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HL만도 평택공장 청년 비정규직 고 김승모 씨 노동·시민·사회장이 진행되고 있다./뉴시스


2022년 3월 17일 충남 서천군 일광폴리머 서천2공장. 에탄올로 씻은 전기차 히터 부품을 항온항습기에 넣어 말리던 중 기기 안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날아온 철문에 머리를 맞은 노동자 1명이 숨졌다. 폭발구가 없는 밀폐형 설비였는데도 에탄올 증기를 빼내는 조치는 없었다.

2024년 2월 경기 포천시 대경중학교 화장실 환경개선 공사 현장. 건일이엔지 소속 노동자가 1.2m 높이 이동식 비계에서 천장 배관 작업을 하다 떨어졌다. 비계에 안전난간은 없었다. 안전모도 지급되지 않았다. 착용 여부를 점검한 관리자도 없었다. 이 노동자는 사고 뒤 별다른 조치 없이 작업을 재개했다가 다음 날 숨졌다.



고용노동부는 15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올해 상반기 형이 확정·통보된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37곳을 관보와 노동부 홈페이지에 공표했다고 밝혔다. 일광폴리머와 건일이엔지도 명단에 올랐다.

공표 사례를 종합하면 37개 사업장에서 노동자 38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다. 사고 유형별로는 추락이 14건으로 가장 많았다. 중량물 낙하·전도·깔림 10건, 끼임·협착 9건이 뒤를 이었다.

경영책임자는 도급인 외 수급인 2명을 포함해 모두 39명이다. 이 가운데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1명이었다. 35명은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1명은 징역형의 집행유예와 벌금형을 함께 받았다. 나머지 2명은 벌금형이 확정됐다.



유일한 실형은 일광폴리머 대표이사에게 내려진 징역 3년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확정된 형 가운데 가장 무겁다. 1심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이 징역 3년으로 형을 높였고 대법원은 이를 그대로 확정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13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 출석해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뉴시스


다수 사상자가 발생한 경북 봉화군 영풍 석포제련소 사례도 공개됐다. 이곳에서는 2023년 12월 6일 탱크 모터를 교체하던 노동자들이 유출된 삼수소화비소에 중독돼 1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다. 영풍은 실내 작업장에서 유해물질을 다루면서도 안전장치를 설치하지 않았다. 작업자에게 건강장해 예방 사항을 알리는 조치도 없었다. 영풍의 경영책임자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처음으로 구속 기소됐다. 최종심에서는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 확정됐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2022년 1월 이후 올해 상반기까지 형이 확정·통보된 사업장은 81곳으로 늘었다. 노동부는 2023년 9월부터 반기마다 이들 사업장을 공표해 왔다. 경영책임자 등 85명 가운데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3명(3.5%)이었다. 전체의 90.6%인 77명은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받았다. 나머지는 벌금형 3명, 징역형의 집행유예와 벌금형 병과 2명이다. 법인에 부과된 벌금은 평균 9800만원(최소 1000만원, 최대 20억원)이다.

81곳의 위반 내용을 보면 사업장 한 곳당 평균 3.6개 조항을 어겼다. 의무별로는 유해·위험 요인 확인·개선 점검 의무를 어긴 곳이 75곳(92.6%)으로 가장 많았다.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의 충실한 업무수행을 위한 조치 의무 위반이 62곳으로 뒤를 이었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사업을 총괄·관리하는 경영책임자의 확고한 안전의식과 행동이 현장의 안전을 보장한다"면서 "노동부는 소규모 기업에 대한 재해예방 컨설팅 등 지원과 함께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에 대해서는 엄정한 수사를 통해 책임을 묻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