입 건수는 전년의 약 2배로 늘었다.

성과급 대비 소비 증가액을 뜻하는 소비파급률은 지난해 27%, 올해 21%로 추정됐다. 지난해 지급된 소비쿠폰의 소비파급률 추정 범위인 16.1~39.8% 안에 들어가는 수준이다.

이 같은 소비 증가는 반도체 호황이 없었을 때와 비교해 국내총생산(GDP) 수준을 지난해 0.01%, 올해 0.03% 높인 것으로 추정됐다. 내년에는 성과급 규모가 올해의 약 5배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GDP 제고 효과도 0.08~0.12%로 확대될 전망이다. 연간 경제성장률을 0.06~0.09%포인트 끌어올리는 수준이다.

관건은 반도체 수혜지역에서 나타난 소비 증가가 경제 전반으로 얼마나 확산하느냐다. 반도체 호황의 파급력은 기존 근로자의 임금 상승을 넘어 신규 고용 확대로 이어지고, 늘어난 소득이 자산시장보다 소비로 유입되며 소비가 자동차·가전 등 일부 고가 품목에서 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로 넓어질수록 커질 수 있다.

연구진은 글로벌 인공지능(AI) 확산으로 국내 반도체 기업의 생산능력 확충이 앞당겨지면서 고용과 소비의 파급효과도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과거 2010년대 반도체 호황기에도 초기에는 기업 실적 개선이 기존 근로자의 보상 증가로 이어졌지만, 이후 대규모 증설과 함께 신규 고용의 기여가 점차 커졌다.

연구진은 반도체 호황의 성과가 IT 부문에 국한되지 않고 여타 산업의 고용과 생산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소재·부품·장비 등 국내 산업생태계를 강화하여 산업 간 연계효과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지목했다. 아울러 늘어난 소득이 자산시장으로 과도하게 유입되기보다 소비와
실물경제로 원활히 환류될 수 있도록 관련 여건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연구진은 "소비 회복이 일부 부문에 머무르지 않고 서비스업 등 부가가치와 고용유발효과가 큰 부문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중소기업·저소득층 등 취약부문에 대한 지원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