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무형유산 주철장 이수자인 원천수 성종사 소장이 지난달 29일 충북 진천군 성종사에서 거푸집에 쇳물을 넣기 직전, 가스 토치를 이용해 범종 거푸집 내부의 습기와 이물질을 제거하고 있다.어안렌즈(니콘 Z9, 8-15mm)를 사용해 주변의 모습까지 한 프레임에 담았다./조현호 기자


크레인에 매달린 통이 기울자 이글거리는 쇳물이 굵은 줄기로 쏟아졌다. 온도계는 1120도로 치솟았다. 거푸집 안으로 스며든 쇳물의 탄내와 비린내가 코끝을 때렸다.

지난달 29일 충북 진천의 성종사. 이날은 경북 영천 보현사로 갈 높이 1m70㎝, 무게 1t짜리 범종을 만들기 위해 쇳물을 붓는 날이다. 구리와 주석을 배합해 녹인 청동을 거푸집에 붓는 데 걸린 시간은 7분. 너무 빨리 부으면 쇳물이 요동쳐 종 표면이 망가지고, 너무 느리면 먼저 들어간 쇳물이 굳어버린다. 성종사의 원천수 소장(57·주철장 이수자)은 흐르는 쇳물에 시선을 고정했다. 27년간 해 온 일인데도 쇳물을 부을 때면 여전히 조마조마하다고 했다.



이 작업을 위해 두 달간 거푸집을 만들었다. 종의 머리에 달릴 용을 조각하고 몸통을 휘감을 문양과 시주자 500명의 이름을 밀랍으로 하나하나 본떴다. 밀랍 위에 주물사(주조에 사용되는 모래 배합)를 바르고 말리기를 스무 번. 그렇게 만든 외형을 내형 틀에 씌워 약간의 간극을 만든다. 이 좁은 틈으로 들어간 쇳물은 범종이 된다.
지난달 29일 충북 진천군 성종사에서 직원들이 1120도로 달궈진 쇳물을 거푸집 내부로 주입하고 있다./사진=조현호 기자


이틀 뒤 쇳물이 굳자 거푸집을 부쉈다. 드릴로 구멍을 뚫고 쇠망치로 수십 번 내리쳤다. 외형을 걷어낸 뒤 종을 천장에 매달고 포클레인 삽으로 종 밑을 두드렸다. 머금고 있던 흙을 쏟아내며 범종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 작고 뾰족한 연장으로 비천(飛天·하늘을 날아다니며 사람과 왕래하는 여자 신선)의 옷깃과 글자 사이에 낀 흙을 떼어냈다.

수만 번의 손길로 탄생한 범종의 두께는 일정치 않다. 이 불완전한 비대칭이 한국 범종 특유의 '우웅~ 우웅~'하는 여운을 만든다. 원 소장의 부친인 무형문화재 원광식 주철장은 젊은 시절 쇳물 불똥에 한 눈을 잃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눈을 가져간 그 쇳물에 여전히 자신의 인생을 녹인다. 불완전함 속에서 더 깊은 의미를 찾기 위해….

원 소장에 따르면 종의 수명은 500년쯤 된다. 그에게 수백 년 뒤에도 같은 소리가 나느냐고 물었다. "더 좋아지죠. 종은 치면 칠수록 그 소리가 부드러워지거든요." 두드리고, 깨고, 다듬고…. 긴 세월 속에서 누군가를 깨우며 깊은 여운을 남길 명물은 이렇게 탄생한다. 은은하면서도 묵직한 울림의 지속, 신문 발행을 시작하는 동행미디어 시대의 바람도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