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내년 예산안을 820조9000억원 규모로 편성했다. 올해 본예산보다 12.8% 늘어났다. 총지출이 800조원을 넘어선 것도, 증가율이 두 자릿수를 기록한 것도 처음이다. 반도체 호황으로 급증한 세수를 기반으로 잠재성장률 반등을 꾀한다는 구상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1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2027년 예산안'을 심의·의결했다. 이 대통령은 "지금 우리는 저성장 고착화냐 잠재성장률 반등이냐 갈림길 앞에 서 있다"며 "늘어난 미래 재원으로 경제 파이를 키우고 산업 역량을 고도화해 재정여력을 확대하는 생산적 선순환 재정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내년 총수입은 880조8000억원으로 올해보다 205조6000억원(30.4%) 늘어난다. 국세수입이 584조4000억원으로 194조2000억원(49.8%) 급증한 영향이다. 반도체 기업 실적 개선으로 법인세가 크게 늘었고 소득세도 동반 상승했다. 총지출 820조9000억원은 예산 505조원(4.9% 증가)과 기금 315조8000억원(28.2% 증가)으로 구성된다.
이번 예산안의 핵심은 162조3000억원 규모의 미래대응기금 신설이다. 내년 국세수입 가운데 최근 10년 내국세 추세선을 웃도는 추가세수분을 별도로 떼어내 조성한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은 "대규모로 증가한 세수를 생산적 지출로 활용하기 위한 전략적 투자 플랫폼이자 재정여력을 보강하는 재정안정화 장치"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미래대응기금에서 45조4000억원을 청년·성장동력·지방·교육인재 4대 분야에 투자하기로 했다. 12조5000억원은 국채 신규발행 물량을 줄이는 데 쓴다. 나머지 104조4000억원은 여유자금으로 적립해 세수 결손 등에 대비하기로 했다.

정부는 5대 분야에 재원을 집중한다. 3대 메가프로젝트와 인공지능(AI)에 올해보다 97.2% 증가한 21조3000억원을 배정했다.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 특별회계를 신설하고, 그래픽처리장치(GPU) 1만장과 데이터·인재를 지원한다. 미래 성장엔진 확충에는 62조8000억원을 들여 소형모듈원자로(SMR)·핵융합·양자·우주항공·첨단바이오 등 국가전략 핵심기술을 지원한다.
청년 예산은 28조2000억원에서 43조3000억원으로 53.5% 증액했다. 혼인지원금, 출산지원금, 아동기본수당으로 구성된 저출생 대응 3종 패키지를 신설한다. 청년미래적금은 소득요건을 폐지해 모든 청년이 가입할 수 있게 했다. 역세권에 넓은 평수의 보편형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고, 청년문화예술패스는 모든 청년에게 매년 지원한다.
K자형 양극화 대응에는 전년 대비 36.6% 증가한 117조1000억원을 편성했다. 기준중위소득을 역대 최대인 6.7% 인상하고 노인일자리는 118만개로 확대한다. 2027년 신입생부터 지방 국립대 등록금을 전액 장학금으로 지원하고, 농어촌 기본소득 대상은 35개 지역으로 늘린다. 코로나 피해 소상공인의 장기연체 채무도 특별 조정한다.
국민안전·평화 분야에는 24.8% 증가한 38조3000억원이 책정됐다. 임기 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위해 핵추진잠수함과 KF-21 등 핵심전력 도입을 뒷받침하고, 공급망 불안에 대응해 자원안보기금을 신설하기로 했다.
정부는 함께 발표한 '2026~2030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총지출을 2030년 1005조2000억원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다만 증가율은 내년 12.8%를 정점으로 2028년 9.0%, 2029년 7.0%, 2030년 5.0%로 낮춘다. 조용범 기획예산처 차관은 "현재의 반도체 세수가 계속될 것이라고 전제할 수는 없다"며 "증가율을 연착륙시켰다"고 말했다.
예산안은 오는 3일 국회에 제출돼 심의를 거친다. 이 대통령은 "정부안이 언제나 옳은 것도 아니고 완벽할 수도 없다"며 "국회가 심의 과정에서 국민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필요한 부분을 보완한다면 정부도 이를 적극 존중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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