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멀티밤'으로 유명한 화장품 회사 가히(KAHI)가 그룹 애프터스쿨 출신 가수 가희가 만든 식이보충제 상표 'KAHI'를 상대로 벌인 소송에서 이겼다. 소위 '짝퉁' 제품을 만든 것이 아니라 쓰임새가 다른 화장품과 건강식품일지라도 소비자가 같은 회사에서 만든 것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다면 상표 보호 범위에 포함된다고 판단한 첫 사례다.
19일 특허법원에 따르면 지난 4월23일 가수 가희가 만든 브랜드 'KAHI'의 상표권 등록을 무효로 해달라는 화장품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소송 비용도 가희가 부담하도록 했다. 가희 측은 이에 불복해 상고를 제기했다가 일주일 뒤 취하했다. 이에 따라 지난 5월20일 화장품 업체 가히의 승소가 확정됐고, 특허법원은 지난 2일 이를 주요 판결로 공개했다.
가희는 2021년 5월 식이보충제 등에 사용할 상표 'KAHI'를 출원해 2023년 12월 등록결정을 받았다. 화장품 회사 측은 자신들의 영어 상표 'KAHI'와 이름이 같고, 소비자가 제품의 출처를 혼동할 수 있다며 등록 무효를 주장했다. 가수 가희는 화장품 회사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가희(Kahi)'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며 인지도를 쌓아왔고, 그 예명을 그대로 표시했을 뿐이라고 맞섰다.
특허심판원은 두 상품이 유사하지 않고 경제적 관련성도 밀접하지 않다며 가수 가희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특허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가히가 2020년 4월부터 온라인과 오프라인, TV홈쇼핑 등에서 제품을 판매·광고한 점에 주목했다. 2023년 말까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 드라마 25편에 제품을 간접광고 형식으로 노출했고, 출시 후 약 1년6개월 만에 판매량이 1000만개를 넘어선 점도 판결에 참작했다. 재판부는 "가수 가희의 상표가 등록되던 2023년 12월 무렵에는 이미 화장품 브랜드 가히가 사람들에게 널리 인식되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가 중점을 둔 또 하나의 부분은 화장품과 건강식품 간 연관성이다. 가수 가희 측은 화장품과 식이보충제는 전혀 다르게 생긴 상품이라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등 화장품 업체들이 식이보충제도 생산·판매하고, 두 제품군이 인터넷 쇼핑몰에서 함께 팔리는 점을 고려했다.
재판부는 "화장품과 미용효과가 있는 식이보충제는 건강의 유지 또는 증진이나 미용 목적으로 인체에 직접 작용하는 방식으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공통된다"며 "동일한 회사에서 화장품과 식이보충제를 함께 생산·판매하는 경향이 확대되는 추세인 점을 볼 때 소비자들이 두 제품을 같은 회사의 것으로 혼동할 염려가 있다"고 했다.
이번 소송을 맡은 장인욱 대표변리사(특허법인 공간)는 "화장품과 건강식품이라는 전혀 다른 분류의 상품임에도 불구하고 상표권 혼동을 인정한 첫 사례"라며 "상표 보호의 범위를 현재 판매하는 상품에만 가두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소비자가 브랜드를 어떻게 기억하고, 다른 상품과 어떤 관계로 받아들이는지가 더 중요한 기준이라는 것이다.
가히가 나중에 건강식품에도 사업을 넓히려고 할 때 유사 표장이 걸림돌이 될 수 있고, 가수 가희는 상표 등록만 해두었을 뿐 실제로 상표를 사용한 적은 없었다는 점도 짚었다. 장 변리사는 "유명한 상표 하나만 키워놓으면 식품이든 의류든 다른 업종 상표를 전부 무효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왜 소비자가 두 상품을 같은 회사의 시리즈 제품으로 볼 수밖에 없는지를 입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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