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 2026 현대차그룹 미디어데이에서 공개된 보스턴다이나믹스 '차세대 전동식 아틀라스 연구형 모델'. /사진=현대차그룹


AI 풀스택 경쟁에서 한국이 내세울 차별점으로 제조 현장이 꼽힌다. 모델과 클라우드에서 미국 빅테크를, 자본 투입 속도에서 중국을 앞서기 어렵다면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기반에 AI를 결합하는 전략이 현실적이라는 평가다. 반도체·자동차·조선·철강 등 주력 업종이 쌓아온 공정 데이터가 곧 피지컬 AI의 학습 자산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제조 현장이 승부처라는 인식은 기업들의 투자 계획에도 반영돼 있다. 엔비디아가 지난해 10월 공개한 한국 내 GPU 공급 계획은 26만장 이상 규모다. 삼성전자·SK그룹·현대자동차그룹에 각각 약 5만장, 네이버클라우드에 약 6만장, 정부 주도 AI 인프라에 약 5만장을 배치하는 구상이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제조 혁신, SK그룹은 산업용 AI와 로봇을 지원하는 클라우드 구축, 현대차그룹은 제조·자율주행 AI 개발을 추진한다. 확보한 연산 자원을 산업 현장의 AI 역량으로 연결하려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휴머노이드 로봇을 자동차 생산라인에 투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로봇 기술에 그룹의 제조·부품·물류·소프트웨어 역량을 결합하는 전략이다. 아틀라스를 2028년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에 투입하고, 2029년 하반기에는 기아 조지아 공장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를 뒷받침할 로봇 메타플랜트 응용센터(RMAC)도 올해 6월 미국에 문을 열었다. 실제 제조환경을 재현한 공간에서 로봇을 훈련하고 검증하는 거점이다. 공장에서 확보한 데이터를 로봇 학습에 활용하고, 개선한 기술을 다시 생산 현장에 적용하는 구조를 구축하는 데 의미가 있다.

조선 업계도 설계·생산 과정에 AI를 접목하고 있다. HD현대는 2030년 지능형 자율운영 조선소 구현을 목표로 삼고, 숙련 기술자의 지식과 경험을 활용하는 '조선 AI 명장 에이전트'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복잡한 설계와 작업 조건에 대응해야 하는 조선 현장에서 AI가 판단을 지원하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기아 오토랜드 화성 에보 플랜트 이스트(EVO Plant East) 차체 공장. /사진=기아


정부도 제조기업과 AI 기업의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출범한 M.AX(제조 AI 전환) 얼라이언스에는 올해 8월 기준 1500여개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산업부는 올해 얼라이언스를 중심으로 7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제조 데이터 공동 활용과 부문별 AI 모델 개발, 지역 AI 전환 등을 지원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개별 기업이 확보하기 어려운 데이터와 기술을 협력 체계를 통해 보완하려는 취지다.



최수환 리얼월드 전무는 "LLM에서는 세계 1·2위가 되기 쉽지 않지만 피지컬 AI 자체는 우리가 충분히 1위를 할 수 있는 가능성과 잠재력, 수요와 공급을 다 가진 절묘한 위치에 있다"고 평가했다. 로봇 하드웨어와 AI 모델, 이를 연산하는 반도체까지 한 나라에 모두 모여 있는 경우가 드문 이유에서다.

대기업의 투자 확대는 아직 중소 제조기업의 AI 전환으로 충분히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대한상의가 지난해 11월 제조기업 504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를 보면 응답 기업의 82.3%가 AI를 경영에 활용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대기업 활용률은 49.2%였던 반면 중소기업은 4% 수준에 그쳤다. 2024년 스마트제조혁신 실태조사에서도 제조 AI를 실제 도입한 중소 제조기업은 전체의 0.1%, 도입 계획이 있는 기업까지 더해도 1.7%에 머물렀다. 대·중소기업 간 생성형 AI 활용률 격차 역시 서비스업이 9.2%포인트인 데 비해 제조업은 24.2%포인트로 가장 컸다.

중국도 제조업 전반으로 AI를 확산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올해 1월 공업정보화부 등 8개 부처가 공개한 'AI+제조업' 특별행동 실시의견에는 2027년까지 산업용 AI 에이전트 1000개와 산업 분야 고품질 데이터셋 100개를 구축한다는 목표가 담겼다. 대표적인 적용 사례 500개를 확산하고 제조업에 특화된 AI 서비스 기업을 육성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기술 개발과 현장 적용을 함께 추진하는 구상이다.

한국 역시 개별 공장의 성과를 다른 공장과 협력사로 확산하는 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조기업이 현장의 문제와 데이터를 제공하고 AI 기업이 모델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협력에 더해, 중소기업의 데이터 수집·정제와 현장 인력 교육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수환 전무는 "중국과 다르게 한국은 하나의 회사가 모든 걸 할 수는 없다"며 "결국 하드웨어 회사, 모델 회사, NPU 같은 연산칩 회사들이 다 모여서 협업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국이) 세계 1위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