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년 전 한국인의 식탁에 즉석밥이라는 새로운 선택지를 선보인 햇반이 세계인의 밥상으로 향한다. 국내 즉석밥 시장을 개척하며 쌓은 노하우를 앞세워 한국식 밥 문화를 해외 소비자들의 일상으로 확산시키겠다는 목표다. CJ제일제당은 비비고 만두의 성공 경험을 발판 삼아 햇반을 K푸드의 차세대 대표 제품으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CJ제일제당은 지난 21일 충북 진천 CJ블로썸캠퍼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햇반을 2028년까지 국내외 연 매출 1조5000억원(소비자가 환산 기준) 규모의 브랜드로 육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동안 축적한 제조 기술과 식문화 트렌드를 이끌어 온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고 해외 사업 확대에 속도를 내겠다는 포부다.
국내 최초의 무균포장밥인 햇반은 밥을 사 먹는다는 개념이 낯설던 1996년 탄생했다. 초기에는 밥이 부족할 때 찾는 '비상식'으로 여겨졌으나 2000년대 이후 1~2인 가구 증가 등 사회 변화와 맞물려 집밥을 대체하는 '일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컵반·솥반 등으로 제품군을 넓혔고 최근에는 라이스플랜 등 건강 관리 수요에 맞춘 제품을 선보이며 변화를 이어가고 있다.

시대 변화에 맞춰 진화한 햇반은 연 매출 1조원대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국내외 브랜드 매출은 2021년 7900억원에서 지난해 1조1800억원으로 증가했다. 출시 이후 올해 말까지 30년간 누적 매출은 약 1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햇반의 경쟁력은 갓 지은 밥맛을 구현하는 제조 기술에서 나온다. 이날 공개된 생산라인에서는 자동화 설비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이동하는 용기에 세척과 불림을 마친 쌀이 차례로 담겼다. 고온·고압 증기로 살균한 쌀은 취반수를 넣고 약 30분간 익혀 밥으로 완성됐다. 이후 반도체 공정 수준의 청정도를 유지하는 클린룸에서 밀봉 포장됐다.
밥맛을 좌우하는 기술은 쌀을 준비하는 단계부터 적용된다. CJ제일제당은 국내 즉석밥 제조사 중 유일하게 자체 도정 시설을 갖추고 있다. 공장에서는 현미를 약 15도의 저온에서 보관하다 필요한 물량만 당일 도정해 사용한다. 오예진 CJ제일제당 수석연구원은 "쌀은 도정한 순간부터 수분이 줄고 산화가 진행된다. 가장 신선한 상태에서 밥을 짓기 위해 당일 도정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갓 지은 밥을 오래 보관할 수 있는 비결은 무균포장에 있다. 고온·고압 증기로 미생물을 제거한 뒤 무균 상태에서 밀봉해 별도의 보존료 없이 상온에서 9개월간 보관할 수 있다. CJ제일제당은 무균포장밥 제조 기술 등을 포함해 267건(해외 출원 포함)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햇반의 기술력은 쌀과 곡물의 영양을 과학적으로 설계하는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 단백질과 식이섬유 함량을 높이고 탄수화물과 칼로리는 낮추는 등 건강한 식생활을 원하는 소비자 수요에 맞춰 영양 설계 기술을 고도화한다는 방침이다. 오 수석연구원은 "저칼로리와 영양 설계, 더 나아가 영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기술을 계속 진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향후 성장의 핵심 무대는 해외 시장이다. 2017년부터 비비고 브랜드로 미국 가공밥 시장을 본격 공략한 햇반은 현재 미국과 캐나다, 호주, 멕시코 등 60여개국에서 판매되고 있다. 최근 5년간 해외 매출은 연평균 약 30% 증가했으며, 전체 브랜드 매출에서 해외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8%에서 지난해 15%로 높아졌다. 2028년까지 이 비중을 20%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한국의 밥 문화를 세계 시장에 확산시키는 데 주력한다. 앞서 덤플링(Dumpling)이 주류를 이루던 시장에 만두(Mandu)를 알렸던 것처럼, 밥알이 잘 떨어지는 밥에 익숙한 해외 소비자들에게 한국식 찰진 밥의 매력을 알리겠다는 구상이다.

미국에서는 스테이크와 치킨, 부리토 등 현지 음식에 한국식 밥을 곁들이는 방식으로 소비자들에게 다가갈 계획이다. 김숙진 CJ제일제당 식품마케팅실장 겸 한국사업본부장은 "우리의 식문화만 강요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식문화에 맞게 한국의 브랜드와 기술로 어떻게 밥을 더 다양하고 새롭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국내에서는 영양 균형을 중시하는 수요에 맞춰 잡곡밥 제품군을 강화한다. 햇반 즉석밥에서 잡곡밥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10%대에서 지난해 30% 이상으로 높아졌다. CJ제일제당은 오는 12월 식물성 단백쌀을 적용한 '햇반 단백질 잡곡밥'을 선보일 예정이다. 말차·들기름 햇반과 라이스크림 등 최신 식문화와 소비 트렌드를 반영한 이색 제품을 통해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힌다.
김 본부장은 "햇반의 30년은 단 한 번도 안주하지 않고 편의성, 맛, 품질, 건강 가치를 선도하며 대한민국 식문화를 진화시켜 온 여정이었다"고 돌아봤다. 이어 "밥은 한식 글로벌화의 기반으로, 밥이 바뀌면 사람들의 생활과 식문화를 바꿀 수 있다. 햇반을 만두에 이은 넥스트 K웨이브 대표 제품으로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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