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 이태원 참사 4주기를 이틀 앞둔 지난 2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10·29 기억과 안전의 길' 건물 외벽에 추모 메시지가 적혀 있다./뉴시스


#1. 2022년 10월30일 오전 10시30분. A씨는 온라인 게임 대화방에 글을 올렸다. 경찰이 쓰러진 여성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는 장면을 성적으로 묘사한 글이었다. 여성의 외모를 품평하는 내용도 담겼다. 150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은 때였다.

이듬해 2월 서울남부지법은 A씨에게 정보통신망법상 음란물 유포 혐의를 인정해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피고인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서 반성하는 점, 피고인에게 동종의 범죄 전력은 없는 점 등 제반 양형 조건을 종합해 형을 정한다." 판결문에 적힌 양형 이유는 단 세 줄이었다.



#2. B씨는 이태원 참사 직후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희생자 사진에 이런 댓글을 달았다. "술 마시고 OO(성적 행위) 하려다가 숨졌다. 이게 애도할 일이냐?" 2023년 8월 대전지법은 사자명예훼손과 음란물 유포 혐의로 기소된 B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두 사건 형량엔 큰 차이가 없지만, 판결문 내용은 사뭇 달랐다. "불행한 참사로 인해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피해자의 유족들은 피고인의 범행으로 추가적인 정신적 고통을 겪어야 했다."

29일로 이태원 참사 4주기를 맞는다. 희생자와 유족을 향한 비방과 음모론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2차 가해가 반복되고 있는 점은 같지만, 이를 바라보는 법원의 시선은 달라지고 있다. 법원은 참사 초기 '가해자 중심의 정형화된 판결'을 많이 내놨지만, 최근엔 유족의 정신적 고통과 사회에 미치는 혼란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이는 동행미디어 시대가 이태원 참사 2차 가해 판결문 18건을 분석한 결과다.

참사 직후엔 법원도 2차 가해에 대한 문제의식을 크게 드러내지 않았다. 2023년 7월까지 선고된 사건들은 대부분 피고인들이 희생자들을 성적으로 비하해 음란물 유포 혐의를 적용했는데, 이들 판결문에는 가해자의 반성 여부나 전과 유무 등 통상적인 양형 사유만 담겼다.



그러다가 2023년 하반기부터 '유족의 고통 가중'이 판결문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2023년 12월 수원지법은 참사로 숨진 배우가 성적인 목적으로 이태원을 찾았다는 허위 댓글을 단 C씨에게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하며 '국가 책임'을 언급했다. "국가의 보호 의무 방기 속에 아들을 잃고도 국가로부터 따뜻한 위로조차 받지 못한 유족에게 격려와 위로는커녕 씻을 수 없는 모욕감과 좌절감을 안겼다."

참사 발생 2년 뒤인 지난해부터 판결문에는 2차 가해의 비인간성과 시민에게 미치는 피해가 담기기 시작했다. 지난해 4월 서울서부지법은 희생자와 유족이 가짜라는 허위 주장을 반복해온 D씨에게 징역형을 선고하며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동정심과 공감조차 결여된 것으로 용인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같은 해 11월 서울중앙지법은 여성 희생자들을 성적으로 비하한 사건을 판결하며 "유족과 더불어 일반 시민들도 추가적인 정신적 고통과 모멸감을 겪어야 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올해에는 실형 판결도 나왔다. 지난 6월 서울서부지법은 참사가 마약 때문에 발생했다는 허위 주장 등을 362차례 게시한 E씨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지난 8월에는 이태원·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허위 주장을 반복해온 F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하기도 했다. 법무법인 나눔 홍지백 변호사는 "사회적 참사에 대한 반복적이고 악의적인 명예훼손을 선고 시 특별 가중 요인으로 고려해 엄벌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신재민 편집위원


참사 2차 가해에 대해 수사 체계를 일원화한 점도 엄단 분위기에 일조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지난해 7월 '2차가해범죄수사과'를 새로 만들었다. 올해 9월 말까지 이태원 참사 2차 가해 사건 186건을 수사해 71건을 송치했다. 2차 가해 전담팀 출범 전에는 명예훼손, 모욕 등 죄명에 따라 각 부서에서 사건을 개별 처리해 왔는데, 전담팀이 생기면서 수사 성과가 높아졌다고 경찰청은 자평한다.

허위 주장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7일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은진 상임위원은 "희생자들에게서 마약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는데도 정부가 관련 의혹을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아 2차 가해가 확산됐다"고 비판했다.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인 조인영 변호사는 "참사의 경위와 대응 및 수습 과정의 잘못이 명확하게 밝혀지면 허위 주장을 믿는 사람도 줄어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참사 발생 4년, 2차 가해는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 8월 서울서부지법이 참사 유족에 대한 허위 주장을 반복해온 F씨에게 내린 실형 판결문은 그 상처가 얼마나 깊이 우리 사회에 남는지를 지적하고 있다. "유가족들은 참사로 인한 상처를 회복하기에도 벅차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사회 구조를 바로 세우기에도 사회의 에너지가 충분하지 않다. 그런데도 피고인은 유가족들을 고통에 빠뜨렸을 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을 현혹시켰다."