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살자(들)' 논란 여파로 부국제 일정이 취소되고 현장 질의가 제한되는 등, 정치적 쟁점을 피하려는 영화계의 신중한 기류가 엿보인다. 사진은 정주리 감독이 7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비프힐에서 열린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경쟁 심사위원 기자회견에서 인사말 하는 모습./사진=뉴시스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역사 왜곡 논란 여파로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관련 일정이 전면 취소됐다. 공식 석상에서도 관련 질의가 제한되는 등 정치적 쟁점 언급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뚜렷해지고 있다.

지난달 개봉한 영화 '암살자(들)'은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모티브로, 배후를 추적하는 과정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한 작품이다. 그러나 극 중 일부 전개를 두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건에 개입한 것으로 비칠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후 일부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박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반발이 일었고,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발장이 접수되는 등 거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여파는 부산국제영화제의 행사 일정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암살자(들)'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는 작품을 둘러싼 상황이 배우와 제작진에게 과도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현장을 찾을 관객의 안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영화제 측에 일정 취소를 요청했다.

영화제 측 역시 관객과 게스트의 안전, 원활한 행사 진행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제작사의 의사를 수용했다. 이에 따라 허진호 감독과 배우 유해진, 박해일, 이민호 등이 참석할 예정이었던 야외무대인사와 이민호의 단독 토크 프로그램 '액터스 하우스' 등 관련 공식 행사가 일제히 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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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산 경계하는 영화제…배우 신변 보호 조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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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 확산을 경계하며 쟁점 언급을 배제하려는 기류는 영화제 현장에서도 확인됐다. 지난 6일 열린 부국제 개막작 기자회견에서는 '암살자(들)' 사태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취재진의 질의가 나왔다.

하지만 영화제 프로그래머가 직접 나서 "이 자리는 개막작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인 만큼 양해를 구한다"며 답변을 제한했다. 공식 석상에서 불필요한 정치적 논쟁이 재생산되는 것을 막고 선을 그으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작품을 향한 비판이 개별 출연자에 대한 직접적인 압박으로 이어지면서 소속사 차원의 대응도 이뤄졌다. 주연 배우 유해진의 자택 앞에서는 일부 보수 단체의 사과 요구 집회가 열렸다. 이에 소속사 측은 배우의 권익과 신변 보호를 위해 허위사실 유포와 인신공격에 강경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유해진은 부국제 일정은 물론 7일 예정됐던 부일영화상 참석까지 취소하며 외부 노출을 최소화했다.

일련의 상황을 두고 영화계 안팎에서는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려는 문화계 전반의 신중한 태도가 반영된 결과라는 시각이 나온다.

부국제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정주리 감독은 이번 논란을 두고 "솔직히 지금 느끼는 감정은 제 영화도 아닌데 너무나도 위축된다는 것"이라며 "이 영화가 사건을 다루는 방식 때문에 상처받는 분들이 있을 수 있고, 당연히 그 상처가 표현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영화를 통해 무언가를 표현했을 때 이런 반응이 오면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생각도 든다"고 솔직한 심경을 털어놨다.

장이머우 심사위원장 또한 "창작은 창작이라 생각한다. 창작은 때론 진실 혹은 사실을 기반하지 않기도 한다"며 "역사적인 진실이라는 것도 그 자체가 정말 진실인지 논쟁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른 관객의 의견에 동의하지 못할 수도 있다"면서도 "그런 지점이 어떻게 보면 영화라는 매체의 흥미로운 부분과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며 논란에 대해 직접적으로 평가하는 대신 조심스러운 입장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