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재 국회 예산결산특별원장이 지난 9월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예산결산특별원장실에서 '동행미디어 시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사진=조현호 기자


1988년 4월 서울의 한 커피숍. 만 41세 초선 국회의원 노무현이 23세 청년 이광재와 마주 앉았다. 보좌관 면접 자리였다. 청년은 대학 시절 학생운동으로 수감됐다가 풀려난 직후였다. 살아온 과정과 정치 철학을 묻는 질문이 3시간 넘게 이어졌다. 노무현 의원은 면접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정치를 잘 모릅니다. 나를 역사 발전의 도구로 써주세요."



청년은 '이 사람이 최소한 정치를 권력 투쟁의 도구로 보진 않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손을 잡았다. 노 의원은 비서실 구성까지 그에게 맡겼다. 23세 국회의원 보좌관은 아직까지 유례를 찾기 어렵다. 그는 30대에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 됐고 40대에는 재선 국회의원과 최연소 강원도지사를 지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경남 김해, 이광재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은 강원 평창 출신이다. 시골에서 자란 두 사람은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공공기관 지방이전이 필요하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중 균형발전에 대해 "제도로 정착시키는 것은 나의 임기 안에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로 구현되고 성과를 내기까진 10년, 20년, 30년이 걸릴 수 있다"고 했다.

노무현 정부가 2003년 시작한 1차 공공기관 이전 정책에 따라 2019년까지 153개 기관이 지방으로 내려갔다. 이 위원장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과 국회의원, 강원도지사를 거치며 이를 주도하거나 뒷받침했다.



이 위원장은 지난 10일 국회 예결위원장실에서 [시대]와 만나 1차 지방이전에 대해 "절반의 성공"이라며 "혁신경제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2차 이전의 성패는 혁신경제가 일어날 수 있는 교육·의료·문화 정주여건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그가 제시한 해법은 교육이었다. 이 위원장은 "서울대 10개 만들기와 혁신도시가 결합되면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다"며 "대학교가 일자리 발전소가 되고 젊은이들의 삶의 보금자리가 되며 벤처의 기지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 위원장은 이재명 정부의 지방주도성장을 성공시킬 열쇠로 지역 산업과 대학이 함께 가는 '박정희 모델'을 제시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배워야 할 것은 포항제철을 세우면서 포항공대를, 구미 전자산업을 일으키면서 금오공대와 경북대 전자과를, 부산·경남의 기계공업을 키우면서 부산대 기계공학과와 조선공학과를 함께 만들어 대한민국 넘버원으로 키운 것"이라고 했다.

그는 네덜란드 바헤닝언이 인구 4만명의 소도시지만 식품 특화 대학을 중심으로 연 70조원 규모의 푸드 클러스터를 키운 사례를 소개했다. 국민연금공단이 옮겨간 전북의 경우 전북대에 연금 관련 계약학과를 두고 병역특례 등 파격적 혜택을 주자고 했다. 대학이 키운 인재가 자본을 부르고 자본이 다시 인재를 부르는 선순환이 이 위원장이 말하는 지방주도성장의 조건이다. 그는 "우리는 사람밖에 없는 나라다"며 "사람에 투자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아래는 이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이광재 국회 예산결산특별원장이 지난 9월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예산결산특별원장실에서 '동행미디어 시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사진=조현호 기자


-1차 공공기관 지방이전을 어떻게 평가하나.
▶절반의 성공이다. 가장 큰 문제는 혁신경제가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혁신도시라면 혁신이 있어야 하고 새로운 경제가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두 번째는 정주여건이다. 여건이 부족하니 출퇴근하는 사람이 많고 (강원도) 원주만 해도 주말이면 다 서울로 올라온다. 유치원부터 초·중·고까지 학교, 병원, 중소도시의 약한 문화 혜택이 그 이유다. 혁신경제를 일으키는 것과 정주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 이 두 가지를 함께 풀어야 한다.

-노무현 정부의 혁신도시 구상은 무엇이었나.
▶혁신도시와 인근 대학의 전면적 결합이었다. 진주에는 경상국립대가 있고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내려갔다. LH가 경상대와 계약학과를 맺어 도시공학과·건축학과를 대한민국 최고 학과로 만들고, 건설·도시계획 관련 기업 연구소가 들어오는 구조다. 그 학과에는 병역특례 같은 전폭적 지원을 하고, 부족한 대학 기숙사를 대폭 늘려 기업 연구소 직원도 살게 하면 혁신경제가 일어날 가능성이 훨씬 커진다. 원주라면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맞는 특성화 학교를 기관이 재정적으로 후원해 운영하는 방식이다. 그렇게 되면 대학이 일자리 발전소, 젊은이의 보금자리, 벤처의 기지가 되고 혁신도시와 결합할 수 있다. 그 결합이 이뤄지면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뜻이었다. 그런데 공공기관을 옮긴 뒤 정주여건 개선과 대학과의 결합이 따라오지 못했다.

-2차 이전은 어떻게 가야 하나.
▶'서울대 10개 만들기'와 혁신도시를 결합하면 시너지가 난다. 대학이 청년 주거 문제를 풀고 기업 연구소까지 품으면 캠퍼스가 살아난다. 전북대는 도심 캠퍼스가 44만평인데 익산·고창 캠퍼스를 합치면 680만평이다. 전북에는 국민연금공단이 있으니 연금 학과, 연금 운용, 연금 투자 관련 학과를 두면 좋은 학교가 될 수밖에 없다. 농촌진흥청, 새만금에 들어간 현대자동차와 연계한 학과까지 두면 전북대가 살고 그곳이 혁신 기지가 된다. 혁신도시도 함께 일어선다.

-공공기관 인력을 겸임교수로 활용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 공공기관에는 박사가 많다. 디즈니나 픽사를 만들 때 회사 사람이 가르쳤다. 살아 있는 공부가 된 것이다. 공공기관 정년이 60세인데 연구교수 등으로 대학과 협력하게 하고 정년을 5년쯤 연장해 주면 인적 순환 구조가 훨씬 강해진다.

-임직원 자녀까지 함께 이주할 유인이 돼야 할텐데.
▶전북대의 해당 학과가 대한민국 최고이고 병역특례가 있고 국민연금 취업까지 된다면 가족 동반 이주 유인은 저절로 커진다. 지역할당제도 중요하지만 최고의 인재가 모여야 최고의 LH가 되고 대한민국의 도시가 좋아진다. 최고 인재가 전북대와 국민연금을 매개로 연금 학과에서 나오면 국민연금도 좋아지고 사람들은 점차 정착한다.

-의료 여건은 어떻게 개선해야 하나.
▶'AI 주치의' 시대가 빨리 열려야 한다. 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세계 최강의 의료 데이터가 있는데 병원 데이터, 개인 데이터와 결합되지 않고 있다. 개인정보만 보호되면 화장실 변기에서 소변을 계속 분석해도 몸 상태를 점검하고 '건강검진을 받으라'는 경고를 받을 수 있다. 원격진료까지 갈 것도 없다. 다만 수술까지 지방이 수용하기는 아직 어렵다. 이번에 지방 국립대를 대폭 강화하는데 의료 분야에는 획기적인 대책이 있어야 한다.

-혁신도시 10여곳의 인프라 격차가 크다. 지역거점도시에 공공기관을 집중해야 하나.
▶일본을 보면 분산보다 집중이 낫다. 가령 부산에 공공기관 직원들 아파트를 전부 구해주려면 돈이 많이 든다. 인근 부경대 용당캠퍼스는 활용도가 떨어져 있다. 그런 캠퍼스에 부산 금융기관들이 아파트도 짓고 벤처 투자도 하면 서로 좋다. 학교가 가진 공간을 활용하면 훨씬 낫다. 원주에서 의원을 할 때는 혁신도시 기관들이 원주공고를 '우리가 운영하게 해 달라'고 하기도 했다.

-정주여건이 유리한 거점을 꼽으면.
▶원주는 서울과 가까운 편이다. 노무현 정부가 평택 미군기지를 추진하면서 산업이 평택까지 갔고 지금은 충남 아산까지 갔다. 현대자동차가 군산·새만금으로, 삼성전자 반도체가 광주로 가면서 축이 계속 남쪽으로 내려오고 있다. 광주는 에너지·전기 문제와 반도체가 결합되면서 인구가 크게 늘고 있다. 미국도 스탠퍼드대가 있어 실리콘밸리가 있고, 텍사스대가 있는 오스틴에는 삼성 반도체가 들어갔다. 결국 좋은 대학과 결합하는 것이 중요하다. LH도 큰 기관이고 경상대도 좋은 대학이다.

-정주여건이 약한 혁신도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앵커 기업이 있는지에 따라 다르다. 세계적인 중소도시에는 항상 세계적인 대학이 있다. 인재가 없으면 기업이 돌아갈 방법이 없다. 이번에는 대학과 혁신도시를 전면적으로 결합하는 것을 하나의 전략으로 봐야 한다. 학교 부지는 수십만평이고 땅값도 값싸다. 상하수도와 전기가 다 있고 젊은이가 있다.

-예결위원장으로서 2차 이전 예산은 어디에 쓰나.
▶공공기관은 대체로 재정 여력이 있어 이전 지원 자체는 크지 않다. 교육·의료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데 써야 한다. 서울대 10개 만들기와 혁신도시, 공공기관을 결합해 정주여건을 높이고 오랫동안 편안하게 사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에선 대학이 생기면 도시가 따라오는데.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의 포항이 그 모델이다. 산업을 만들면서 대학을 함께 만들었다. 포항제철과 포항공대, 구미 전자산업과 금오공대·경북대 전자과, 부산·경남 기계공업과 부산대 기계공학과·조선공학과가 그 예다. 세계 최초의 산학협력 도시인 독일 드레스덴 공대 모델과 같다. 그것이 중화학공업 시대의 도시였고,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판교였다. 판교는 IT 도시가 됐지만 대학이 없다. 판교는 지난해 220조원 규모였는데 면적은 40만평 정도다. 집적의 효과가 그만큼 크다. 네덜란드 바헤닝언은 인구 4만명, 인근까지 38만명인데 식품 하나로 연 70조원을 한다. 그 대학에 '오늘의 지식, 내일의 비즈니스'(Today's knowledge, Tomorrow's business)라고 쓰여 있었다. 그런 원리를 확고히 가져야 한다.

-한국에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리서치 트라이앵글 같은 모델이 가능한가.
▶그것을 지금 시대에 맞게 만들어내면 된다. 카이스트와 충남대가 100만평이다. 세계적인 도시를 만들 수 있다. 카이스트 인근에 연구소가 많으니 지역 주민도 들어갈 수 있게 하고, 카이스트 부설 유치원·초·중·고와 국제학교를 안에 넣으면 외국 교수 유치에도 좋다.

-인적 자본을 계속 강조하는데.
▶우리는 사람밖에 없는 나라다. 대학이 모두 종합대학이 돼서는 곤란하다. 미국도 몇 개 학과가 강하지 모든 학과가 좋은 것은 아니다. 우리 기업은 대학에 투자를 너무 안 한다. 우수한 공대 학생은 미국에 가면 연봉이 훨씬 높다. 공채 시대가 다시 와야 한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2·3·4차 협력사에 대대적으로 투자하고 R&D(연구개발)를 함께 해야 TSMC처럼 장기 성장 기반이 생긴다. 사람에 대한 투자가 유치원부터 초·중·고, 대학, 기업까지 연동돼야 한다.

-지방 반도체 클러스터를 강조하며 주 52시간제 유연화도 언급했는데.
▶노동환경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자는 것이다. 특구뿐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가 그렇게 살아갈 필요가 있다. 예컨대 3교대 근무를 하는 직종은 사람을 못 구하고 수출기업은 인력난을 겪고 있다. 1인 기업은 기업인지 노동자인지 구별이 안 된다. 그래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변화를 꾀해야 한다. 다만 노동 문제는 사회적 논의가 많이 필요하다.

-교육 예산이 초·중·고에 집중되고 대학에는 적다.
▶대학 투자 비중을 높여야 한다. 정부뿐 아니라 민간 기업이 대학에 투자하고 기부도 많이 해야 한다. 스탠퍼드대 기금이 40조원쯤 된다. 학교가 투자해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벤처에 투자해 수익을 내고 졸업생이 기부하는 구조가 돼야 한다. 우리는 그것이 약하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내국세 연동 방식도 바뀐다.
▶이번에는 대학을 과감하게 지원하는 쪽으로 바뀐다. 평생교육도 대학이 많이 맡으면 좋겠다. 0세부터 8세까지 지능의 80%가 발달한다는데 이 부분에 재정을 상당히 써야 한다. 초등학교는 무상급식을 하는데 어린이집은 못 하고 있다. 어린이집 교사 대우도 좋아져야 한다. 결국 사람에 투자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이광재 국회 예산결산특별원장이 지난 9월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예산결산특별원장실에서 '동행미디어 시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사진=조현호 기자


▶이광재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4선·경기 하남시갑) 프로필
▲1965년 강원 평창 출생 ▲원주고 졸업 ▲연세대 법학과 졸업 ▲노무현 국회의원 비서관 ▲노무현 대통령당선인 기획팀장 ▲대통령비서실 국정상황실장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당선(강원 태백·영월·평창·정선·열린우리당)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당선(강원 태백·영월·평창·정선·민주당) ▲제35대 강원도지사 ▲재단법인 여시재 원장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당선(강원 원주시갑·민주당) ▲민주당 K뉴딜위원회 총괄본부장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제35대 국회사무총장 ▲2026년 6·3 재보궐선거 당선(경기 하남시갑·민주당) ▲제22대 국회 후반기 예산결산특별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