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전기승합차 시장에서 국산차 선택지가 늘며 과거 시장을 장악했던 중국차 입지가 급격히 약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마을버스·시내버스급 시장 등에서는 정부 보조금 문턱이 높아져도 가격 경쟁력이 여전한 만큼 국내 제조업 경쟁력 강화 대책이 필요하다는 전문가 지적도 나왔다.
10일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1~8월 국내 전기승합차 신규등록은 1만8746대다. 이 가운데 중국 브랜드는 488대로 점유율은 2.6%다. 2024년 전체 신규등록 5020대 가운데 중국산이 2618대(52.2%)였던 것과 비교하면 큰 폭의 감소세다.
여객을 태워 나르는 승합자동차를 통상 버스라고 부른다. 자동차관리법은 11명 이상을 태울 수 있게 만든 차를 승합자동차로 보고, 이를 다시 경형·소형·중형·대형으로 나눈다.
기준은 승차정원이다. 정원 15명 이하면 소형, 16~35명이면 중형, 36명 이상이면 대형이다. 다만 크기 조건이 함께 걸린다. 소형으로 인정받으려면 길이 4.7m, 너비 1.7m, 높이 2.0m를 모두 넘지 않아야 한다. 정원이 15명 이하라도 이 가운데 하나라도 넘으면 중형으로 올라간다. 길이가 9m를 넘으면 정원과 무관하게 대형이다. 25인승인 현대차 카운티는 이 기준에 따라 중형에 해당한다.
중국 전기승합차의 전체 점유율 하락은 카이즈유가 준중형으로 분류한 차급(카운티급) 미만 시장 재편과 맞물렸다. 2024년 중국산 비중이 94.0%(1331대)에 달했던 이 차급은 올해 1~8월 1.1%(181대)까지 낮아졌다. 올해 등록된 준중형 미만 전기승합차는 1만7237대로 전체의 91.9%였고 이 가운데 기아가 1만5273대, 현대차가 1783대로 국산이 대부분이다.
소형급 전기승합차 수요는 2024년 들어 급격히 늘었다. 그해 1월부터 대기관리권역 안에서는 택배용·어린이통학용 경유차를 새로 등록해 쓸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경유차를 전기차 등으로 바꿔야 하는 수요가 한꺼번에 생긴 것인데, 이 시장을 차지한 것은 중국산이었다.
규제 범위는 이후 한 차례 좁혀졌다. 환경부는 2024년 12월 16인승 이상이거나 총중량 3.5t 이상인 중대형 어린이통학버스를 제한 대상에서 뺐다. 대체차량 수급이 원활하지 않다는 이유였다. 결국 전환해야 할 의무물량이 소형 쪽에 남게 된 셈이다. 지금은 국내 제조사가 이 수요를 흡수하고 있다. 용도에 맞춰 차체를 바꿀 수 있는 목적기반차량(PBV) 계열 신차 현대차 ST1과 기아 PV5를 잇따라 내놓으면서다.
수요를 빼앗긴 소형급과 달리 마을버스나 시내버스 등으로 운행되는 준중형급 이상에서는 중국산의 영향력이 여전하다. 올해 1~8월 신규등록은 1509대였고 그 중 중국 브랜드는 307대(20.3%)로 5대 중 1대꼴이었다. 중국산 비중은 2024년 35.7%, 2025년 31.4%로 소폭 감소한 뒤 올해 들어 20%대까지 낮아졌다.
올해 점유율 하락은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기준 강화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전기승합차에는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전기차 구매보조금과 국토교통부의 저상버스 보조금이 별도로 적용된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최근 몇 년간 배터리 안전성·주행거리·사후관리 등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보조금 기준을 강화해왔다. 올해는 배터리 에너지밀도 등 성능 기준을 한층 끌어올렸다. 대형 전기버스는 배터리 에너지밀도 530Wh/L, 경·소·중형 및 어린이통학버스는 410Wh/L 초과 여부 등이 보조금 지원 기준에 반영된다. 대형에는 2021년부터 보조금 과다수령을 막기 위한 최소 1억원의 자기부담금 요건도 적용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기후에너지환경부 보조금과는 별개로 저상버스 보조금으로 대당 8700만원을 일괄 지급해왔으나 올해부터 성능·안전·이동편의시설 등을 평가해 최대 9000만원 한도에서 차등 지급하는 방식으로 개편했다. 중국산은 성능 측면에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저상버스는 차 출입구가 낮고 넓게 설계돼 휠체어를 타고도 이용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과거 중국산 전기버스는 보조금 혜택이 큰 저상버스를 중심으로 국내 시장에 진입했다. 현재는 과거와 같은 수준의 보조금 혜택을 받기 어려워졌음에도 올해 20%대 점유율을 유지한 것은 가격 경쟁력 덕분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경영 상황이 좋지 않은 민영 운수업체 입장에서는 보조금이 줄더라도 초기 구매비용과 금융조건 등을 고려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차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국내 제조사의 원가 구조를 문제로 짚는 시각도 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는 중국산 전기버스에 대해 "마을버스급 모델은 실내 내장재나 시스템 품질이 국산 못지않고 전국 A/S망도 일정 수준으로 갖추고 있다"며 "국내 제조사는 고임금 등 높은 원가 구조 탓에 가성비 모델 생산이 어려워 단가 차이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내 생산 기반을 지키기 위해 세액공제를 확대하는 등 보다 근본적인 제조업 지원책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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