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이 세상의 간극을 좁히면서 기회로 점프할 수 있게 하는 디딤돌이 돼야 한다. 오히려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면 금융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1990년대 국내에 선진 신용평가 시스템을 도입했던 김민정 크레파스솔루션 대표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대안신용평가에 뛰어든 이유를 묻자 이같이 답했다. 그가 바꾸려는 것은 신용점수 자체가 아니라 과거의 금융 이력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방식이다.
김 대표는 기존 신용평가의 가장 큰 한계로 금융회사의 리스크 회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신용평가는 금융 심사를 자동화하기 위해 과거 금융거래 이력을 가지고 어떤 정보가 좋은지 나쁜지를 확률 모델로 만든 것"이라며 "안 갚을 사람에게 대출해주는 오류를 줄이는 데 집중하다 보니, 잘 갚을 사람인데도 안 갚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오류는 놓치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청년층은 금융 이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실제 가능성보다 낮게 평가될 수 있다. 김 대표는 크레파스솔루션 설립 전 2019~2021년 청년 금융 피어투피어(P2P) 플랫폼 '청년 5.5'를 운영하며 소방관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 임용을 기다리는 사람, 대학원생 등 금융권에서 외면받는 청년들을 만났다.
그는 "몇백만원만 있으면 도전할 수 있는데 그 돈이 없어 기회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며 "이들에게 금융이 디딤돌이 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상환 능력 지속 가능성…회복성 중요"
크레파스솔루션이 기존 대안신용평가와 차별화하는 핵심은 '회복성'이다. 기존 신용평가가 과거 데이터를 바탕으로 얼마나 위험한지를 측정한다면, 크레파스는 현재의 행동을 통해 금융 시스템에 진입했을 때 다시 좋아질 가능성을 본다.
김 대표는 "지금은 별 볼 일 없는 상태처럼 보이지만 금융 시스템을 활용할 때 다시 향상될 가능성이 있는지를 보는 것"이라며 "상환할 능력을 지속할 힘이 있는지, 약속을 잘 지키는지 등 신뢰할 수 있는 행동 성향을 평가한다"고 설명했다.
평가에는 금융정보 외에도 앱 이용 패턴, 마일리지·포인트 관리 습관, 스마트폰 사용 패턴 등 다양한 디지털 데이터가 활용된다. 단일 행동을 점수화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행동 신호를 통계·머신러닝·인공지능(AI) 등을 통해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김 대표는 "잘 냈으면 플러스 10점, 안 냈으면 마이너스 10점을 주는 방식이 아니다"라며 "작은 데이터들이 쌓이면 유사한 금융 리스크를 가진 사람 중 회복성이 높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성과도 확인됐다. 크레파스솔루션은 금융회사와의 실증에서 연체율을 약 58% 낮췄고, 신용카드사와의 실증에서는 같은 중저신용자 가운데 평균 부도율보다 우량한 집단을 68% 더 찾아낸 사례가 있다.
다만 대안신용평가가 금융권에 뿌리내리기 위해선 금융회사의 적극적인 참여와 제도적 유인이 필요하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김 대표는 "금융회사가 대안평가를 활용해 새로운 고객을 찾더라도 충분한 인센티브가 없다"며 "누가 하라고 해서 조금씩 하는 것과 리더가 '제대로 해보자'고 하는 것은 다르다"고 말했다.
기존 신용평가와 대안신용평가의 결합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그는 "기존 신용평가는 리스크를 측정하는 축이고, 여기에 미래의 회복성을 판단하는 별도의 축이 필요하다"며 "두 평가를 함께 활용해야 금융이 놓치고 있는 사람에게 기회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그리는 미래의 신용평가는 '그룹'에서 '개인'으로 이동한다. 그는 "같은 1등급에도 위험한 사람이 있고 10등급에도 잘 갚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며 "앞으로는 같은 신용점수라도 개인의 행동에서 신뢰성을 보여주는 여러 시그널을 찾아 원투원으로 판단하는 신용평가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가 말하는 대안신용평가의 목적은 새로운 점수를 만드는 데 있지 않다. 김 대표는 "신용평가는 개인의 금융 권리를 위한 도구가 돼야 한다"며 "사람을 거르는 것이 아니라 금융과 연결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내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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