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각)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자들과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로이터=뉴스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대미 전략투자금 가운데 약 73조원(540억달러)을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개발 사업에 배정하는 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일주일여 전 국회에 후속 협의 과제로 보고한 사업인 만큼 발표가 현실화하면 미국이 한국 정부의 투자 결정 절차에 앞서 사업을 공식화하게 된다.

29일(이하 현지시각) 백악관 공지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30일 오후 3시30분(한국시각 10월1일 오전 4시30분) 백악관 집무실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함께 발표에 나선다. 백악관은 발표 주제를 밝히지 않았다. 다만 상무장관이 함께 나서는 데다 앞서 외신들이 한국의 대미투자 발표를 예고한 만큼 한국 관련 발표일 가능성이 크다.



로이터통신은 논의 상황에 정통한 소식통 2명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30일 한국의 전략투자금을 알래스카 LNG를 비롯한 미국 내 여러 대형 사업에 쓰는 계획을 발표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통신도 알래스카 LNG에 대한 73조원 투자 약정이 발표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보도대로라면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투자를 기정사실로 발표할 가능성이 있다.

이 사업은 비상장사 글렌파른 그룹이 개발 중이다. 알래스카 북부 노스슬로프의 가스를 약 1300㎞ 파이프라인으로 남부 해안까지 옮긴 뒤 액화해 아시아로 수출하는 구조다. 완공되면 미국 본토를 거치지 않고 태평양을 건너 아시아에 LNG를 공급할 수 있다. 총사업비는 약 91조원(670억달러) 수준으로 거론돼 왔다.

미국 측 발표가 임박했다는 관측과 달리 한국 정부가 국회에 보고한 투자계획에서 이 사업은 아직 추진 사업에 들지 못했다. 정부는 지난 22일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대미 전략투자 추진계획을 비공개로 보고하면서 텍사스주 엔시날 가스복합화력발전소 건설을 첫 사업으로 올렸다. 미국 내 대형 원전 8기 건설과 알래스카 LNG는 사업 구조와 수익성을 두고 추가 협의가 필요한 후속 사업으로 분류했다.



투자처를 최종 선정하는 권한은 미국 대통령에게 있다. 하지만 실제 한국 자금이 투입되려면 국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산업통상부 장관이 이끄는 위원회가 사업성을 검토하고 재정경제부 장관이 이끄는 위원회가 의결한 뒤 국회에 보고하는 순이다. 엔시날은 이 절차를 마쳤지만 알래스카 LNG는 첫 단계인 추진 결정조차 내려지지 않았다.

한미전략투자특별법은 원리금 회수가 어려운 사업을 안보나 공급망 안정 등을 이유로 추진할 경우 보고에 그치지 않고 국회 동의를 받도록 했다. 알래스카 LNG의 상업적 합리성이 낮다고 판단되면 정부의 투자 결정은 국회 동의 절차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은 지난해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조건으로 약 473조원(3500억달러)의 대미투자를 약속했다. 한국 기업의 직접투자·보증·선박금융으로 채우는 조선 협력 약 203조원(1500억달러)과 정부가 현금을 대는 전략투자 약 270조원(2000억달러)이다. 알래스카 배정액 73조원은 전략투자의 27%에 해당한다. 엔시날 사업비 약 30조원(223억달러)을 더하면 전략투자의 약 38%가 에너지 사업 두 건에 쏠린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국회 보고에서 연간 투자액이 약 27조원(200억달러)을 넘으면 추가 투자에 나서지 않겠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알래스카 배정액은 이 연간 한도로 따지면 3년치에 가깝다. 사업비가 공사 진척에 따라 나뉘어 나가더라도 한 사업이 몇 년치 한도를 차지하는 셈이다. 정부 내에서도 수익성이 불투명한 대형 사업이 전략투자 한도를 빠르게 소진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정부는 그동안 알래스카 LNG에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다. 김 장관은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이 사업을 "하이리스크 사업"이라고 평가했다. 산업부도 수익성과 사업 타당성을 따져봐야 한다는 입장을 되풀이해 왔다.

발표가 미국 선거 일정과 맞물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로이터는 이번 발표를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행정부가 잇따라 준비하는 경제·투자 발표의 하나로 봤다. 알래스카 상원 선거는 공화당 현역 댄 설리번 의원과 민주당 메리 펠톨라 전 하원의원이 맞붙은 곳으로 미국 주요 선거 분석기관들이 접전으로 분류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30일 백악관 발표 행사에 설리번 의원도 함께 참석할 예정이다. 한국의 대미투자가 미국 국내 정치에서 경제 성과로 활용될 수 있다는 뜻이다.

허정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알래스카 LNG는 플랜트 건설과 가스 발굴 모두 난도가 높은 사업인 만큼 당초 투자금으로 사업비를 충당할 수 있는지, 추가 투자가 필요할 경우 누가 부담할지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며 "한국이 개발된 LNG를 어느 정도 가격에 공급받을 수 있는지도 짚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텍사스 가스 사업이나 원전과 달리 리스크가 크다"며 "국회에서 동의를 받는 절차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미투자 관련 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