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2층 건물. 이곳에서 열린 '원데이클래스'에 12명이 모였다. "혈액검사 수치가 낮으면 운동을 쉬어야 하나요?" "집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은 어떤 게 좋나요?" 참석자들 사이에서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진료시간이 1~2분뿐이라 (의사에게) 궁금한 걸 다 물어볼 수가 없다"는 한 참석자의 하소연에 "맞다"며 여기저기서 맞장구를 쳤다. 모처럼 만난 친구들끼리 수다를 떠는 모습이지만 다른 게 있다면 단 하나, 대화 주제였다. 참석자들은 모두 항암 치료 경험자와 보호자들로, 이날은 '항암치료 후 관리법'을 두고 서로의 경험을 나눴다.
이 자리를 마련한 이는 '사브작본점'의 강영숙 대표(52)다. 강 대표는 신문 편집부터 온라인게임 제작까지 30년간 해오던 디자인 일을 2024년 접어야 했다. 그해 11월 유방암 진단을 받고, 항암·수술·방사선 치료를 거쳐 지금도 항암제를 먹으며 투병 중이다. 그러면서도 지난달 아들 배경현 매니저(24)와 함께 일을 벌였다. 암 환우들이 편하게 모여 담소도 나누고 쉴 수 있는 공간, '사브작'을 만든 것이다.

이곳엔 암 투병 당시 강 대표의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일을 그만두고 치료에 전념할 때 마음 기댈 곳이 없었다. 그때 유방암 환우들이 모인 채팅방은 강 대표에게 큰 위안이었다. '사브작 프로젝트'는 그렇게 탄생했다. 채팅방 환우들과 오프라인 모임을 열었는데, 병원 밖에선 편하게 만날 장소를 찾기 어려웠다. 투병 생활로 쇠약해진 환우들은 카페에 오래 앉아있는 것조차 힘들어 했다. 펜션을 잡자니 품이 많이 들었다. "환우들의 몸 상태는 그때그때 달라요. 앉아 있다가도 힘들면 언제나 편하게 누울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있었으면 했어요." '사브작' 거실에 쇼파와 안마의자, 빈백 등을 가져다놓은 이유다.

'사브작'은 지난달 28일 문을 열었다. 암 환우들뿐 아니라 누구나 와서 모임도 하고, 식사도 하고, 커피나 차도 마실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런데 왜 '사브작'일까. "뭔가를 만들며 사브작거리는 걸 좋아해요. 사브작은 별로 힘들이지 않고 가볍게 움직이는 모습이잖아요. 환우들이 이곳에서 사브작거리며 활동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어요."
사브작 곳곳은 환우들에 대한 배려가 가득하다. 2층 모자 진열대는 상반신을 가릴 수 있는 짧은 커튼이 둘러쳐 있다. 항암 치료 중 듬성듬성해진 머리카락 때문에 모자가게에서 편하게 여러 모자를 써보지 못한 기억이 떠올라 만든 공간이다. 1층엔 파티룸과 함께 셀프 스튜디오가 있다. 유방암 진단을 받은 방송인 박미선씨가 한 프로그램에서 공개한 민머리 프로필 사진을 보고 만든 곳이다. 강 대표는 "나도 머리카락이 모두 빠졌을 때 당당하게 내 모습을 찍어놓을 걸 하는 아쉬움이 들더라"며 "힘든 시기의 기록을 보면 나중에 삶의 동력을 더 얻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 옆엔 여러 형태의 가발을 써볼 수 있는 공간과 화장대가 있다.

'미래의 나에게' 편지를 쓰는 공간도 있다. 편지지 뒷장에는 이 편지를 돌려받고 싶은 연도와 월을 적게 돼 있다. 배 매니저는 "보통 항암 치료가 끝나는 시기나 다음 차수 항암 치료로 넘어가는 시기를 적는 분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이곳 카페에선 커피를 팔지 않는다. 대신 암 환자들에게 좋은 당근 주스, 단호박 죽, 병아리콩 샐러드 등이 주요 메뉴다. 강 대표는 "환우들은 음식을 많이 가릴 수밖에 없다. 그런 걱정 없이 머물 수 있도록 건강식 메뉴를 만들었다"고 했다.

이날 사브작은 찾은 신모씨(55)는 암 투병 이후 일상이 멈췄다고 했다. "병원 가는 것 외에 사람을 만나는 일이 거의 없었어요." 뒤늦게 암 환우 모임에 참여하면서 지난한 치료 과정을 견딜 수 있었다. "(암 치료는) 혼자서 버티기가 참 어려워요. 의지할 누군가가 있을 때 극복할 수 있어요." 얼마 전엔 근처에 산다는 한 손님이 투병 생활 내내 집안에만 있던 어머니를 모시고 찾아와 강 대표와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지난 1월 발표한 국가암등록통계(2023년)에 따르면 국민 19명 중 1명(5.3%)이 암을 경험한다. 평생 동안 암이 발생할 확률은 남자의 경우 44.6%, 여자는 38.2%로 추정된다. 암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항암 치료를 받은 뒤 일상으로 돌아오는 이들도 쉽게 만날 수 있다. 다만 여전히 치료와 일상이 분리돼 있다. "치료는 일상 속에서 진행해야 해요. 혼자 고립돼 치료 받는 게 아니라 주변 이들과 어울려 함께 극복하는 거죠." 강 대표가 사브작을 만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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