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이주희 모형개발운영팀장, 조진현 신용리스크모델링팀장, 김진호 모형기획팀장/사진=카카오뱅크


은행 대출 심사는 오랫동안 '돈을 빌려본 사람'에게 유리한 시험이었다. 빌리고 갚은 기록이 쌓일수록 다음 대출의 문은 쉽게 열린다. 처음 돈을 빌리려는 사람은 갚을 능력이 있어도 이를 증명할 기록이 없다. 빌린 적이 없어서 빌릴 수 없는 역설이다.

카카오뱅크는 이 공식을 뒤집었다. 금융 이력이 부족한 사회초년생과 주부는 생활 속 행동으로, 소상공인은 대표자 신용에 더해 사업장의 매출 흐름으로 평가했다. 이주희 카카오뱅크 모형개발운영팀장은 "금융 이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곧 신용이 부족하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성과는 숫자로 나타났다. 카카오뱅크는 2022년 하반기 카카오 계열 서비스와 롯데멤버스, 교보문고, 금융결제원 등의 가명결합 데이터로 '카카오뱅크스코어(카뱅스코어)'를 개발했다. 2023년부터 대출 심사에 적용해 올해 6월까지 기존 모형이라면 거절됐을 중·저신용자와 개인사업자에게 약 1조2000억원을 추가로 공급했다. 같은 기간 카카오뱅크 중·저신용 대출의 약 12%(건수 기준)에 해당한다.

이 팀장은 "외부 솔루션에 기대지 않고 데이터 수집부터 설명 가능한 AI(인공지능) 모형 개발과 운영, 알고리즘 최적화까지 전 과정을 내부에서 구축한 것이 강점"이라며 "축적된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안전성과 혁신성을 함께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카뱅스코어는 기존 신용점수에 가점 몇 점을 얹는 방식이 아니다. 비금융 데이터만으로 별도 점수를 낸다. 김진호 카카오뱅크 모형기획팀장은 "기존 관행대로 전통적인 신용점수만 보고 심사하는 것이 가장 편한 길"이라면서도 "그 관행을 깨고 독자적인 모형을 개발해 매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게 카카오뱅크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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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모으는 것보다 버리는 게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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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신용평가가 과거의 금융거래를 본다면, 대안신용평가는 일상을 들여다본다. 플랫폼을 얼마나 꾸준히 썼는지, 소액결제와 공과금을 제때 냈는지, 가게의 매출과 손님 수가 어떤 흐름을 그렸는지가 평가 재료가 된다.



첫 관문은 데이터 찾기였다. 신용평가에 쓸 정보는 여러 플랫폼과 기관에 파편처럼 흩어져 있었다. 데이터를 발굴해 제휴를 맺고, 개인정보 보호 등 규제의 벽도 하나씩 넘어야 했다. 김 팀장은 "파편화된 데이터를 찾아 제휴를 맺고 규제의 허들을 넘는 과정은 매 순간이 난관이었다"며 "씬파일러(금융이력이 부족한 이들)에게는 정당한 기회를, 소상공인에게는 업종에 맞는 공정한 평가를 제공하겠다는 목표로 기존 관행을 바꿔왔다"고 말했다.

진짜 난제는 그다음이었다. 플랫폼 방문 빈도나 서비스 가입 기간은 부실 가능성과 일정한 상관관계를 보이지만, 앱 개편이나 이벤트 한 번에도 크게 흔들린다. 제휴사가 적립 행사를 열면 포인트 값이 갑자기 치솟고, 서비스 정책이 바뀌면 잘 쌓이던 정보가 하루아침에 끊기기도 한다.

그래서 카카오뱅크는 데이터를 모으는 만큼 '버리는 일'에도 공을 들인다. 상관관계가 높아도 외부 환경에 쉽게 흔들리는 정보라면 평가에서 뺀다. 이 팀장은 "외부 환경이 변해도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 데이터인지를 까다롭게 검증한다"고 말했다. 한 달 매출이 꺾였다고 점수가 추락하지 않도록 평균화 기법과 변수 상·하한을 두고, 개인사업자 데이터는 최소 3개월에서 1년의 흐름으로 본다.

정확하기만 하면 좋은 모형일까. 금융에서는 판단의 이유까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머신러닝은 수백 가지 변수의 복잡한 관계를 읽어 예측력을 높이지만, 자칫 결과만 내놓는 '블랙박스'가 될 수 있다.

카카오뱅크는 설명가능한 인공지능(XAI)으로 각 정보가 평가 결과에 미친 영향을 계산하고, 전통적인 통계 모형과 결합해 안정성을 보완한다. 이 팀장은 "끊임없는 연구와 검증을 통해 정확도뿐 아니라 설명 가능성과 안정성까지 갖춘 모형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카카오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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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는 잘되는데 사장님 점수는 낮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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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개인사업자 평가는 대표자의 개인 신용에 크게 기댈 수밖에 없었다. 개인 신용정보는 업종과 관계없이 공통으로 적용할 수 있지만, 사업장 정보는 음식점·소매업·온라인 판매업처럼 업종마다 성격이 달라 하나의 모형에 함께 넣으면 평가 변수로 살아남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카카오뱅크는 이 한계를 넘기 위해 개인사업자를 '개인'이자 '사업체'로 나눠 본다. 업종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표자 개인 신용을 약 60%, 사업체 상환 능력을 약 40% 반영한다. 또 생활밀착서비스업·소매업·음식점업·온라인 판매업 등 업종별로 평가 모형을 따로 만들었다. 김 팀장은 "업종별로 평가 그룹을 나누면서 각 업종에 실제로 의미 있는 사업장 정보를 모형에 반영할 수 있게 됐다"며 "개인사업자를 개인으로만 보던 평가에서 사업체로도 보는 구조로 바뀐 것"이라고 말했다.

음식점은 방문 고객 수와 결제 패턴을, 온라인 판매자는 리뷰와 '스토어찜' 수 등을 평가에 활용한다. 노란우산공제와 공과금 납부 이력도 참고한다. 김 팀장은 "반짝하고 1억원을 버는 매장보다 1년 내내 기복 없이 버는 매장이 신용 리스크 관점에서는 훨씬 우량하고 예측 가능한 고객"이라고 말했다. 불황으로 업종 전체 매출이 줄더라도 업종 내 매출 순위와 최근 12개월 흐름을 함께 살펴 일시적인 매출 감소만으로 경쟁력이 떨어졌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다듬은 평가 기술은 카카오뱅크 밖으로도 뻗어 나가고 있다. 카카오뱅크는 외부 금융회사용으로 따로 만든 '카카오뱅크 플랫폼 스코어(카플스코어)'를 올해 초부터 NICE평가정보를 통해 저축은행과 캐피탈사에 제공하고 있다. 연말까지 10곳 이상이 도입할 전망이다.

조진현 카카오뱅크 신용리스크모델링팀장은 "카카오뱅크가 직접 수용하지 못한 고객도 제2금융권에서 적절한 금융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포용금융의 범위를 넓히는 취지"라며 "제휴 금융사에는 숨은 우량 중·저신용자를 선별할 수 있는 도구가 돼 카카오뱅크 플랫폼의 경쟁력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조 팀장은 "대안평가는 '걸러내는 기술'이 아니라 '품어주는 기술'"이라며 "출범 초기부터 차별화된 신용평가모형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달려왔고, 그 결과가 기술적 성취를 넘어 포용금융과 상생금융으로 이어지는 데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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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서도 현지형 신용모형 공동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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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는 해외로도 넓어진다. 카카오뱅크는 몽골 MCS그룹의 디지털은행 M Bank와 현지형 신용평가모형을 공동 개발하고 있다. 금융 이력은 짧지만 모바일 이용에 익숙한 젊은 층이 많아 대안정보 활용 여지가 크다는 판단이다. 이 팀장은 "데이터와 제도적 기반이 갖춰진 국가라면 글로벌 파트너사와 다양한 형태의 기술 협력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카카오뱅크는 앞으로 새로운 데이터를 발굴해 평가 대상을 개인사업자와 법인까지 넓히고, 검증된 모형을 다른 금융회사와 공유한다는 구상이다. 평가 대상과 활용처를 넓혀 금융 이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대출 문턱을 넘지 못했던 고객을 제도권 금융으로 연결하는 것이 목표다.

조 팀장은 "카뱅스코어가 금융소비자를 제도권 금융과 연결하는 징검다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돈을 빌린 기록이 없어 돈을 빌릴 수 없는 역설을 끝내고, 금융 이력이 아니라 성실하게 살아온 궤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카뱅스코어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