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산 경유 수입을 허용하기로 하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강하게 반발했다. 러시아의 전쟁 자금을 차단하기 위해 시행해 온 제재를 미국이 직접 완화했기 때문이다. 미국 내 경유 가격을 낮추려는 조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기 위한 서방의 대러 압박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9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국영 통신사 우크린포름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텔레그램을 통해 "푸틴에게 주는 선물은 평화를 가져오지도, 문명 세계에 어떤 이익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러시아는 경유에 대해 더 많은 테러와 배신으로 보답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가 석유제품을 판매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끝내야 할 전쟁을 장기화하는 데 투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에너지 시설 공격을 중단하면 우크라이나도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을 멈출 수 있다며 상호주의에 기반한 긴장 완화를 촉구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한 뒤 러시아산 경유 공급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러시아가 즉시 30만톤 이상을 미국과 세계 시장에 공급하고 11월 50만톤, 이후 100만톤을 추가로 내놓는다는 내용이다. 정유시설 상황에 따라 300만톤을 더 공급하는 방안까지 포함하면 총 480만톤 규모다.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곧바로 러시아산 경유의 판매와 운송, 미국 수입 등을 허용하는 임시 일반면허를 발급했다. 거래 허용 기한은 내년 4월7일까지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시행해 온 에너지 제재에 한시적으로 예외를 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경유 가격 상승이 지속되자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에 손을 내민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9일 미국의 평균 경유 가격은 갤런당 6.23달러로, 지난달 22일 기록한 사상 최고치인 6.52달러에 육박했다.
이번 합의가 발표될 당시 미국과 우크라이나 협상단은 마이애미에서 종전 방안을 논의하고 있었다. 로이터통신과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와 종전 협상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러시아와 경유 거래에 합의한 것을 비판했다.
미국 정치권에서도 반발이 나왔다. 민주당 의원들은 러시아의 전쟁 자금 확보를 돕는 조치라고 꼬집었고 공화당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제기됐다. 가디언은 이번 합의가 러시아에 종전을 압박해 온 서방의 노력을 뒤집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조치로 경유 가격을 실제로 얼마나 낮출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AP통신 등 외신은 러시아의 공급 계획이 모두 실현될지 알 수 없고 공급 물량만으로 세계 경유 부족을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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